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사의 사탑에서 우주공간으로

입력
2022.09.22 19:00
25면

편집자주

분광학과 광기술 분야를 연구하는 고재현 교수가 일상 생활의 다양한 현상과 과학계의 최신 발견을 물리학적 관점에서 알기 쉽게 조망합니다.

높은 빌딩에서 무거운 물체와 가벼운 물체를 동시에 떨어뜨리면 어떻게 될까? 고대 그리스 시대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은 무거운 물체가 먼저 떨어진다는 것이었다. 일견 당연해 보이던 이 주장에 대해 갈릴레오는 이탈리아 피사의 사탑에서 실험을 수행, 물체는 무게와 무관하게 같은 비율로 빨라지며 함께 낙하함을 보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과학 시간에 중력을 다루면서 물체의 낙하 속도는 질량과 무관하다고 배우지만 이는 우리의 직관에 배치된다. 가벼운 깃털이 무거운 쇠공과 같이 떨어지지는 않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는 깃털이 받는 공기의 저항력 때문이라는 것도 함께 배운다. 그렇다면 진공에선 깃털과 쇠붙이가 동시에 떨어질까?

1971년 아폴로 15호로 달에 착륙한 데이비드 스콧은 공기가 없는 달에서는 깃털과 망치가 같이 낙하함을 보여줬다. 더 극적인 사례는 물리학자 브라이언 콕스가 미 항공우주국(NASA·나사)의 거대한 진공 용기를 빌려 진행한 실험이다. 우주의 진공을 구현하려고 무려 30톤에 달하는 공기를 빼낸 빌딩 크기의 공간에서 깃털과 볼링공은 정확히 같은 방식으로 떨어졌다.

그런데 당연한 상식으로 보이는 이 실험을 지금도 정밀하게 진행하는 연구자들이 있다. 프랑스 연구팀은 2016년 작은 위성을 발사해 우주에서 낙하 실험을 2년간 진행한 바 있다. 위성 속에는 성분과 질량이 다른 두 물체가 정밀한 장치 속에 있었고 이들의 낙하가 전자기적 힘으로 측정됐다. 최근 발표된 연구의 최종 결과에 따르면 두 물체는 무려 '1,000조 분의 1'의 정밀도를 가지고 동일하게 낙하했다.

낙하의 속도가 얼마나 중요하길래 지상도 아닌 우주에서 실험을 진행했을까? 우주는 지진의 진동이나 지각의 거대한 물체에 의한 중력의 영향이 없기에 물체의 낙하를 정밀하게 조사할 수 있는 이상적인 장소다. 그런데 이런 초정밀 낙하 실험은 과학자들에게 더 근본적인 차원의 의미를 던져준다. 질량을 가진 모든 물체는 서로를 끌어당기는 중력을 일으킨다. 이 중력은 물체의 질량이 클수록 강해진다. 중력을 일으키는 물체의 질량을 '중력 질량'이라고 한다.

그런데 과학에서 다루는 질량에는 또 다른 종류가 있다. 물체는 외부의 힘이 없을 땐 자신의 운동 상태를 유지하려는 성질, 즉 관성을 가진다. 외부에서 힘을 받을 때만 물체는 속력이나 운동 방향을 바꾼다. 그런데 무거운 물체일수록 외부 힘에 저항하며 자신의 운동을 유지하려는 관성이 크다. 가령 1㎏의 물체에 힘을 주어 1초 만에 속도를 초속 4m로 증가시켰다면 2㎏의 물체에 동일한 힘을 주면 1초 후 속도는 절반에 불과하다. 이 경우 질량은 해당 물체가 외부 힘에 저항하는 정도를 나타내기에 '관성 질량'이라고 부른다.

질량이 다른 두 물체가 중력하에서 함께 낙하하는 것은 이 두 종류의 질량이 같아야 가능하다. 중력 이론의 창시자인 뉴턴은 이 두 질량을 같다고 가정했고 아인슈타인은 "중력 질량=관성 질량"이라는 등가성에 근거해 일반상대성이론을 주창할 수 있었다. 따라서 이번 실험은 등가성 및 아인슈타인의 중력 이론이 '1,000조 분의 1'의 정밀도로 정확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프랑스의 연구팀은 향후 정밀도를 더 높인 실험도 계획 중이다. 만약 등가성이 무너지면 어떻게 될까? 그건 과학자들이 새로운 모험을 떠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아인슈타인의 중력 이론에서 중력은 질량에 의한 시공간의 왜곡으로 해석되지만 인류가 파악한 다른 세 힘(전자기력, 강력, 약력)이나 미시 세계를 설명하는 양자역학과는 동떨어져 있다. 극한의 한계까지 정밀도를 높이려는 과학자들의 노력은 새로운 차원의 중력 이론을 세우고 아직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암흑물질의 정체를 밝히려는 시도의 중요한 첫걸음이 될지도 모른다.

고재현 한림대 나노융합스쿨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