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10일 취임 5개월을 맞이했지만 야당 지도부와의 회동은 여전히 '감감무소식'이다. 새 정부 첫 국정감사 돌입 후 전·현 정부를 겨냥한 여야 간 충돌이 격해지면서 회동을 위한 물밑대화가 아예 끊긴 탓이다. 문재인·박근혜·이명박·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 각각 취임 후 짧게는 10일 길게는 2개월 반 만에 야당 대표나 원내대표 등과 회동한 것과 대비된다. 세계적 경제 위기 상황에서 윤 대통령이 협치를 위한 대화 복원에 소극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9일 한국일보와 통화에서 "지금 상황에서는 윤 대통령과 여야 지도부 간 회동을 추진하기가 쉽지 않다"며 "조율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이진복 정무수석이 지난달 중순 "윤 대통령이 해외 순방을 다녀오면 여야 지도부가 함께 만나는 것을 고려해보겠다"며 회동 가능성을 열어뒀던 것과는 다른 분위기다.
당초 회동의 걸림돌로 꼽혔던 '이준석 리스크'로 불리던 여권 내홍만 정리되면 회동이 급진전될 것이라는 예상도 빗나갔다. 국민의힘 고위 관계자는 "당장 (당 내에서) 할 일이 많다"며 당분간 회동이 어려울 것이란 전망에 무게를 실었다.
분위기가 급변한 배경에는 국감이 시작되면서 전방위적으로 여야가 충돌하고 있어서다. 민주당은 이번 국감에서 윤 대통령의 외교 참사 논란 외에 대통령실의 용산 이전 예산과 부대시설 신축 예산을 쟁점화하고 있다. 감사원이 지난주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과 관련해 문재인 전 대통령에게 서면조사를 요구한 것은 야권에 불을 지른 격이었다.
대통령실과 여당은 야당의 공세에 연일 강경하게 대응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국감에 앞서 제기된 윤 대통령의 비속어 논란과 관련, 이를 첫 보도한 MBC와 민주당 간 '정언 유착' 의혹을 제기하며 맞불을 놓았다. 대통령실 측에서도 윤 대통령의 순방 후 하락했던 지지율을 끌어올리기 위해선 야당과 선명하게 각을 세워 전통 보수 지지층에 구애하는 편이 보다 효과적이란 판단을 내리고 있다. 실제 지난주 한국갤럽 여론조사 결과, 북한의 미사일 도발에 따른 안보 위기 속에 보수 지지층이 결집하면서 윤 대통령의 지지율은 전주 대비 5%포인트 상승한 29%를 기록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사법리스크'도 협치 분위기 조성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민주당은 국감이 종료되는 이달 말 이후 검경의 전방위적 수사가 본격화할 것이라고 보고 공세를 이어간다는 구상이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대통령과 여야 지도부가 만나 웃으면서 대화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그러나 여소야대인 국회 상황에서 윤 대통령이 정부조직 개편과 연금·노동·교육 등 3대 개혁 추진을 위해선 민주당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이를 위해 윤 대통령이 야당 지도부와의 회동을 추진해 관계 개선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윤 대통령이 한남동 관저로 이사가게 되면 여야 지도부에 김치찌개를 직접 끓여서 대접하는 식의 회동을 할 생각도 있다"며 "여야 대표와 국정을 논의하고자 하는 뜻에는 변함이 없다"고 했다.
*자세한 여론조사 결과는 한국갤럽과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의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