‘노벨상의 계절’을 맞아 간단한 퀴즈 하나. 역대 최연소 노벨상 수상자는 누굴까.
정답은 파키스탄 소녀 말랄라 유사프자이. 여성과 어린이 교육 증진을 위해 싸워온 공로로 2014년 17세 나이에 노벨평화상 주인공으로 선정됐다.
꼭 10년 전인 2012년 10월 9일, 15세 말랄라는 통학버스에서 탈레반이 쏜 총에 머리를 맞아 중상을 입었다. 2009년 영국 BBC방송 블로그에 탈레반 정권이 여성의 교육받을 권리를 침해한다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는 게 범행 이유였다.
기적처럼 살아남은 말랄라는 탈레반의 계속되는 위협에도 여성의 배울 권리를 주장하며 싸움을 이어갔다. 2년 뒤 노르웨이 노벨위원회는 “영웅적 투쟁을 통해 소녀들의 교육권을 선도적으로 대변했다”며 그에게 평화상을 수여했다.
‘표적 테러’ 이틀 뒤(10월 11일)에는 유엔이 ‘세계 소녀의 날’을 제정하기도 했다. △교육 기회를 박탈당하고 △원치 않는 이른 결혼 △성기 훼손을 강요당하는 여자 아이들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서다. 유엔은 “소녀의 잠재력을 깨닫고 그들의 권리를 지지하는 것은, 더 평등하고 번영한 미래를 약속하는 것과 같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10년이 지난 현재, ‘차별 없고 자유로운 미래’는 공허한 구호에 그치고 있다. 여전히 세계 곳곳에서는 소녀들을 겨냥한 인권 유린, 폭력, 차별이 이어진다. 이란 테헤란에서는 지난달 마흐사 아미니(22) 사망을 시작으로 10·20대 초반 여학생들이 연일 목숨을 잃고 있다.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석연치 않은 죽음의 원인을 밝히라고 목소리를 높였다는 이유로, 자유를 갈망했다는 이유로, 그리고 금기에 '감히' 저항했다는 이유로 시작도 하지 못한 삶이 스러졌다. 야만이 벌어진 무대가 파키스탄에서 이란으로 바뀌었을 뿐, ‘보통의 삶’을 꿈꾸며 차별에 맞서던 어린 여성이 남성 중심 기득권에 희생되는 스토리는 놀라울 만큼 유사하다.
그래서 소녀들의 항거는 현재 진행형이다. 시위 주역인 Z세대(1997~2012년생) 여성들은 자신들의 입을 틀어막고 삶을 옥죄어온 차별과 억압을 떨치기 위해 거리로 나섰다. 지금 이 순간에도 “여성, 삶, 자유”를 외치며 히잡을 벗어던지고 머리카락을 자르고 있다.
사회적 약자가 당하는 착취에서는 인간의 야만성을, 약자가 표출하는 항거에서는 인류의 진보를 확인할 수 있다. “인간으로서 존중받는다”는 어쩌면 너무 당연한 권리를 쟁취하기 위한 소녀들의 사투는 그래서 조금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동력이자 미래다. 각자의 자리에서 치열하게 싸워온 몸부림들이 ‘여성 인권 상승’이라는 커다란 조각보를 만들어낼 거라는 얘기다.
사흘 전인 지난 11일, 열 번째 ‘세계 소녀의 날’을 맞아 미국 백악관이 낸 조 바이든 대통령 명의 성명은 그래서 더 묵직한 울림을 남긴다. “소녀들이 장벽을 깰 때, 다음 세대를 위한 새로운 길이 열린다.”
덧, 왜 하필 여자 아이들만을 위한 날을 만들었을까. 유엔은 국제사회 대표적 약자인 ‘여성’과 ‘어린이’ 교집합에 놓인 소녀들이 겪어야 하는 차별·위협이 소년들보다 더 크다고 봤다. 최소 하루만이라도 소녀들의 고통을 이해하고 불평등 간극을 줄여가자는 취지다. 물론 유엔이 지정한 공식 기념일은 아니지만, ‘세계 소년의 날’도 있다. 5월 16일이다. 범죄, 폭력, 마약 등 유해 환경으로부터 소년들을 보호하고 양성 평등을 추구하기 위해 만들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