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메모리반도체(D램+낸드플래시) 수요가 급감하는 혹한기에 들어섰음에도 "인위적 감산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경쟁 업체 미국 마이크론이 설비 투자 축소와 더불어 감산에 나서기로 하면서 전 세계 메모리반도체 1위 업체인 삼성전자의 조치에 이목이 쏠렸는데, '감산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처음으로 공식화한 것이다.
한진만 메모리사업부 부사장은 지난 3일(현지시간)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현지 기자들과 만나 메모리반도체 감산 가능성에 대해 "현재로선 감산에 대한 논의는 없다"고 했다. 그는 "인위적 감산은 없다는 게 삼성전자의 기조"라며 "다만 시장에 심각한 공급 부족이나 과잉이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부연했다.
반도체 산업은 일단 공장 가동을 시작하면 중간에 생산량을 줄이는 게 손해인 데다, 장기적인 수요 예측이 어렵다. 그럼에도 감산을 결정하는 건 '이대로는 버티기 어렵다'는 판단이 섰을 때다. 수요가 줄어드는데도 공급량은 그대로 유지할 경우, 재고만 늘어 만들수록 손해가 커지기 때문이다. 메모리반도체 3위 기업인 마이크론이 지난달 30일 내년 설비투자 규모를 30% 축소하고, 연말연초 공장 가동률을 5% 줄이겠다고 밝힌 이유다. 삼성전자에 이어 낸드플래시 시장 2위 업체인 일본 키옥시아도 이달부터 생산량을 30% 줄였다.
삼성전자는 1996년 이후 반도체 불황에 대응하기 위한 감산에 나선 적이 없다. 지난해 12월 중국 산시성 시안(西安) 공장이 생산라인을 축소 운영했는데, 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세로 도시 자체에 봉쇄령이 내려진 탓이었다. 2019년 SK하이닉스가 11년 만에 메모리반도체 생산량을 줄이기로 했을 때도 삼성전자는 "인위적 감산은 없다"는 방침을 접지 않았다. 그 대신 공정 효율화 작업 등을 통해 자연스럽게 생산량을 줄이는 방식을 써왔다.
그간 감산하지 않고도 위기를 견뎌 온 경험이 이번 생산량 유지 결정에도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시장에선 마이크론 등 다른 업체들의 감산 역시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본다. 시장 전체 공급량이 그만큼 줄어든다는 뜻이라서다.
삼성전자는 5일 실리콘밸리에서 '테크데이'를 열고, 메모리반도체 시장 선두를 지키기 위한 전략을 공개했다. △내년부터 5세대 10나노급 D램 양산을 시작하고 △연내 세계 최고 용량의 8세대 V낸드 기반 제품 양산에 이어 △2024년 9세대 V낸드 양산에 돌입하겠다고 예고했다. 삼성전자는 "2030년까지 1,000단 V낸드를 개발하는 등 혁신적인 기술로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