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진짜 매력은…송당마을, 신화와 오름을 따라 걷다

입력
2022.08.27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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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제주 송당마을

편집자주

부부 소설가인 강보라 박세회 작가가 동네에 얽힌 사회 문화적 단편을 감성적 필치로 담아냅니다.


사직서를 내고 사무실에서 마지막 마감을 하다가 충동적으로 제주행 티켓을 예약했다. 왜 하필 제주였는지는 모른다. 열심히 키보드를 두드리다 문득 고개를 들어 보니 넙데데한 수석 받침처럼 생긴 제주 섬이 눈앞에 꿀렁꿀렁 지나가고 있었다고 할까. 마치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 나오는 혹등고래처럼. 어쩌면 내 잠재의식 속에서 연상 작용 같은 게 일어난 것인지도 모른다. 10년 전 직장을 그만두고 혼자 뚜벅이로 제주를 여행했던 일이 아직까지 좋은 추억으로 남아 있다거나. 그때야 젊어서 좋았던 것일 수도 있지만 아무튼.

막상 티켓을 끊고, 밀려드는 원고들을 소화하며 여행을 준비하려니 여간 성가신 게 아니었다. 뚜벅이 주제에 가고 싶은 곳을 무턱대고 추리기도 애매하고, 7월 말의 숙소는 알아볼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나의 계획을 들은 남편이 “요즘 같은 성수기에 괜찮겠어?” 하며 눈썹 끝을 내렸다. 그러게. 그냥 가지 말까. 거대한 혹등고래가 분수 한번 못 뿜어 보고 힘없이 가라앉는 찰나, 나는 졸음을 물리치는 수험생처럼 마음을 다잡았다. 이런 식으로 어물어물 때를 미루다 결국 아무 일도 벌이지 못하는 것이 게으른 내 인생의 어떤 비유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피서객들로 북적대는 관광지에서 비싼 물가를 감당하며 고생하고 싶진 않았다.

문득 예전에 잡지 부록으로 제주 가이드북을 만드는 과정에서 도민들에게 자주 들었던 말이 생각났다. “제주의 진짜 매력은 중산간 지역에 있다”는 말. 그 말을 머리 한쪽에 띄우고 ‘연박’과 ‘노트북’을 키워드로 검색에 들어갔다. 합리적인 가격으로 여러 날 머물 수 있으면서 조용히 작업할 수 있는 숙소를 찾는 게 목적이었다. 조건에 맞는 숙소들 중 느낌이 좋은 두 곳을 추렸다. 하나는 쓰레기를 줄이는 제로웨이스트를 지향하는 곳, 또 하나는 아담한 북카페가 딸린 여성 전용 북스테이였다. 공교롭게 두 곳 모두 제주의 동쪽, 구좌읍 송당리에 자리하고 있었다. 구좌읍이라는 지명은 익숙했지만 송당리는 생소했다. 바다도 안 보이고 올레길도 없다는 중산간 마을 송당리. 어딘가 동떨어진 그 느낌이 좋아 두 숙소에 연달아 묵는 일정으로 코스를 짰다.

제주공항에서 버스로 한 시간 넘게 달려 도착한 송당리는 비수기 휴양지처럼 한산했다. 어찌된 일인지 카페도 식당도 대부분 문을 닫았다. 밀짚모자에 팔토시를 낀 농부들이 이따금 지나갈 뿐. 세상 돌아가는 꼴에 울화통이 터진 로커가 속세를 등지고 내려와 조용히 당근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을 것 같은 분위기랄까. 지도가 그려진 안내판 옆에 ‘신화와 오름을 따라 걷는 소원 비는 마을, 송당’이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송당리에는 신당(神堂)에 하얀 한지를 가슴에 품고 소원을 빌고 나서 신목(神木)에 걸어두는 풍습이 있다’는 설명이 뒤를 이었다. 소원 비는 마을이라. 지역 관광 활성화 차원에서 인위적으로 부각한 슬로건이겠지만 그래도 말 자체가 예쁘기는 했다. 하얀 한지를 가슴에 품고 소원을 비는 누군가를 상상하는 일도 그리 나쁘지 않았고.

아름다운 돌담이 있는 농가주택을 개조했다는 민박집 입구에는 푸른 수국이 뭉치로 피어 있었다. 수요일과 목요일은 대부분의 가게가 문을 닫는다는(아하!) 주인 부부의 충고를 뒤로 하고 본격적인 동네 산책에 나섰다. 마을을 관통하는 2차선 도로 양옆으로 카페와 잡화점과 식당들이 띄엄띄엄 늘어서 있었다. 바다 건너 중남미에서 온 소품을 파는 가게, 헌책과 새 책이 무심하게 더부살이하는 책방, ‘노 플라스틱’을 앞세운 비건 지향 카페, 방마다 식물이 우거진 술집 등 어느 하나 예사롭지 않은 것이, 센스 좋은 사람들이 모여드는 동네라는 걸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주말이 되자 차를 타고 찾아와 이런저런 가게들을 돌아보며 기념사진을 찍는 관광객들로 동네가 활기를 띠었다. 그래 봐야 오후 나절 잠시 떠들썩해질 뿐이었지만 누군가의 눈에는 젠트리피케이션의 작은 시작처럼 보일 수도 있을 풍경이었다. 그렇잖아도 송당의 한 카페 주인으로부터 지방 최초의 블루보틀 매장이 이곳에 들어섰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은 터였다. 그는 대형자본의 유입으로 제주의 소상공인들이 갈수록 설 자리를 잃어 가고 있다며 “이러다 송당도 월정리꼴 나는 거 아닌지......” 하고 말을 흐렸다. 소박한 어촌마을이었던 월정리가 순식간에 카페촌으로 변한 것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실제로 여행 중에 찾은 월정리 해변은 피서객들이 버리고 간 쓰레기로 골머리를 앓는 중이었다.

제주를 찾는 ‘육짓것들’이 다 그렇듯, 나 역시 주변 지리가 익숙해지자마자 가까운 바다부터 찾았다. 제주는 뚜벅이로 여행하더라도 어딜 가나 해변이 지척이었던 기억인데, 송당은 달랐다. 가장 가까운 세화해변도 버스로 최소 30분은 달려야 했다. 골프장처럼 온통 연둣빛인 휴대폰 화면 위로 크고 작은 오름들이 얼룩처럼 찍힌 지도를 보며 내가 서 있는 곳의 위치를 새삼 실감하던 차, 송당에는 18개의 오름이 있다는 안내판의 글이 생각났다. 그래, 중산간은 오름이지!

그동안 제주를 여행하며 깨달은 사실 중 하나는 현지인이 가는 오름과 관광객이 가는 오름이 따로 있다는 것이다. 숙소 주인인 아내 분에게 자주 가는 오름이 있는지 묻자 기대한 대로 ‘당오름’이라는 생소한 지명이 돌아왔다. 이름부터 밋밋하고 시시한 게 딱 봐도 동네 사람들이 즐겨 가는 곳인 듯했다. 이 지역 명물인 아부오름처럼 높은 곳에서 주변 경치를 내려다보는 오름은 아니지만 가볍게 산책하기에는 그만한 곳이 없다며, 그녀는 정상에 오르지 말고 꼭 둘레길을 걸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을 뒤편에 다소곳하게 솟은 당오름 입구에는 ‘제주 신당의 원조’ 운운하는 설명 글이 적혀 있었다. 마을을 수호하는 신을 모신 본향당(本鄕堂)이 이곳에 있다는 말이었다. 살펴보니 송당(松堂)이라는 이름도 이 당 안에 커다란 소나무가 있어 붙은 명칭인 듯했다. 삼나무가 빡빡하게 우거진 숲에 들어서자 간밤에 뿌린 비 덕에 젖은 풀과 흙냄새가 진동했다. 몇 해 전 새롭게 정비했다는 탐방로는 반바지에 조리 차림으로 걷기에도 문제없을 정도로 편안했다. 보행매트 위에 수북이 깔린 나뭇가지들을 밟으며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키 큰 나무들이 하늘을 가득 덮은 숲길을 걷고 있으니 푹신푹신한 둥지 속에 들어간 아기 새가 된 기분이었다. 탐방로에서 만난 한 어르신은 이 둘레길을 매일 두세 바퀴씩 운동 삼아 걷는다고 했다. 길이가 짧고 경사가 거의 없어 걷기 편하다는 게 이유였다. 그의 말처럼 짧고 편안한 30분간의 산책을 마치고 본향당으로 향했으나 내가 갔을 때는 아쉽게도 공사 중이었다.

송당의 하루는 빨리 저문다. 오후 4시가 되면 가게들이 하나둘 문을 닫기 시작하고 6시가 되면 갈 곳이 없어진다. 여행지에서 술 한잔으로 하루를 마무리하길 좋아하는 나는 매일 저녁 편의점에서 산 맥주 봉지를 들고 풀벌레 소리를 들으며 숙소로 돌아가곤 했다. 숙소 카페에서 혼자 맥주를 마시는 내가 심심해 보였는지, 한번은 주인 부부가 자연스럽게 말을 걸어왔다. 그들은 이 숙소를 어떻게 알고 찾아왔느냐며 신기해했다. 민박집을 운영한 지 10년이 다 되어 가지만 아직까지는 지인 소개로 알음알음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그 말이 이 동네가 그래도 아직은 제주다운 모습을 지키고 있다는 뜻 같아 내심 반가웠다.

도시 생활을 뒤로 하고 송당에 터를 잡았다는 두 사람은 “여기는 다 좋은데 치킨 배달이 안 되는 게 흠”이라며 장난스럽게 불평했다. 정말인가 싶어 배달앱을 켜 보니 치킨뿐 아니라 배달되는 음식이 하나도 없었다. 내가 매일 신세를 지는 편의점도 비교적 최근에 생겼다고 했다. 이런 불편을 감수하면서까지 송당에 온 이유를 묻자 아내 분은 동네가 아늑한 맛이 있다고, 가끔은 누군가 폭 안아주는 기분이 든다며, 그 느낌이 좋아 본래 월정리에 터를 잡았다가 이곳으로 옮겨 온 흥미진진한 사연을 들려주었다. 누군가 폭 안아주는 기분. 나도 느낀 바 있는 그 포근함의 정체는 아마도 마을 전체를 에두르고 있는 오름군락 때문인 듯했다.

1층에 북카페가 있는 두 번째 숙소는 내 취향인 책들이 잔뜩 있어 즐거웠다. 인문학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주인 부부와 와인을 마시며 모처럼 기억에 남는 밤을 보내기도 했다. 직접 만든 비스킷과 고구마를 안주로 낸 두 사람에게 ‘송당살이’의 즐거움을 묻자 군침 도는 먹거리 이야기가 줄을 이었다. 동네가 ‘제주도의 강원도’라 불리는 구좌읍에 속한 덕에 뿌리채소 하나는 실컷 먹는다고, 한 번은 이웃이 가져다준 제철 무로 깍두기를 담갔는데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더라며 감탄하는 그들에게서 도시 사람 부럽지 않은 삶의 풍요가 느껴졌다. 내 부러움을 눈치 챈 남편 분이 시골살이의 불편함이 영 없는 건 아니라고, 서울에서 자주 갔던 을밀대의 평양냉면이 가끔 너무 먹고 싶을 때가 있다며 웃었다. 내가 “저희 집은 을밀대 배달권”이라고 물색없이 자랑하자 이번에는 그의 얼굴에 부러움이 스쳤다. 그날 밤 침대에 누운 나는 하얀 한지를 가슴에 품은 양 속으로 되뇌었다. 송당의 신이시여, 제발 이 동네에 치킨집이랑 평양냉면집 좀 만들어 주세요.

여행 막바지, 매일 똑같은 풍경이 다소 지루해질 때쯤 버스를 타고 바닷가로 향했다. 해변 앞 카페에서 하루치 작업을 끝내고 돌아오는 길, 버스 창문 너머 돌집과 밭담이 펼쳐진 송당리가 안기듯 내게 덮쳐 왔다. 버스에서 내려 비구름이 자욱한 마을로 들어서는데, 새 둥지에 들어간 듯 그저 아늑했다. 수면 위로 튀어 오른 혹등고래가 무지갯빛 분수를 뿜으며 내게 속삭였다. 얀마, 안 왔으면 어쩔 뻔했냐.

참, 풍문에 따르면 송당리에는 한때 로커 K씨가 살았다고 합니다. 물론 그가 여기서 당근 농사를 지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요.

강보라 소설가ㆍ프리랜스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