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당 자치라는 헌법정신 훼손이다. 납득할 수 없다."
주호영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26일 법원의 '직무집행 정지' 결정 이후 내놓은 첫 메시지다. 윤석열 대통령까지 참석해 힘을 실은 여당 연찬회가 끝나자마자 들려온 결정에 대한 당혹스러움과 충격이 고스란히 묻어났다.
사법부를 겨냥한 국민의힘의 격앙된 반응에는 사태를 자초했다는 반성이나 책임은 찾을 수 없었다. 불과 몇 시간 전 연찬회에서 소속 의원 일동 명의로 발표한 결의문을 통해 "집권 여당의 책임은 무한하다"고 외친 게 무색할 정도였다. 대내외 위기 상황 속에서 집권 여당 지도부 공백 장기화에 대한 국민의 불안과 우려는 그들의 안중에 없었다.
29일 '위원장 없이' 열린 비대위 풍경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당내 사퇴 요구에 직면한 권성동 원내대표가 '비대위원장 직무대행' 자격으로 겨우 회의를 열었지만 '책임' '사과' 등의 발언은 없었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110여 일간 집권 여당의 집안싸움을 두고 지도부가 책임 있는 사과나 반성을 한 적이 사실상 없다.
권 원내대표는 이날 "비대위원장 직무 정지로 인한 내분 등 많은 어려움이 쌓여 있다"면서 "당헌·당규 미비가 정치적 혼란의 중요한 원인"이라고 진단했다. 자신의 거취와 관련해 추석 전 사퇴를 시사했지만, 당내 비등한 윤핵관(윤석열 대통령 측 핵심 관계자) 책임론은 입에 올리지 않았다. 사법부 결정과 당헌·당규 미비가 이번 혼란의 원인이라는 것이다. 진단이 틀렸으니 사과를 할 리가 없었다. 성일종 정책위의장이 "국민이 보내주신 믿음과 신뢰에 실망감을 드려 송구하다"는 발언을 검토했다지만, 회의에선 생략했다.
책임 있는 사과의 빈자리는 사법부를 향한 거친 공격이 채우고 있다. 당의 법률지원단장인 유상범 의원은 26일 "우리법연구회 출신 재판장의 월권"이라고 날을 세웠고, 주 위원장은 "재판장이 특정 연구모임 출신으로 편향성 있고 이상한 결과가 나올까 우려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장이 우리법연구회 출신이 아니라는 법원 측의 해명에 이들은 머쓱할 수밖에 없었다. 재판장의 출신지와 이념 성향을 멋대로 재단해 법원 결정을 흠집내려다 본인들의 체면만 구긴 셈이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여전히 사법부로부터 뒤통수를 맞았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이번 사태로 뒤통수를 맞아 피해를 보게 된 쪽은 국민이다. 정기국회를 앞두고 국정감사와 내년도 예산안 심사 등을 통해 행정부를 견제하고 민생 법안을 처리해야 할 집권 여당이 자중지란에 한눈을 파는 것 자체가 국가적 손실이다.
더불어민주당에서도 이재명 대표가 카운터파트로 누구를 만나야 하느냐는 볼멘 소리가 나온다고 한다. 이처럼 여야 대표가 만나 협치와 민생 정책을 협의할 '골든타임'은 속절없이 지나가고 있다. 회의 때마다 레퍼토리로 언급하는 '집권 여당의 무한 책임'을 자각하고 있다면, 애꿎은 희생양을 찾기보다 국민을 향해 고개를 숙이는 것이 우선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