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세 모녀' 비극 막으려면..."안 주려는 복지서 주는 복지로 전환해야"

입력
2022.08.30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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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가구 늘어도 정작 지원은 소수에 그쳐
복잡한 절차·높은 문턱에 수치심 느끼기도
"네거티브 규제처럼 복지도 혁신 필요"

"공무원들의 조사 과정에서 자존심이 상한다. 죽을 듯이 힘들어도 말을 쉽게 꺼낼 수 없다."

복지급여가 필요한 50대 남성이 허용창 선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의 논문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비수급 원인에 관한 질적 연구(2020년)' 면접조사에 답한 내용이다. 한국 사회에서 공적부조를 받는 건 또 다른 좌절을 경험한다는 얘기다. 공적부조 정보를 알기 어려운 것도 문제지만, 기준이 지나치게 엄격해 대부분 발길을 돌린다. 이들에게는 최소한의 '사회 안전망'도 없는 셈이다.

극심한 생계난에 극단적 선택을 한 '수원 세 모녀'와 광주 자립준비청년 사건으로 사회복지전달체계의 한계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어려움에 처한 이들을 포착하지 못한 것도 문제지만 이들이 지원 제도를 신청조차 하지 않았다는 게 더 큰 문제다.

29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백종헌 국민의힘 의원이 보건복지부로부터 받은 '찾아가는 보건복지서비스' 자료에 따르면 지난 6월 기준 전국 3,506개 읍·면·동 중 3,338개에서 전담 조직을 운영 중이다. 위기가구를 발굴하고 지원 대상자에게 필요한 서비스를 연계해 주는 사업이지만, 전담 조직이 없는 읍·면·동 168곳은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정부는 이에 사각지대를 없애겠다며 위기가구 발굴 관련 수집 정보를 34종에서 39종으로 확대하고, 신청해야 복지급여를 받을 수 있는 '신청주의'를 개선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위기 시 국가가 도와준다'는 신뢰 없는 복지제도

그러나 사회복지 전문가들은 "방향이 틀렸다"고 비판한다. 도움이 절실한 취약계층이지만 실제 지원을 받는 건 극소수이기 때문이다. 참여연대와 최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복지 사각지대 온라인 시스템(위기가구 발굴)을 분석한 결과, 지난해 공적부조를 받은 대상자는 전체(133만9,909명)의 24.9%인 16만5,195명에 그쳤다. 발굴 시스템을 통해 찾은 기초생활보장제 지원 대상자도 2016년 4만6,780명에서 지난해 66만3,874명으로 늘었다. 하지만 이 가운데 지원을 받은 사람은 4%(2만5,547명) 정도다. 수집 정보가 늘면서 대상자는 늘었지만 실제 지원으로 연결되지 않는 괴리는 심화한 셈이다.

복지제도에 대한 정보 부족과 사회적 실패자라는 낙인 등이 비수급의 주요 원인으로 작용한다. 빈곤층이 공무원을 만나거나 신청을 고려하는 과정에서 자존심이 상해 아예 신청하지 않는 사례도 상당하다. '어차피 못 받을 거 모욕을 당할 필요가 있느냐'며 스스로 부적격자의 길을 택한다는 것이다.

허용창 교수 논문에 실린 면접조사를 보면 한 50대 남성은 급여를 신청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온 집안 식구들(급여 신청에 필요한 서류 증빙)을 다 해야 하니까 못하겠더라고요. 남이 볼 때는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나이라 아내도 ‘(복지급여 신청하러) 왜 가냐’고 하죠"라고 답했다. 이에 대해 김기태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자신이 위기에 처했을 때 국가가 급여 서비스로 보장해 줄 것이란 신뢰가 형성되지 않은 게 현 제도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번거로운 신청 절차도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가출, 이혼, 별거 등의 사유로 동거는 하지 않아도 법률상 혼인 관계가 유지되는 배우자의 소득 산정이 어렵기 때문이다. 또한 부양의무자 금융정보제공동의서 제출도 신청자에게는 심리적 부담이 크고 거부감을 일으킬 수 있다. 논문 속 또 다른 면접자는 "딸에게 '아빠가 지금 죽을 것 같은데, 공무원들이 너한테 이런저런 것을 조사하겠다더라' 이런 말을 도저히 할 수 없다"고 했다.

네거티브 규제처럼…"복지 공무원 재량권 넓혀야"

전문가들은 행정 절차와 심사 기준을 완화해 지금의 '안 주려는 복지'에서 '주는 복지'로 방향을 과감하게 틀어야 한다고 제언한다. 경제·산업 분야 규제 완화 시 '포지티브 규제'(허용된 것 이외에는 금지)를 '네거티브 규제'(금지된 것 이외에는 허용)로 전환하는 것처럼 취약계층에 대한 복지급여를 과감하게 허용하자는 얘기다.

그러려면 복지 담당 공무원들의 재량권이 확대돼야 한다. 김보영 영남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급여 조건이 까다로워 (대상자와) 안 맞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담당 공무원은 폭넓게 인정해 줄 수 없다"며 "나중에 감사에 걸려 인사상 불이익을 당할 수 있어 매우 보수적으로 판단하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도 "(급여 대상자의) 자산·소득 기준을 확대해야 한다"며 "서유럽 국가는 인구의 10%가 기초생활수급자인데 우리나라는 200만 명이 채 안 된다. 더 관대해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류호 기자
김창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