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 천국’ 자처한 멕시코 보호소의 어두운 그늘

입력
2022.09.03 10:00



동물원 등에서 학대당하는 야생동물을 돌보는 것으로 알려진 멕시코의 동물보호소가 실제로는 동물을 방치하고 학대해온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29일(현지 시간) 미국 CNN 방송에 따르면, 멕시코시티 외곽에 위치한 ‘블랙 재규어-화이트 타이거 재단’(Black Jaguar-White Tiger Foundation)이 동물 방치 및 학대 혐의로 당국 조사를 받고 있습니다. 이 재단은 동물원이나 서커스단 등에서 학대를 받던 동물들의 보금자리로 알려진 곳입니다. 실제 미국 팝스타 케이티 페리를 비롯해 패리스 힐튼, 킴 카다시안 등 유명 인사들이 이곳을 방문해 찍은 사진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지난 2016년에는 카를로스 살리나스 데 고르타리(Carlos Salinas de Gortari∙1988~1994년 재임) 전 멕시코 대통령도 이곳을 방문했습니다.



수많은 유명 인사가 찾은 만큼 이 보호소의 위상은 매우 높은 편이었습니다. SNS를 통해 공개된 사진이나 영상 속에서는 넓은 보호소에서 사자나 호랑이 등의 동물들이 마음껏 뛰노는 행복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멕시코 정부 기관에서는 불법 사육 행위가 적발돼 몰수된 동물들을 이 보호소에 위탁할 정도였죠.

공신력이 확보된 만큼 멕시코 뿐 아니라 세계 각지에서 후원금도 쇄도했습니다. 멕시코 매체 ‘엘 유니버설’에 따르면 이곳에 후원금을 보낸 유명인 중에는 영국 포뮬러 원(F1) 드라이버 루이스 해밀턴, 미국 여배우 크리스틴 스튜어트 등도 포함돼 있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명성이 높았던 보호소의 실체는 보호소 직원들의 내부 고발로 드러났습니다. 보호소 전 직원들이 공개한 영상에 따르면 아픈 사자가 바닥에 누워 꼼짝하지 않고 있고, 다른 사자는 배가 너무 고파서 자신의 꼬리를 뜯어먹고 있었습니다.

고발이 전해진 뒤 멕시코 당국은 현장조사에 나섰습니다. 멕시코 환경보호국에 따르면 이곳에 있던 200여 마리의 동물들은 대부분 먹이를 충분히 공급받지 못했으며, 일부 동물들은 질병에 감염되는 등 열악한 상태에 처해 있었다고 합니다. 멕시코 당국과 함께 현장을 찾은 멕시코 동물원수족관협회(Asociación de Zoológicos y Acuarios de México AC ∙ AZCARM) 관계자는 “뼈가 드러난 동물이 있었고, 눈이나 귀, 꼬리가 없는 개체들도 있었다”고 조사 당시 상황을 전했습니다.

보호소 설립자 에두아르도 세리오 씨는 학대 사실을 부인하며 “꼬리는 서로 싸우다가 잘린 사고였을 뿐, 동물들이 꼬리를 뜯어먹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멕시코 당국은 이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멕시코 시티 경찰은 보호소를 찾아 동물들을 몰수 조치했습니다. 몰수된 동물들은 다른 시설로 보낸 뒤 치료를 진행할 예정입니다.

AZCARM의 에르네스토 자주타 회장은 세리오 씨를 향해 “사이비 활동가”라고 지칭하며 강력한 처벌을 주장했습니다. 자주타 회장은 “세리오 씨는 야생동물 전문가도 아니고, 거짓과 기만을 통해 이익을 얻는 데 몰두할 뿐”이라며 “이들이 후원금을 취득하고 나면 동물은 별로 신경쓰지 않고 죽게 내버려 두곤 한다”며 비난했습니다.

정진욱 동그람이 에디터 8leonardo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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