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숙성 기술인데... "아버지 아직 내비를 못 믿으시나요?"

입력
2022.09.09 09:00
스무살 된 티맵으로 본 K-내비 변천사
한 달 주행거리 53억㎞로 방대한 경험


"내비게이션 보지 말고 내 말대로 가라. 내비게이션이 오히려 빨리 갈 길을 돌아가게 만든다."


자가용 조수석 서랍 속에 아직도 '전국도로지도'를 넣어둔 기자의 아버지(65세). 그는 '내비게이션 불신론자'다. 아버지와 비슷한 연배 중에는 기술보단 경험, 인공지능(AI)보단 직감에 의지하며 내비를 못 본 채 하는 이들이 많다. 실제 국내 시장 점유율(70%)이 가장 높은 모바일 내비게이션 티맵의 사용자들을 분석해 보면, 비율이 가장 낮은 연령대가 60대 이상(8%)이다.

"내비 그거 나온 지 20년밖에 안 됐잖아? 내가 운전한 지가 30년을 넘었는데, 경험으로 봐도 내가 더 앞서지."

최소 수십년 간 운전대를 잡아 온 장년층 베테랑 운전자들은 이렇게 자신의 경험을 내세우지만, 이들이 간과하는 게 한 가지 있다. 한국에서 아무리 오래 운전을 해 온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 사람의 경험이 내비게이션을 이용한 수백만·수천만 이용자들이 쌓은 경험치의 총합을 앞설 수는 없다는 것. 기자의 아버지 개인 한 명이 도로에서 쌓은 경험보다 티맵의 경로 탐색 데이터의 누적치가 훨씬 더 방대하다는 점이다.

가장 많은 사용자가 가장 오래 경험을 쌓아 온 네비게이션. 휴대폰 네비게이션의 대명사와도 같은 티맵의 시작은 2002년 출시된 네이트 드라이브로 거슬러 올라간다. 현재는 20년간 쌓인 빅데이터를 토대로 경로 탐색이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 티맵의 발전사를 통해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K-내비'의 변화상을 조명해 봤다.

2001년 SK텔레콤에 입사한 뒤로 쭉 내비게이션 경로 탐색 분야를 담당해온 최인준 티맵 모빌리티 맵컨텐츠팀 리더로부터 도움을 받았다. 최 리더는 "타사 서비스와 비교해 티맵의 강점은 20년치 경로 탐색 데이터를 보유했다는 점과 1,900만명 가입자들을 통해 지금도 데이터가 쌓이고 있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올해 7월 티맵 사용자의 한달 간 총 주행거리는 53억7,183만8,812㎞다. 지구와 달 사이(약 38만㎞)를 7,000번 왕복한 거리다.

"200m 앞 우회전" 화살표 안내가 시작

초창기 모바일 내비게이션은 지금 보면 매우 초보적일 수 있지만, 당시엔 나름 혁신적인 기술이었다. 가야 할 방향만 알려주던 기존 내비게이션과 달리 무선 인터넷망과 위성항법장치(GPS)를 활용해 실시간 교통상황을 반영해 경로 탐색을 해줬다. 처음에는 "200m 앞에서 우회전 하세요" 등의 음성 안내와 함께 전방 남은 거리와 화살표만 표시해주는 '턴 바이 턴'(Turn by turn) 방식으로 서비스가 제공됐다. 운전자의 음성 인식이 세 번 이상 실패하면, 이를 듣고 있던 상담원이 직접 수동으로 목적지를 입력하기도 했다.

2005년부턴 아예 전국 지도 정보가 내장된 텔레메틱스(자동차·정보통신 결합) 전용 휴대폰이 출시됐고, 휴대폰 화면에도 2차원 지도가 펼쳐지는 '풀 맵'(Full map) 방식으로 발전했다. 운전자는 수시로 업데이트되는 전국 지도 정보를 다운로드 받아 사용했다. 이후 2009년부터 스마트폰 전용 내비게이션 티맵 1.0이 출시되면서 본격적으로 스마트폰 내비게이션이 상용화되기 시작했다.

'경로 빨리 찾기'에서 '적정 경로 찾기'로

경로 탐색 결과를 구현하는 방식뿐 아니라 경로 탐색의 방향성도 크게 달라졌다. 최 리더는 "처음에는 출발지와 목적지가 주어지면 정답인 경로를 최대한 빨리 찾아내는 게 기술 개발의 중점적 목표였다. 경로 찾는 시간을 1초에서 0.5초로 단축시키는 식"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지금은 고객이 원하는 최적값의 경로를 찾는 쪽으로 기술이 발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티맵은 최적의 경로를 찾기 위해 출발지에서 목적지로 가는 경로에 소요시간, 주행거리, 통행요금, 연료소모량, 차선의 수 등 다양한 변수를 적용하고, 변수에 가중치를 부여한다. 물리적으로 멀리 돌아가더라도 훨씬 빠르고 무료로 통행할 수 있는 도로를 우선적으로 제안하는 식이다. 향후에는 개별 운전자의 나이, 차종, 운전 습관 등을 고려해 최적의 경로를 제시하는 '개인화' 기술로 진화시킨다는 목표다.

내비도 명절이 '대목'... 예측 데이터로 승부수

최 리더가 이끄는 맵컨텐츠팀이 연중 가장 바빠지는 시기는 바로 명절 직전이다. 그는 "설·추석 때는 평소 내비게이션을 안쓰던 고객들도 대거 유입되는 시기라 이때 질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게 중요한 임무"라고 강조했다. 특히 명절에는 장거리 이동이 많은 만큼, 출발지에서 멀리 떨어져있는 도착지 인근의 교통 정보를 정확하게 예측해 내는 게 숙제다. 티맵은 출발지에서 가까운 지점까지는 실시간 교통정보를 반영해 길 안내를 하고, 목적지에 다가갈수록 시간대별, 요일별, 시기별(휴가철, 명절 등) 누적 데이터를 활용한 알고리즘이 교통정보를 예측한다. 또 티맵 모빌리티는 올 추석을 앞두고 차선 단위로 경로를 안내하는 서비스를 출시해 경로 안내의 질을 높일 계획이다. (아버지, 이래도 귀성길에 내비게이션을 안보실 건가요?)

20년간 진화를 거듭해 왔지만 티맵의 '갈 길'은 아직 멀다. 내비게이션 기술의 발전도 미래 교통수단의 발전과 궤를 같이 하기 때문이다. 최 리더는 "앞으로는 전기차의 배터리 소모량을 줄이는 '에코(친환경) 경로'를 개발하고, 도심항공교통(UAM)의 교통량과 수요를 예측하는 데이터를 생산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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