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자의 삶과 소비
2010년대에 들어서면서 한때 수저계급론이 유행했던 적이 있습니다. 스스로의 노력보다는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에 따라 경제적 계급이 나뉜다는 자조 섞인 유행어인데요. 원래는 좋은 가정환경과 조건을 가지고 태어났다는 금수저와 그 상반된 개념으로 부모의 경제적 도움을 전혀 받지 못한 흙수저 정도로 나뉘었습니다. 당시에는 가구 자산이나 소득에 따라 중간계급으로 동수저와 은수저가 추가되고, 금수저를 넘어선 다이아수저 계급까지 평가되었습니다. 시간 흐름에 따라 당시와는 경제수준에 차이가 존재하니 절대적인 금액으로 비교하기에는 조금 무리인 것 같고, 대략 가구 순자산 기준으로 상위 1%(2021년 기준 29억 원) 이상을 금수저, 상위 0.1%(77억 원) 이상을 다이아수저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마침 모 방송국에서 ‘금수저’라는 제목의 드라마가 한창 방영되고 있어서 수저계급론을 다시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부자의 모습을 현실의 삶에서보다는 TV 드라마나 영화 같은 매체를 통해 더 많이 접하게 됩니다. 직접적인 경험이 아닌 간접적으로 부자에 대한 이미지가 형성되다 보니 왜곡이 좀 발생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는 부분입니다. 실제 부자 삶의 모습보다 다소 과장되거나 지나치게 표현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부자만이 아니라 중산층의 모습도 마찬가지입니다. 엄밀하게 평가하자면 방송이나 영화에서 부자는 재벌, 중산층은 부유층의 모습에 가깝게 그려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실제 부자들이 살아가는 삶의 모습이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지난 번에는 통계적인 부자의 기준을 자산과 소득 관점에서 살펴보았습니다. 이번에는 소비 관점에서 부자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부자는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요? 부자가 되는 과정을 생각해보면 몇 가지 유형으로 구분됩니다. 가장 먼저 아예 부자로 태어나는 ‘상속형 부자’입니다. 이미 부자인 부모에게서 태어나거나 부모가 부자가 되면서 자연스럽게 그 부를 물려받게 되는 유형이지요. 앞서 언급한 금수저들입니다. 그러데 상위 1% 정도면 자신이 죽을 때까지 여유 있게 살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자식 세대까지 경제적으로 걱정 없이 살려면 상위 0.1% 정도의 부자는 돼야 할 것 같습니다.
두 번째로 쉽게 접근하지만 원하는 결과를 얻기에는 정말 쉽지 않은 ‘로또(행운)형 부자’가 있습니다. 주변을 보면 로또 구매 등을 통해 일확천금의 꿈을 꾸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1등에 당첨할 확률은 대략 814만5,060분의 1로 비행기 사고나 바닷가에서 수영을 하다가 상어에게 물려 죽을 확률보다 낮은, 매우 희박한 가능성에 기대하는 방법입니다. 로또의 평균 당첨금액은 약 20억 원으로 기타소득세를 제외하고 나면 14억 원 정도 됩니다. 확률만 낮은 것이 아니라 1등 당첨이 된다 해도 중산층을 바로 부자로 만들어 주기에는 많이 부족해 보입니다. 그래도 명당에서 로또를 사면 당첨확률이 올라가지 않을까요? 로또 당첨은 독립사건이라 사는 개수만큼 확률은 올라가지만 획기적으로 구입 금액을 늘리지 않는 한 당첨확률이 낮은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겹치지 않는 번호로 1억 원어치를 산다고 해도 1등 당첨확률이 1.2%에 불과합니다. 로또명당에서 열심히 로또를 사는 행위는 결국 로또 가게 주인만 부자로 만들어주는, 남 좋은 일만 해주는 결과입니다.
다음은 ‘자수성가형 부자’가 있습니다. 사업적으로 성공하거나 기업의 성장에 기여하는 임원이 되는 방법, 어떤 영역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재능으로 인정받는 등 개인 역량을 통해 인적소득을 충분히 만들어 부자가 되는 방법입니다. 누구에게나 열려있지만 탁월한 재능과 엄청난 노력이 모두 필요하기 때문에 결과를 장담하기 어렵습니다. 대신 자산규모를 측정하는 게 무의미한 상상 이상의 부자가 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마지막으로 ‘자산관리형 부자’가 있습니다. 경제활동을 하면서 꾸준한 자산관리를 통해 50대 이후 은퇴할 즈음에는 생활비 걱정 없이 살아갈 수 있는 부자를 말합니다. 평범한 직장인과 같이 평균적인 삶의 모습으로 시작해도 달성 가능한 부자의 유형 중 가장 흔하게 접할 수 있는 유형입니다. 그렇다고 아무나 다 되는 손쉬운 방법은 아닙니다. 자수성가형 부자처럼 탁월한 재능이나 엄청난 노력이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관련 지식에 대한 습득 노력과 목표를 달성할 때까지 인내심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비는 결국 살아가는 모습과 직결됩니다. 소비 관점에서 부자를 판단해보면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가격보다는 해당 재화에 대한 만족 여부로 소비 의사결정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평소 소비활동을 하는데 예산에 별다른 제약이 없다면 부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국내 타 금융연구소들의 부자보고서에 따르면 부자들은 대략 월평균 800만~1,000만 원 정도를 소비하는 것으로 조사되었습니다. 한편 통계청 가계금융복지조사에 따르면 상위 1% 안에 드는 순자산 보유 가구는 월평균 479만 원을 소비하고 있었습니다. 적게는 500만 원에서 많게는 1,000만 원 정도를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 정도 소비를 하려면 적어도 연 1억 원 이상의 소득, 즉 현금흐름이 발생돼야 가능합니다. 소비에 필요한 현금흐름을 근로소득이나 사업소득으로 충당할 수 있지만 이런 인적소득은 대부분 은퇴라는 이벤트로 소득기간이 한정됩니다. 죽을 때까지 걱정 없이 소비할 수 있어야 부자로 인정된다면 부자의 조건으로 조금 아쉬운 상황이겠지요.
여기서 상대적으로 적은 노력이 들어가는 자산소득이 충분하다면 인적소득이 없어도 소비활동에 별 문제가 생기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부자들의 소비를 충당할 만큼 자산소득을 만들어 줄 수 있는 자산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따져보았습니다. 연 수익률 4%로 가정하는 경우 연간 1억 원의 수익을 만들기 위해서는 25억 원이 필요합니다. 거주 주택, 사는 집을 제외하고 직접 운용 가능한 순자산을 25억 원 이상 보유하고 있다면 경제적 자유를 달성한 상태, 부자로 인정할 수 있는 수준입니다. ‘사는 집은 왜 빼?’라고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습니다. 이유는 거주 주택도 자산이지만 사는 동안 현금흐름이 발생하지 않고 보유세 등 오히려 비용이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또 일부를 팔아 현금흐름을 만들어 쓰기 어렵고, 값이 오른다 해도 차익이 바로 소비로 연결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담보대출이 없는 거주용 아파트가 서울지역 평균 매매가격(2021년 12억 원) 수준이라면 순자산은 37억 원이 되는데, 이는 우리나라 가구 순자산 상위 0.5%(39억 원)에 근접한 규모입니다. 이 정도부터는 객관적으로 부자가 확실해 보입니다. 실제 중산층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NH투자증권 100세시대연구소)에서도 부자로 인정하는 순자산이 평균 32억 원으로 나타났습니다.
자산의 증가속도가 소비 속도보다 빠르다면 경제적 자유 상태를 달성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즉 자산으로 벌어들인 소득이 현재 소비하는 수준보다 많으면 됩니다. 물론 자산 등 경제적 역량이 증가하면 소비도 늘어나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부자들은 돈을 많이 쓰는 것 같지만 벌어들이는 소득보다는 적게 소비하면서 자산이 계속 늘어날 수밖에 없는 선순환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자산은 운용하는 한 계속 늘어날 수 있지만 소비에는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일정기간 소비되는 재화의 수량이 증가할수록 재화의 추가분에서 얻는 한계 효용은 점점 줄어든다는 법칙)이 작용하면서 무한정 늘어나지는 않습니다. 이를 근거로 통상적인 부자의 기준을 정해 보겠습니다. 일단 부자들의 연간 생활비(1억 원)의 2배인 2억 원의 소득을 만들 수 있다면 스스로를 부자라고 생각해도 무리 없어 보입니다. 죽을 때까지 부자의 삶을 누려도 자산이 줄어들 확률이 매우 낮기 때문입니다. 현재 기준으로 인적소득이 함께 발생하는 은퇴하기 전이라면 거주주택을 제외한 순자산 25억 원, 은퇴 이후라면 순자산 50억 원 정도가 부자의 기준점으로 보입니다. 너무 많아 보이시나요? 이는 경제생활 초기부터 꾸준한 자산관리를 했다고 가정했을 때 50대쯤(경제활동 20년)에 달성 가능한 수치입니다. 당신도 부자가 될 가능성은 얼마든지 열려 있습니다. 물론 더 적은 자산으로 충분히 만족한다면 이 또한 권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