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수족관에 남은 마지막 남방큰돌고래 '비봉이'가 이달 말 안으로 방류될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비봉이가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앞바다에 설치된 가두리에 있는 동안 야생 돌고래 무리와 교류한 점은 방류 성공에 긍정적 신호로 보고 있다. 다만 여전히 사람을 따르는 점, 야생 부적응 시 구체적 재포획 방안이 마련되지 않은 점은 풀어야 할 과제다.
비봉이는 8월 4일 제주 서귀포시 돌고래체험시설 퍼시픽리솜(옛 퍼시픽랜드)에서 가두리에 옮겨진 뒤 야생생태계 적응훈련에 돌입하던 중 약 한 달 만인 31일 제11호 태풍 힌남노를 피해 다시 수족관으로 이송됐다. 태풍이 지나가고 가두리 보수작업이 완료되면서 방류협의체(해양수산부, 제주도, 호반호텔앤리조트, 핫핑크돌핀스, 제주대)의 결정에 따라 지난달 27일 다시 가두리로 옮겨져 방류를 앞두고 있다.이번 방류를 총괄하고 있는 김병엽 제주대 교수는 "비봉이 건강상태가 유지되고, 날씨가 허락한다면 이르면 이달 중순 방류할 수 있다"고 했다.
비봉이의 건강상태는 양호한 것으로 전해졌다. 당초 175㎏ 나가던 몸무게는 1차 가두리에 있는 동안 30㎏ 가까이 줄었지만 수족관에서 다시 10㎏ 찐 상태로 재이송됐다. 김병엽 교수는 "비봉이가 활어를 먹는 양은 비슷한데 가두리에서는 (수족관에 있을 때보다) 활동량이 많아 체중이 빠졌다"며 "활어를 잘 먹고 있다. 가두리로 재이송한 뒤에도 (비봉이의) 움직임이 좋다"고 설명했다.
방류협의체는 8월 한 달간 비봉이의 야생훈련 결과를 공개하며 방류 성공 가능성에 무게를 뒀다. 해수부는 "제주도 연안의 수온과 조류, 파도 등 야생 환경에 잘 적응해 왔다"며 "매일 약 5~7㎏ 정도의 활어를 직접 사냥해 먹는 등 활어 사냥능력이 크게 향상됐다"고 전했다. 호흡이나 잠수 시간 등의 행동특성도 안정적으로 평가했다.
방류협의체가 특히 희망을 걸고 있는 부분은 야생 돌고래 무리와의 접촉이다. 1차 가두리 훈련기간 28일 가운데 절반인 14일 총 42회에 걸쳐 돌고래 무리와 조우하는 모습이 관찰됐다. 비봉이는 가두리 내에서 함께 유영하거나 물 위로 뛰어올라 떨어질 때 몸을 수면에 크게 부딪치는 행동(브리칭)을 보이는 등 적극적으로 교류하는 모습도 보였다. 재이송된 이후에도 무리와의 만남은 3일 동안 4회에 달했다.
음향 분석에서도 야생 무리가 비봉이에게 소통 신호를 보낸 것이 수차례 확인됐다고 한다. 김 교수는 "이전 제돌이, 춘삼이, 삼팔이 방류 때 접촉횟수인 약 4~6회보다 7배가 많다"며 "이렇게 많이 만날지 몰랐다. 놀라울 정도다"라고 전했다.
가두리 내 야생 돌고래와의 만남이 방류 후 무리 합류를 담보하지는 않더라도 긍정적이라는 데에는 전문가들의 의견도 일치한다. 미국 동물복지연구소(AWI) 소속 해양포유류학자인 나오미 로즈는 한국일보에 "해수부가 공개한 사진과 영상을 보면 무리가 비봉이에게 공격성 대신 호기심을 갖고 교류하려는 것으로 보인다"며 "이는 (무리와 합류하는데) 긍정적 신호다"라고 평가했다.
다만 무리와의 만남이 방류 성공을 담보하는 것은 아니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로즈는 "(방류는) 여전히 모험(gamble)"이라며 "비봉이가 야생에서 괴로움을 나타낸다면 재포획할 계획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재포획 방안은 마련되어 있을까. 이재영 해수부 해양생태과장은 "방류기술위원회가 재포획 기준, 방안을 놓고 논의하고 있다"며 "거의 마무리됐다. 이는 방류할 때 공개할 예정이다"라고 했다. 김병엽 교수도 "제돌이 방류 때 나오미 로즈와 세계적 돌고래 활동가 릭 오베리로부터 자문을 구한 재포획 기준, 방법을 이번 비봉이 사례에도 적용하려 한다"고 소개했다.
하지만 방류 이전 마련했어야 할 재포획 방안을 방류한 지 2개월이 넘도록 결정짓지 못한 것을 두고 비판이 나온다. 또 재포획 이후 이송할 수족관도 결정하지 못했다. 더욱이 2013년 발간된 제돌이 야생방류 관련 최종보고서에 따르면 나오미 로즈와 릭 오베리가 제시한 제돌이 방류 실패 시 회수∙관리 방안은 이론적, 원칙적인 내용에 그쳐있다. 이형주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 대표는 "야생동물 재포획은 쉬운 일이 아니다"라며 "지금이라도 포획을 시도해본 전문가에게 자문을 구해 재포획 주체와 방법 등을 철저하게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비봉이가 여전히 사람에 대한 친밀감을 지속적으로 보이고 있는 것도 방류에 걸림돌이다. 김 교수는 "수족관으로 재이송됐을 때 방진복을 입고 활어를 급여했고, 가두리 내에서도 사람이 접근할 때는 드론(무인항공기)을 띄우지 않는 등 사람과의 접촉을 최소화하고 있다"고 했다.
이와 관련, 이영란 오산대 교수(해양동물 수의사)는 "비봉이가 사람과 산 게 17년이다. 사람은 밥을 주는 존재로 인식하고 있을 것"이라며 "이를 한두 달 만에 바꾸는 건 어렵다. 시간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비봉이 체중이 다소 감소한 것도 우려되는 부분이다. 방류기술위원회에 참여하고 있는 이경리 국립수산과학원 고래연구센터 연구사는 "이전 방류사례와 달리 수온이 내려가는 겨울철을 앞두고 있어 체중이 줄어든 게 다소 걱정"이라며 "현재 문제가 될 정도는 아니지만 앞으로 어떨지 유심히 지켜봐야 한다"고 했다.
비봉이 방류는 처음부터 논란이 거셌다. 비봉이가 ①원서식지에 ②젊고 건강한 개체를 ③가능한 짝을 지어 방류한다는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해서다. 비봉이의 추정 나이는 20~23세로 젊다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고, 어릴 때(3~6세) 잡힌 데다 수족관 생활(17년)이 길다. 더욱이 지금까지 돌고래 방류와 달리 단독으로 방류해야 하는 점은 우려를 더 키웠다.
하지만 비봉이 방류 결정 과정에서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은 아예 배제된 채 진행된 점은 아쉬운 대목이다. 방류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구성된 방류협의체는 처음부터 방류에 방점을 두고 진행했고, 충분한 논의 없이 방류기준이나 재포획 기준, 방법 등의 매뉴얼을 마련하지 않은 채 비봉이를 가두리로 보냈다. 조희경 동물자유연대 대표는 "당초 제대로 된 준비 없이 방류가 결정된 건 아쉽다"면서도 "지금이라도 방류를 위한 구체적인 계획과 평가 지표, 기준, 부적응 시 대안 등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나오미 로즈는 "제돌이를 포함 다섯 마리 방류는 방류 조건에 맞춰 성공한 반면 금등이와 대포는 그렇지 못했다"며 "비봉이는 금등이와 대포 때보다는 나은 조건으로 보이지만 방류 후 철저한 모니터링이 뒤따라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