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물이 빠지니 생명이 꿈틀댔다. 바지락과 동죽, 칠게, 납작게, 밤게, 박하지(돌게), 소라, 고둥 등 갯벌에 숨어 있던 바다 생명들이 얼굴을 빼꼼 내밀었다. 지난달 23일 찾은 인천 영흥도는 썰물 때가 돼야 진면목을 드러내고 있었다.
영흥도는 인천 옹진군의 113개 섬 가운데 백령도 다음으로 크다. 면적이 23.4㎢, 해안선 길이가 42.2㎞다. 섬을 둘러싸고 있는 갯벌은 더 넓다. 2020년 8월 발표된 '옹진군 영흥면 갯벌 생태계 조사 및 관리계획 수립 용역' 결과에 따르면 영흥도의 갯벌 면적은 38.6㎢로 섬 면적보다 1.6배 넓다.
동쪽에서 선재도와 대부도가, 서쪽에서 자월도와 덕적도가, 북쪽에서 무의도와 영종도가 영흥도를 바라보고 있다. 섬으로 둘러싸인 섬이다. 산이 낮고 농경지가 많아 농업에 종사하는 주민들도 적지 않지만, 큰 갯벌을 가진 만큼 여름에는 바지락, 겨울에는 굴을 잡아 생계를 유지하는 어민들이 많다.
영흥도는 지난 2001년 11월 15일 선재도와 이어지는 영흥대교가 개통된 뒤, 경기도 땅을 밟아야 갈 수 있는 섬이 됐다. 시화방조제 건설로 육지와 연결된 경기 안산시 대부도와 선재도를 잇는 선재대교는 한 해 먼저 이어졌다. 과거 인천 연안부두에서 배로 1시간 30분이 걸려 갈 수 있었던 영흥도는 이제 차로 1시간이면 수도권에서 다다를 수 있는 섬이다.
시화방조제와 대부도를 거쳐 선재대교에 오르면 왼쪽으로 작은 섬이 보인다. 2012년 CNN에서 선정한 '한국의 아름다운 섬' 33개 중 1위에 오른 목섬이다. 선재도 서쪽 1㎞ 거리에는 측도가 있다. 영흥면에 속해 있는 선재도와 목섬, 측도 모두 썰물에 가야 매력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물이 빠지면 목섬까지 이어지는 왕복 1㎞의 모랫길도 볼 수 있다. 연륙교로 연결되면서 교통이 편리해져 관광객도 꾸준히 늘었다. 지난해에만 371만3,606명이 찾았다.
수도권과의 접근성이 강화된 영흥도지만 주민들의 표정에는 근심이 가득하다. 애당초 다리 건설 자체가 주민들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영흥대교와 선재대교는 한국전력공사 자회사인 한국남동발전이 석탄화력발전소와 함께 건설했다. 남동발전이 1999년 영흥도 서남쪽인 영흥면 외리에 짓기 시작한 화력발전소 1·2호기는 영흥대교 개통 3년 뒤인 2004년 완공해 가동에 들어갔다. 2008년에는 3·4호기가, 2014년에는 5·6호기가 상업운전을 시작했다.
영흥화력발전소는 미세먼지와 온실가스뿐만 아니라 엄청난 양의 석탄회(석탄재)도 배출한다. 석탄재는 발전소 옆 회처리장에 쌓아 둔다. 주민들에 따르면 회처리장은 전체 164만㎡ 크기이며, 이 중 86%(142만1,359㎡)를 차지하는 1회처리장은 매립률이 91%로, 이미 포화 상태다. 전용일 영흥면 주민자치회장은 "하루에 25톤 덤프트럭 120여 대가 1회처리장 재를 실어 나르기 위해 섬을 오가는데, 새벽과 주말도 가리지 않아 주민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며 "남동발전은 1회처리장 매립을 2025년 종료한 뒤 안정화를 거쳐 돌려 달라는 인천시와 주민들 요구를 무시한 채 계속 사용하려 한다"고 말했다.
회처리장과 석탄을 쌓아 놓는 저탄장에서 날아오는 재와 석탄가루도 골칫거리다. 외리 주민들은 2018년 천막농성에도 나섰다. 부녀회가 홀몸 노인들에게 줄 김치를 담그기 위해 정성스레 관리하던 배추밭이 날아든 재 때문에 엉망이 된 것이 계기다. 분진망을 씌워 관리하고 있지만 지금도 겨울과 봄철 바람 부는 날에는 재가 날린다고 주민들은 하소연했다.
영흥도 주민들의 고통은 이게 끝이 아니다. 2020년 11월에 영흥도 주민들은 인천시청 앞에 모였다. 인천시가 2025년 수도권매립지 사용을 끝내기 위해 조성하는 자체 매립지 후보지로 영흥도 외리를 선정하자 이에 반대하기 위해서 머리끈을 싸매고 거리로 나선 것이다. 하지만 인천시는 발전소 인근 땅 89만486㎡를 617억 원에 매입하는 등 자체 매립지 조성에 박차를 가했다. 당초 이 땅은 남동발전이 3회처리장으로 쓰려고 샀던 땅이다. 재가 묻힐 땅에 쓰레기를 묻게 된 셈이다.
주민들의 반대가 거세지자 "다리를 놓아 주겠다"는 얘기가 또 나왔다. 대부도 북서쪽 구봉도에서 선재도를 거치지 않고 십리포해수욕장 인근까지 연결하는 제2영흥대교를 지어 주겠다는 제안이었다. 주말이면 관광객이 몰려 2차선 도로가 꽉 막히는 섬 사정을 감안한 당근책이었다. 섬 북쪽의 십리포해수욕장은 섬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지다. 길이 1㎞, 폭 30m로, 영흥도에서 가장 큰 진두마을에서 10리(약 3.9㎞)쯤 떨어져 있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십리포해수욕장에는 150년 전 주민들이 해풍을 막기 위해 조성한 소사나무 군락지가 있다. 전국에서 하나밖에 없는 해변 괴수목(기괴하게 생긴 나무) 서식지에 많은 관광객이 몰린다.
다행스럽게 6·1 지방선거에서 인천시장이 바뀌면서 자체 매립지 조성이 백지화됐다. 일단 한시름 놓은 주민들이지만 인천시가 매입한 땅 자체는 그대로 남아 있어 불안감은 여전하다. 주민들은 "폭탄을 얹고 사는 기분"이라고 입을 모은다. 외리 주민 임광옥(64)씨는 "대교에 걸어 놨던 자체 매립지 조성 반대 현수막을 철거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며 "덩어리 큰 땅(후보지)이 그대로 있으니 뭐라도 들어서기 전까지는 (다시 추진되지는 않을까) 걱정하며 살 것 같다"고 말했다.
영흥도 주민들은 인천시가 매입한 땅에 대중제 골프장이나 대형 공원 등 관광 인프라가 빨리 들어서길 바란다. 영흥면의 한 이장은 "수도권에서 저만한 땅(자체 매립지 후보지)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누구보다 주민들이 잘 알고 있다"며 "(정치인들에게는) 정치적 표 계산이 다 있기 때문에, 조속히 활용 방안이 나오지 않는다면 또다시 기피시설이 들어설 위험이 상존한다"고 우려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국내 여행 수요가 늘면서 영흥도를 찾는 관광객이 증가했지만 당일치기 비중이 높고, 즐길거리가 없어 펜션 등지에서만 머물다가 가는 사례가 많다는 게 주민들의 전언이다.
지역 최대 회센터로 관광객들을 불러 모았던 영흥수협 수산물 직판장도 지난해 12월 발생한 화재 피해가 아직 복구가 안 됐다. 직판장의 44개 점포는 화재 발생 한 달 만인 올해 1월 임시 텐트에서 영업을 재개했지만 얼마 안 가 또다시 불이 나 타격을 입었다. 현재 44개 점포가 텐트 4개동에서 영업 중인데, 규정상 휴대용 가스레인지 사용은 물론 주류 판매도 허용이 안 돼 포장 판매에만 의존하고 있다.
직판장 제1협동조합 배정환 총무는 "직판장에 와도 먹을 수가 없으니 관광객들이 다 대부도로 빠져나간다"며 "6월 끝난다고 했던 건물 철거가 최근에야 마무리됐는데, 올해 안에 건물 신축 공사에 들어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막막해했다.
전용일 주민자치회장은 "강원도 강릉에 1년에 1,800만 명이 온다는데, 영흥도에 400만 명이 오는 것이면 어마어마한 것"이라며 "제2영흥대교와 골프장 등 관광 인프라 조성이 되면 고통만 받던 영흥도가 확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