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잡한 ‘외교참사’ 논란

입력
2022.09.23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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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해외순방이 ‘외교참사’라는 말로 연일 비난받는 중이다. 하지만 아무리 국회 국감 중이라 해도 정상외교에 나선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에 시비를 걸고 목소리를 높여 국내외 가십거리로 만드는 정치권 행태가 바람직한 건지는 의문이다.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장례식 조문 취소 문제만 해도 그렇다. 야당은 조문을 하지 않고 장례식에만 참석한 건 심각한 외교 결례라며, 심지어 공식적으로 ‘천공법사 연관설’까지 제기하기도 했다.

▦ 하지만 국가원수가 장례식에 참석한 것만으로도 충분한 성의를 보인 만큼, 그 외교적 의의를 스스로 훼손하는 논란을 증폭시킬 필요는 없지 않나 싶다. 미국 방문 중 대통령의 비속어 대화가 MBC에 방영된 일도 마찬가지다. 어쨌든 대통령의 부주의는 잘못이다. 그럼에도 가뜩이나 미묘한 시기에 자칫 ‘쌍욕’으로 오해될 수 있는 육성을, 아무런 외교적 숙고도 여과도 없이 방영한 방송사는 물론, ‘외교재앙’ 운운하며 장단 맞춘 야당 역시 결코 잘하는 걸로 느껴지지 않는다.

▦ 물론 이 모든 사단이 대통령실의 심각한 무감각과 무능력에서 비롯됐다는 점에선 개탄을 금할 수 없다. 무엇보다 기시다 일본 총리와의 정상회담 개최 사실이 우리 측에서 일방적으로 먼저 발표돼 문제를 일으킨 건 그냥 넘길 수 없는 대형사고다. 안 그래도 일본 측은 강제징용 배상 문제 등에서 강경한 자국 보수파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정상회담을 꺼리는 상황이었다. 이런 와중에 “일본이 정상회담에 흔쾌히 합의했다”는 등의 멍청한 코멘트까지 대통령실에서 나온 것이다.

▦ 대통령실의 무지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정상회담 관련 발표들을 보면 대통령 보좌진이 대체 정상회담과 약식회담, 회동, 간담회 등의 차이라도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지조차 의심스러울 정도다. 엄중한 문책이 불가피하다. 그럼에도 야당의 행태는 여전히 납득하기 어렵다. 특히 한일, 한미 관계의 뒤엉킴엔 문재인 정부의 책임도 큰 데다, 그때도 차마 되새기기조차 싫은 외교 사고가 한둘이 아니었던 만큼, 저속한 헐뜯기보다는 국익을 숙고하는 성숙한 모습을 촉구하고 싶다.

장인철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