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D페스티벌?’ 전남 무안에서 이달 28일부터 사흘간 열리는 축제다. YD는 ‘영 드림(Young Dream)’의 약자라고 한다. 청년이 주축이 돼 거리 퍼레이드, 드론 쇼, 댄스 경연대회 등을 펼친다고 하니 ‘청년 꿈 축제’라 했으면 이해하기가 한결 쉬웠을 듯하다. 축제가 열리는 곳은 전남도청이 들어선 남악신도시다. 목포와 붙어 있다. 군 단위지만 젊은 층도 많이 사는 도농복합도시라는 점을 알리려는 기획이다.
그래도 무안의 본모습은 농촌이자 어촌이다. 무안 서쪽 운남·망운·현경·해제면은 개미허리처럼 가느다랗게 육지와 이어져 있다. 낮은 구릉을 이룬 들판과 해변에 터를 잡은 마을을 넓은 갯벌이 감싸고 있다. 섬인 듯 섬이 아니고, 바다인 듯 바다가 아니다. 국내 다른 곳에선 보기 힘든 이국적인 풍광이 이어진다.
무안의 어촌과 갯벌의 전형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을 꼽으라면 ‘노을길’이다. 망운면 송현리 조금나루 해변에서 현경면 봉오제까지 이어지는 약 10km 해안길이다. 국도를 버리고 마을을 잇는 한적한 해안도로를 따라가는 길이다. 중간중간에 조성한 작은 공원과 전망대에서 일부 구간을 걷거나 쉬어갈 수 있다.
시작 지점인 조금나루는 조수가 가장 낮은 때인 ‘조금’에서 따왔다. 보통 음력 7, 8일과 22, 23일이다. 말맛이라는 게 참 묘하다. 분량이 적고 시간이 짧다는 의미의 ‘조금’에는 부족하지만 궁핍의 자국이 없다. 가지지 못해 안달하기보다 모자라는 대로 만족하는 여유가 배어 있다. 물때가 가장 낮은 ‘조금’에는 짭조름한 소금기가 묻어 있다. 물 빠진 바다로 배를 몰진 못하지만, 어부들은 이때도 바다에 나가 촉촉한 갯벌에서 조개를 캐고 낙지를 잡는다.
조금나루는 인근 송현마을에서 방파제 하나로 겨우 이어져 있다. 조금에는 육지와 연결되고 평시에는 배를 타고 건너야 하는 작은 섬이었다. 지금은 조그마한 땅뙈기에 뿌리 내린 소나무 숲에 야영객이 심심찮게 찾아오고, 나루터 한쪽에 형성된 모래해변을 한적하게 산책하는 이들도 간간이 눈에 띈다.
평평하게만 보이는 갯벌에도 높낮이가 있어서 낮은 곳에는 갯고랑(전남 지역에서는 ‘개웅’이라 한다)이 형성되고, 작은 배들은 용케도 길을 찾아 바다로 나간다. 조금나루 앞 갯고랑에서 고기를 잡는 어선 뒤로 낮고 길쭉한 섬이 하나 보인다. 무안에서 하나밖에 없는 유인도인 탄도다.
조금나루에서 직선으로 약 2.5㎞ 떨어진 작은 섬으로 50여 명이 살고 있다. 한자로는 ‘숯섬’이라는 의미로 탄도(炭島)라 표기하지만, 무안문화원은 ‘여울섬’을 뜻하는 탄도(灘島)가 더 적합하다고 지적한다. 섬의 크기로 봤을 때 숯을 만들 만큼 나무가 많았다고 보기 어렵고, 서해로 이어지는 물목이어서 예전부터 ‘여울도’로 불렸다고 한다. 조금나루에서 오전 8시, 탄도에서 오후 3시 출항하는 배가 있지만 물때에 따라 유동적이다. 시간에 얽매이지 않는 사람이 아니면 여행이 쉽지 않다.
조금나루와 연결되는 송현마을은 소나무가 많은 고개 마을이라는 의미다. 조금나루에 성인 두 사람이 팔을 벌려도 감쌀 수 없을 만큼 큰 소나무가 있었는데, 일제강점기 말에 송진을 채취하며 고사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소나무는 사라졌지만 조금나루는 해풍을 막아주는 방파제였고, 정월 보름이면 모든 주민이 삽을 들고 나와 ‘해모가지’라 부르는 제방을 보수했다고 한다.
송현마을 앞도 넓은 갯벌이다. 예전엔 물이 빠지면 마을 앞바다가 거대한 모래 운동장으로 변했다고 한다. 아이들의 놀이터였고 주민들이 공을 차고 씨름도 했는데, 건축자재로 모래를 이용하면서 이제는 코앞까지 펄이 됐다. 지형은 변했지만 갯벌은 여전히 풍성하다. 마을 앞 제방에 조개 캐고 낙지 잡는 어민들 그림이 그려져 있고, 갯벌 곳곳에 흩어진 어선들이 물이 차기를 기다리고 있다.
조금나루에서 해안도로를 따라가면 육지는 멀어지고 갯벌은 더 넓어진다. 바다가 땅에 갇히고 땅이 바다에 포위된 형국이다. 땅도 바다만큼 낮아 어디를 둘러봐도 하늘이 절반이다. 풍경으로만 따진다면 하늘이 ‘열 일’하는 곳이다. 특히 해질 무렵 서정이 사무치게 아름다워 ‘노을길’로 부른다.
지난 6일 흐린 날씨에 기대했던 노을은 보지 못했다. 그러나 잿빛 하늘을 흡수한 무채색의 갯벌 또한 감성을 자극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세상의 빛을 모두 빨아들인 바다, 자극적인 색깔이라곤 남김없이 흡수해버린 갯벌에서 하늘과 땅의 경계마저 흐릿하다. 무한의 바다, 끝을 가늠하기 어려운 아득한 세상이 펼쳐진다. 길 잃은 고깃배들이 펄 위에 표류하고 있다.
노을길 중간에 낙지공원이 있다. 야영장을 갖춘 솔숲 해안에 낙지 모양의 전망대를 세웠다. 약 3층 높이의 낙지 머리를 흐느적거리는 다리가 받치고 있는 형상이다. 낙지도 문어도 다리가 여덟인데, 전망대 다리는 아무리 봐도 여섯이다. 바다생물 모양의 창으로 보면 해안선과 나란히 모래사장이 가늘게 이어지고, 그 안쪽으로 펼쳐지는 갯벌은 아래보다 한결 넓어 보인다. 6개 다리 중 2개는 미끄럼틀로 만들었다.
노을길이 끝나는 현경면의 서쪽 끝도 조금나루처럼 육지가 가느다랗게 이어진다. 물이 대롱을 타고 내리도록 만든 홈통을 닮아 홀통해수욕장이라는 재미난 이름이 붙었다. 호리병 목처럼 잘록한 땅을 사이에 두고 한쪽은 갯벌, 반대편에는 모래사장이 형성돼 있다. 해변과 닿은 솔숲은 야영장으로 이용된다. 저녁 무렵 갯벌에서 열심히 호미질하던 어민들이 돌아오고 있다. 바닷물이 차면서 뒤편 갯골이 점점 넓어지고 있었다.
망운면의 톱머리해수욕장도 홀통만큼이나 특이한 지명이다. 방파제로 육지와 가까스로 연결되는 땅끝이 토끼 형상이어서 ‘토머리’로 부르다 ‘톱머리’로 변했다고 한다. 간조 때면 길쭉하게 드러나는 백사장이 송림과 어우러져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한다. 이 때문에 해안 주변에 숙박시설과 식당, 카페 등이 제법 많은 편이다. 포구에는 여객기가 곧추선 모양의 등대가 세워져 있다. 길쭉한 해안선 뒤편이 무안국제공항 활주로다. 일대는 육질이 연하고 과즙이 많은 ‘대안단감’ 육성 재배지였다. 바다가 보이는 언덕에 지금도 감밭이 남아 있다.
해제면 동쪽 바닷가에 무안황토갯벌랜드가 있다. 시설 명칭에 굳이 ‘황토’를 넣은 이유가 있다. 톱머리에서 현경면을 거쳐 해제면으로 이어지는 도로를 따라가면 좌우로 바다가 펼쳐진다. 높은 산이라 해도 해발 100m 남짓하고, 대개는 밭으로 개간한 낮은 구릉이 부드럽게 곡선을 그린다. 구름처럼 뭉실뭉실한 지형이다. 요즘은 고구마 수확이 한창인데, 속살을 드러낸 농토가 온통 황토색이다. 얼핏 보기에도 한없이 부드럽고 기름지다. 늦가을에 무와 배추 수확이 끝나고 겨울로 접어들어도 일대 들판은 푸른빛이다. 대파와 양파, 마늘이 황톳빛 들판을 뒤덮기 때문이다.
무안황토갯벌랜드는 갯벌의 가치를 알리기 위한 생태학습장이다. 무안 갯벌에는 국내에 자생하는 염생식물의 약 50%가 자라고 있다. 갈대를 비롯해 한여름에 갯벌을 자줏빛으로 물들이는 칠면초, 갯잔디와 갯완두, 목본인 순비기까지 다양하다. 도요물떼새를 비롯한 50여 종의 철새도 해마다 이곳을 찾는다고 한다. 과학관에는 이들 식물과 조류, 갯벌에 서식하는 다양한 물고기와 그 생태를 전시하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학생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공간은 디지털수족관이다. 돌고래를 비롯한 바닷속 생물들이 유영하는 영상이 실제 수족관 못지않게 생생하다.
과학관 앞 역시 광활한 갯벌이다. 맞은편 함평 땅까지 짧은 곳은 7km, 먼 곳은 11km까지 드넓은 갯벌이 부챗살 모양으로 펼쳐진다. 갯벌은 하루 두 번 물이 들고 나면서 스스로 살아 있음을 증명한다. 약 6시간마다 스멀스멀 갯골을 기어오른 바닷물은 다시 눈에 띄지 않게 슬금슬금 뒷걸음질치기를 반복한다. 무채색 갯벌에 영양분을 공급하고 생명을 불어넣는다.
너무나 조용해 죽은 땅처럼 보이지만 갯벌은 온갖 생명의 먹이활동으로 수런거린다. 갯가로 내려가 단 1분만 움직임을 멈춰보면, 이름을 열거하기 힘든 수많은 생물이 구멍에서 기어 나와 끊임없이 바닥을 누빈다. 촉촉한 갯벌 표면에 요즘은 파래가 파르스름하게 덮여 있다. 과학관 앞 덱 산책로에서 관찰할 수 있다. 그 앞으로 갯벌 반 하늘 반, 가슴이 뻥 뚫리는 풍광이 펼쳐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