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방울 그림 속에 숨은 달마대사...“아버지의 침묵 탐구”

입력
2022.09.22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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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 '물방울을 그리는 남자' 김오안, 브리지트 감독

50년 동안 물방울만 그렸다. 도를 닦듯 그려낸 그림들은 세상의 눈을 사로잡았다. 미술과 가깝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익숙한 이미지가 됐다. 김창열(1929~2021) 화백의 생은 남달랐다. 그는 어떤 삶을 살았기에 물방울 그림만으로 거장의 자리에 이르렀을까. 다큐멘터리 영화 ‘물방울을 그리는 남자’(28일 개봉)는 김 화백의 삶과 작품 세계를 탐색한다. 김 화백의 둘째 아들 김오안 감독, 브리지트 부이요 감독이 공동 연출했다. 19일 오후 서울 신문로 한 공유오피스에서 두 사람을 만났다.

김 감독은 프랑스 파리에서 나고 자랐다. 파리고등미술학교와 파리고등음악원에서 사진과 작곡을 전공했고 사진작가 겸 영화감독으로 활동하고 있다. 사진 개인전을 약 20차례 열었고 단편영화를 만들었다. 재즈 색소폰 연주자이기도 하다. ‘물방울을 그리는 남자’는 김 감독의 장편영화 데뷔작이다. 그는 촬영과 음악, 편집, 음향까지 맡았다.

김 감독은 서울에 거주하는 아버지를 자주 볼 요량으로 영화를 기획했다. 어렸을 적 자신을 힘들게 했던 부친의 침묵이 궁금하기도 했다. “2014년 착수해 1년 정도면 완성될 줄 알았던” 다큐멘터리는 5년가량 걸렸다. 김 감독은 “한국에 올 때마다 조금씩 아버지를 촬영했다”며 “대화를 나눌수록 아이디어가 많이 생겨났고 시간이 지나며 영화가 무르익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김 화백은 묵묵히 정진하듯 그림만 그렸던 인물이다. 김 감독에게 그런 아버지는 물음표 같은 존재였다. “산타클로스보다 스핑크스에 더 가까운 사람이었다.” 어린 시절 잠들기 전 해주는 옛날이야기도 여느 부모와 달랐다. 잠들지 않기 위해 자신의 눈꺼풀을 자르며 수년간 면벽수행했던 달마대사 이야기를 해주고는 했다.

영화는 화백의 침묵 속에 깃든 어둠을 포착한다. 김 화백은 북한에서 이데올로기의 폭력을 겪은 후 월남했고, 이후 6ㆍ25의 참상을 목도했다. 좌익으로 몰려 목숨도 잃을 뻔했다. 중학교 동창 중 절반이 숨졌을 정도로 전쟁은 참혹했다. 화백은 “전쟁이 아니었더라면 꽃 그림, 여자 나체, 풍경을 그렸던 시대였을 것”이라고 나지막이 말한다. 화백의 아내 김마르틴은 “(먼저 간 사람들의 시간을 대신하기 위해) 자신의 삶을 낭비할 권리가 없던 거죠”라고 짚는다. 김 화백은 마음속에 달마대사를 늘 품고 있었다.

김 감독이 태어났을 때 아버지는 이미 물방울 그림만 그리고 있었다. 김 감독은 “어린 시절 아버지의 물방울이 오토바이처럼 보였다”면서 “물방울 그리는 모습이 빵 굽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행동으로 여겨졌다”고 말했다.

공동 연출한 부이요 감독은 김 감독의 오랜 지인이다. 약 10년 전 전시회에서 시노그래퍼(공연ㆍ전시의 시각 콘텐츠를 디자인하는 사람)로 일하다 김 감독과 인연을 맺었다. 부이요 감독이 “도움을 주고 싶다”고 먼저 제의해 연출 작업에 합류했다. 부이요 감독은 영화 연출을 맡기 전 “한국에 대해 전혀 몰랐고 한국에 와 본 적도 없었다”고 했다. “한 달 정도 생각했던 작업”은 예상을 훌쩍 뛰어넘었다. “한국을 네 차례 방문”하였고, “김 화백이라는 아주 새로운 발견”을 하게 됐다. 그는 “처음엔 물방울 그림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 김 화백의 삶을 이해하고선 선입견을 가졌던 걸 굉장히 후회하게 됐다”고 말했다. 부이요 감독은 “김 감독이 굉장히 사적이고 내밀한 주제를 다루기에 의식적으로 김 화백과 거리를 두려 했다”며 “저는 정반대로 그에게 내밀함 속으로 더 들어가라고 말하곤 했다”고 밝혔다.

영화는 자료화면 등을 통해 다양한 물방울 이미지를 보여준다. 하늘을 뒤덮은 낙하산 부대, 지붕 위에 떨어지는 빗방울 등이 김 화백의 그림들을 연상시킨다. 김 감독은 “자료를 찾기 위해 집 서랍을 많이 뒤졌는데 작업 중 제일 재미있는 일이었다”고 말했다.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하는 장면이 담긴 TV 화면을 삽입하려고 했으나 북한 방송의 반대로 이뤄지진 않았다. 부이요 감독은 “미사일에서 연기가 나오는 모습이 떨어지는 물방울과 꼭 닮아 쓰고 싶었다”며 “북한 아나운서의 과장된 몸짓과 말투, 미사일 발사라는 폭력성이 영화에 잘 어우러지리라 판단했다”고 밝혔다.

김 화백은 완성된 영화를 보지 못했다. 김 감독은 “(너무 연로해서) 오래 집중을 못하셔서 못 보여드렸다”며 “완성 전 일부를 조금씩 보셨을 때는 아무 말씀을 안 하셨다”고 말했다. 둘째 아들의 작업을 침묵으로 응원한 셈이다. 김 감독은 “아버지는 그렇게 많은 성취를 이루고도 돌아가실 때까지 자신의 그림에 자신이 없었다”며 “작품 주제 역시 덧없음, 헛됨이었다”고 생전 부친의 면모를 되새겼다.

라제기 영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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