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모(33)씨는 2개월 전 자신의 아파트에 세들어 사는 이모씨에게 계약기간이 곧 끝나가니 이사갈 준비를 해달라고 얘기했다가 거절당했다. 김씨는 지난해 5월 이씨와 서로 합의하에 1년짜리 전세계약을 했는데, 갑자기 이씨가 '임대차3법(주택임대차보호법)'을 거론하며 1년 더 살겠다고 통보한 것이다.
김씨는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 애초 신혼집으로 들어갈 생각에 부득이 1년 전세를 내놓는 사정을 이해해 줄 수 있는 세입자를 골랐고, 이에 동의한 게 이씨였기 때문이다. 김씨는 전셋값을 2억 원가량 깎아주는 대신 이씨가 계약 내용을 번복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특약까지 계약서에 명시했다.
다급해진 김씨는 특약과 상관없이 이사비를 챙겨줄 테니 나가달라고 호소했다. 하지만 이씨는 법대로 하라고만 하고 이후론 연락조차 받지 않았다. 결국 김씨는 이씨를 상대로 집을 비워달라는 내용의 소송을 걸기로 마음먹었지만, 승소를 장담할 수 없다는 법무법인의 말을 듣고 요즘 속이 타들어 간다.
그는 "이씨가 집을 비워주지 않으면 우리는 불필요한 이사를 두 번이나 해야 한다"며 "만약 내년에 계약갱신을 요구하면 원치 않는 전세 계약을 총 4년이나 유지해야 한다"고 토로했다.
정부가 폐지에 가까운 근본 개선안을 마련하겠다며 문제가 된 임대차3법의 대수술을 약속했지만, 정작 후속 절차가 늦어지면서 집주인과 세입자 간 갈등이 여전하다. 집주인은 집주인대로, 세입자는 세입자대로 각자 억울함을 호소하는 상황은 늘고 있는데, 법 조항이 애매한 탓에 결국 소송으로 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사회적 비용만 커지고 있는 것이다.
주택임대차보호법은 ①계약갱신청구권 ②전월세상한제 ③전월세신고제 3가지가 골자라 '임대차3법'으로 불린다. 임차인은 ①번과 ②번 덕분에 1회에 한해 집주인에게 계약 갱신을 요구할 수 있고, 임대료 역시 집주인과 협의하에 5% 내에서만 조정할 수 있다. 세입자의 권익 보호를 위한다는 취지인데, 법이 세밀한 검토 없이 바로 시행되다 보니 허점이 수두룩하다는 게 문제다.
김씨 같은 사례가 대표적이다. 법(4조1항)엔 '2년 미만으로 정한 임대차는 그 기간을 2년으로 본다. 다만 임차인은 2년 미만으로 정한 기간이 유효함을 주장할 수 있다'고만 돼 있다. 애초 1년만 살기로 계약을 했어도, 세입자가 마음을 바꿔 2년 살겠다고 하면 집주인이 이를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더구나 법 개정에 따라 1년 뒤 계약갱신을 요구하면 2년 더 살게 해줘야 한다. 김씨 사례처럼 1년만 계약했어도, 총 4년 거주를 보장해야 한다. 물론 세입자는 언제든 계약을 마음대로 끝낼 수도 있다.
정작 김씨처럼 법적 효력이 따르는 특약을 맺은 경우엔 어떻게 해야 한다는 기준도 없다. 법무법인 법도의 엄정숙 변호사는 "법 조항만 놓고 보면 기본적으로 세입자가 유리하지만 집주인이 전셋값을 깎아준 점 등을 고려하면 법원이 다른 판단을 내릴 여지도 있다"고 말했다. 법무법인들도 섣불리 승소 여부를 장담하지 못하는 건 최근 법원이 여러 유권해석을 내놓으면서 법원 판단마저 엇갈리는 경우가 심심찮게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새 정부는 출범 이후 임대차법 개선을 공언했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논란이 된 '임대차2법(계약갱신청구권과 전월세상한제)'은 폐지해야 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들 규제가 시장 기능을 왜곡해 전셋값을 폭등시켰다는 진단을 근거로 들었다. 지난달 국토부와 법무부는 공동으로 '주택임대차 제도개선 태스크포스(TF)'를 꾸리기도 했다.
하지만 정부의 요즘 행보를 보면 임대차2법 개선 논의는 우선 추진 순위에서 밀린 듯한 모양새다. 최근 국토부가 발표한 새 정부의 첫 주택정책 청사진(주거안정 방안)에도 임대차2법 관련 내용은 빠져 있다. 임대차2법 시행 2년 차인 8월부터 전셋값이 폭등할 거란 우려와 달리 금리 인상 등의 여파로 전셋값이 뚝뚝 떨어지자 공교롭게 정부 내에서 임대차법 개선 목소리는 거의 자취를 감췄다.
한 법무법인 관계자는 "전세시세와 상관없이 애매한 법 조항 탓에 집주인과 세입자 간 갈등이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서 적잖게 벌어지고 있는데 정부는 이를 나 몰라라 하고 정작 전셋값이 내려갔다고 자평하고 있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