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혜화역 대학로로 이사 온 이유는 아이 학교 때문이었다. 이전 동네에서는 휠체어를 타는 아이가 가고 싶어 하던 학교에 엘리베이터가 없었다. 가고 싶던 학교를 찾아 무작정 이사를 왔다. 아파트만 빼곡한 동네에 살다가 나름 번화가로 이사 왔을 때 아이는 "거기 가면 인스타 맛집도 많겠지?"라며 기대했다.
그럴 만도 했다. 대학로는 예술문화의 중심지다. 장애인 이동권의 상징적인 장소이기도 하다. 혜화역엔 작은 동판이 붙어 있다. '장애인 이동권 요구현장'이라고 쓰여 있다. 장애인 인권활동가 이규식씨가 이곳 혜화역 휠체어 리프트에서 떨어져 다친 이후로 혜화역에 엘리베이터가 놓였다. 그 엘리베이터는 이 근방에서 공부하는 장애인야학 학생 등 휠체어 이용자는 물론, 인근 서울대병원을 이용하는 이동약자들과 마로니에공원을 산책하는 유아차 이용자들이 모두 이용하게 됐다. 당연히 휠체어로 갈 수 있는 곳도 많지 않을까?
현실은 달랐다. 얼마 전 이 동네에서 오래 근무했다는 분에게 전화가 왔다. "휠체어로 갈 만한 저녁약속 장소 추천해 주세요." 내가 운영하는 무의에서 지하철역 주변 휠체어 접근 장소를 수집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전화했단다. 이 활동가는 혜화역 근방에서 나보다 더 오래 일했지만 정보가 적었다. "휠체어로 갈 수 있는 곳들이 드물다 보니 탐색할 엄두도 못 낸 거죠."
마침 딸이 본인이 가보고 싶다며 동네를 둘러보며 소위 '접근 가능 식당'리스트를 작성해 둔 게 있었다. 그중에 몇 군데를 소개했다. 검색해 보니 각종 테마별로 자투리 데이터도 제법 많았다. 데이터 공공포털, 서울시에서 만든 스마트서울맵, 한국관광공사의 관광정보 안내 사이트 등에도 휠체어로 접근 가능한 곳의 데이터가 꽤 있다. 흩어져 있으니 알 수가 없었던 거다. '이런 데이터와 우리 딸이 모아 놓은 휠체어 맛집 지도를 합칠 수 있다면?'
그런데 마침 그런 기회가 생겼다. 지난 9월 행정안전부와 지능정보화진흥원이 후원하는 공공데이터 활용 지역 문제 해결 프로젝트에 뽑히게 된 거다. '휠체어로 대학로 완전정복'이란 이름을 붙였다. 딸 아이가 다니며 모은 음식점, 카페 정보에다가 내가 봐 놓았던 주변 장애인화장실 정보, 휠체어로 접근 가능한 공연장 데이터, 숙박업소 정보 등 테마별 접근성 데이터를 꽤 많이 찾을 수 있었다.
이렇게 생각한 사람이 내가 처음은 아닐 텐데 왜 그동안 활성화가 되지 못했을까? 간단하다. 우선 휠체어로 접근할 수 있는 곳이 적다. 그런 곳에 대한 데이터란 구슬을 모으는 데에도, 그 구슬을 꿰고 새로 업데이트할 때도 자원이 필요하다.
정보는 모일수록 강해진다. 우선 공공에서 모아 놓은 수많은 접근성 정보가 있다. 국가에서 '장애인 이용 가능한 곳'이라며 도장을 찍어 준 '장애물 없는 생활환경 인증'(BF인증)도 그중 하나다. 물론 아직 갈 길이 멀다. 우선 장애인 접근성 인식 자체가 낮다. 2021년 6월 기준 BF인증을 의무적으로 받아야 하는 공공건물은 6,270개이지만 예비인증조차 안 받은 곳이 전체 24%다. 데이터 업데이트 구조도 필요하다. 지도 데이터 플랫폼인 한국의 대형 지도 서비스 중에서 '휠체어 접근성 데이터'를 체계적으로 모으는 곳은 없다. 딸이 휠체어 맛집 데이터를 모은 플랫폼은 구글 맵이었다. 구글 맵에 '접근성 데이터'를 입력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딸의 작은 소망은 이사 가는 동네에 친구들과 함께 갈 수 있는 휠체어 접근하는 곳을 쉽게 찾을 수 있는 것이다. 그 작은 소망은 접근성이라는 데이터 구슬을 만들고 꿰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커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