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이은 '대통령실 하명' 논란…빛바래는 민정수석실 폐지

입력
2022.10.13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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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정수석실을 폐지해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반복돼 온 정치 보복 시비와 선을 긋겠다는 윤석열 대통령의 실험은 성공할 수 있을까.

취임 5개월여가 흐른 지금, 민정수석실 없이 국정을 운영하겠다는 윤 대통령의 의지에는 변함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민정수석실 폐지로 5대 권력기관(검찰, 경찰, 국가정보원, 국세청, 감사원)이 과거보다 독립적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것이 대통령실의 자평이다. 외형상 역대 정권 민정수석실이 정권 초 '사정 레이스 시간표'를 총괄했던 것과 달라진 건 사실이다. 하지만 대통령실이 권력기관 업무에 관여했다는 의심을 자초한 사례가 최근 반복되면서 공약의 빛을 바래게 한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야당은 민정수석실만 없을 뿐, 핵심 포스트에 측근을 기용해 전 정권을 겨냥한 전방위 사정을 벌이고 있으니 과거와 다를 게 무엇이냐고 되묻는다.

대통령실 하명 논란 자초한 '이관섭·유병호 문자'

최근 '대통령실 하명 논란'에 불을 붙인 건 유병호 감사원 사무총장과 이관섭 대통령실 국정기획수석이 언론 보도와 관련해 주고받은 '문자'다. 더불어민주당은 문자 사건은 빙산의 일각일 뿐, 최근 일련의 감사원 감사는 대통령실 하명에 의한 정치 보복이라 규정하고 강경 대응을 천명한 상태다. 민주당이 12일 이 수석과 유 사무총장을 직권남용 등 혐의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각각 고발한 것은 이런 기류를 반영한다.

감사원은 대통령실에 소속하되, 직무에 관해서는 독립의 지위를 가진다. 대통령실은 소관 기관의 언론 보도 내용을 확인한 것일 뿐이라는 입장이지만, 대통령실이 감사원의 2인자에게 감사원 업무의 진위를 점검한 것 자체로 독립성 침해 논란을 불러올 수 있다는 비판이 여권 내부에서도 적지 않다. 청와대 근무 경험이 있는 국민의힘 관계자는 "감사원이 어떤 이슈에 힘을 실을 것이냐는 정무적·정책적 판단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면서 "이번처럼 대통령실과 권력기관의 교감이 계속 돌출된다면, 윤 대통령이 '공정함'을 강조해도 순수성을 의심받지 않겠느냐"고 답답해했다.


대통령실·권력기관 교감 의심 정황 반복

민정수석실 폐지 이후 대통령실과 권력기관의 교감을 의심할 만한 정황이 드러난 사례는 더 있다. 지난 8월 국회 정보위 전체회의에서는 김규현 국가정보원장이 서해 피격 공무원 사건으로 박지원, 서훈 전 국정원장을 고발한 것과 관련해 "윤 대통령에게 보고했고 대통령께서 승인하셨다"고 답해 정치적 중립성(국정원법 3조) 위반 논란이 일었다.

검찰과 경찰이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사법리스크' 수사에 집중하고, 감사원이 전 정부 때 임명된 전현희 국민권익위원장과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에 대한 감사 고삐를 죄는 것도 하명 논란을 키우는 대목이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윤 대통령은 수사와 감사의 독립성이 지켜져야 한다는 일관된 원칙을 갖고 있고 대통령실 내에서 개별 사정 시간표를 별도로 체크하는 인력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의 측근으로 통하는 한동훈 법무부 장관과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등이 검경의 실세로 역할을 하다 보니 야권이 민감하게 반응하며 정치 쟁점화하는 일이 반복되는 실정이다.

민정수석 역할 나비효과? 이래저래 난감한 대통령실

대통령실은 난감한 분위기다. 컨트롤타워 부재로 개별 기관이 움직이는 상황을 종합적으로 체크하지 못해 대통령실로 쏠리는 의혹에 대해서도 제대로 답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실제로 문재인 전 대통령에 대한 감사원의 서면조사 통보도 대통령실과 상의 없이 감행한 감사원 단독 플레이라고 한다. 유 사무총장은 전날 국감장에서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과 관련된 뉴스를 보고 "못 참아서" 감사 착수를 건의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한 대통령실 관계자는 "과거처럼 민정수석이 컨트롤해 사정기관을 지휘했다면 하나의 이슈에 집중해 여론을 끌고 가지 돌출 리스크를 일부러 계속 만들겠느냐"며 "각 기관에서 자율적으로 일을 하고 있다는 반증"이라고 했다.

하지만 중구난방 사정 국면에 대해선 여권에서도 불만이 나온다. 한 국민의힘 재선 의원은 "민정수석이 맡는 컨트롤타워가 없으니 야당에 이슈 장악권을 내주고 있다"며 "민정수석실 폐지의 나비효과 같다"고 말했다.

김지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