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아이 안고 숨진 선생님... '어린이집 학살' 참혹한 현장

입력
2022.10.07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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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잠 자던 아이 22명, 처참히 살해돼
아이 안은 채 사망한 교사도 발견
'은둔' 국왕부터 시민 모두 애도 물결


6일 낮 12시 10분. 태국 북부 농부아람푸주(州) 나끌랑 지역에서 어린이집을 운영하는 나티차 뿐춤 원장은 편안한 표정으로 마당을 내다보고 있었다. 점심 식사를 마친 2~5세 아이 30여 명은 곤하게 낮잠을 자는 중이었다. 임신 8개월째인 교사와 관리 직원 등 4명은 마당에서 수다를 떨며 도시락을 먹고 있었다.

어린이집 앞에 픽업트럭 한 대가 섰다. 차에서 내린 남성은 "아들을 찾으러 왔다"고 했다. "그 아이는 오늘 나오지 않았다. 집에 있다"고 일러 주자마자 남성은 악마로 돌변했다. 어린이집 건물과 마당을 향해 산탄총과 권총을 난사했다. 마당에 있던 교사와 직원들은 즉사했다. 실내에 있던 원장과 교사들은 출입문을 다급히 걸어 잠그고 아이들이 있는 방으로 내달렸다.

출입문은 금세 부서졌다. 남성은 손에 총과 흉기를 들고 건물에 진입했다. 방을 일일이 뒤지며 아이와 어른을 가리지 않고 무자비하게 해쳤다. 아이 22명을 포함한 38명이 속절없이 목숨을 잃었다. 중상을 입은 약 10명의 생사도 불투명하다. 참극이 끝나고 도착한 구조대원은 "수많은 살인 사건 현장에 출동했지만, 이렇게 참혹한 현장은 처음 본다"며 치를 떨었다. 아이를 안은 채 흉기에 찔려 숨진 교사의 시신도 나왔다.


마약에 취한 전직 경찰관, 가족까지 살해한 뒤 자살

7일 방콕포스트에 따르면, 가해자는 전직 경찰관인 빤야 캄랍(34)이다. 올해 1월 마약 소지 등 혐의로 기소돼 해임된 그는 6일 오전 법원에서 재판을 받았다. 법원 밖에서 그를 만난 빤야의 어머니는 "약에 취해 눈빛이 정상이 아니었고, 재판에 대한 스트레스로 매우 불안정한 상태였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빤야의 학살은 어린이집에서 끝나지 않았다. 차량으로 오토바이를 들이받았고, 남은 총탄을 거리에 난사했다. 최소 10명의 시민들이 중상을 입었고 사망자도 나왔다. 귀가한 빤야는 차를 불태운 뒤 아내와 세 살 난 아들을 살해하고 자살했다.

조기 건 태국… 국왕이 직접 사건 현장 방문

태국은 큰 슬픔에 잠겼다. 전국 모든 관공서에 희생자를 애도하는 '조기'(弔旗)가 걸렸다. 왕실 행사 말고는 좀처럼 외부 행사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마하 와찌랄롱꼰(라마 10세) 국왕이 유가족을 만나 위로할 예정이다.

쁘라윳 짠오차 총리는 "피해자와 유가족 보상, 부상자 치료를 위해 모든 조치를 취하라"고 정부에 지시했다. 태국 법무부는 "유가족에게 우선 총 11만 밧(414만 원)의 보상금을 지급하겠다"고 밝혔다. 태국 시민은 어린이들의 넋을 애도하는 집회를 전국 곳곳에서 개최했다.

태국 경찰은 "피해자와 지역민들의 정신적 충격을 고려해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 현장 동영상과 사진을 공유하지 말아 달라"고 당부했다. SNS에 올라왔던 관련 이미지는 대부분 삭제됐으며, 아이들을 추모하는 메시지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하노이= 정재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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