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쟁 씨앗 된 인도의 국경선 획정

입력
2022.08.23 04:30
13면
영국인 래드클리프가 종교에 따라 나눈 국경
70년 넘게 파키스탄·방글라데시와 분쟁 원인
인간의 오판 내지 실수, 작위로 나뉜 국경이든
20세기 초 지도 없어 지형으로 나눈 국경이든
인접 국가 사이 언제든 분쟁 요인이 되는 현실

편집자주

오늘날 세계경제는 우리 몸의 핏줄처럼 하나로 연결돼 있습니다. 지구촌 각 나라들의 역사와 문화, 시사, 인물 등이 ‘나비효과’가 되어 일상에까지 영향을 미치곤 합니다. 인문학과 경영, 디자인, 사회문제 등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가진 경제학자의 눈으로 세계 곳곳을 살펴봤던 이유입니다. 박정호 명지대 특임교수가 2020년 3월부터 3주에 한 번씩 화요일 연재한 [글로벌 경제유람]은 이번 회로 대단원의 막을 내립니다. 3주 뒤부터는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원과 함께하는 [인문학 속 경제]가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42·완결>오늘날 지역 분쟁 대부분은 잘못 그려진 국경선 때문이다

오늘날 국경선 대부분은 물리적인 자연 환경과는 무관하게 설정된 경우가 많다. 가장 극단적으로 인위적인 국경선이라고 평가받는 곳은 미국과 캐나다 사이의 국경이다. 수백 킬로미터로 이어지는 두 국가 사이의 국경은 경계를 그어 지역을 분리해야 할 물리적 필요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 이 국경선 중 3,500km는 북위 49도 선과 겹칠 만큼 정확히 가로로 그어진 국경이다. 기껏 자연 경관을 고려해 분리한 곳이라고는 뉴욕주 북부와 캐나다 온타리오주 사이에 놓인 세인트로렌스강 정도다. 물론 5대호 중 네 곳인 슈피리어호, 휴런호, 이리호, 온타리오호 등도 자연적인 국경으로 활용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들 호수를 기반으로 그어진 국경선 역시 직선 형태로 호수 형태와 지형에 대한 고려가 전혀 없이 그려진 국경이다.



미국과 캐나다 간의 국경선은 이미 양쪽 영토에 많은 거주자들이 자유롭게 활동하기 시작한 지 한참 뒤에 그어졌다. 이 때문에 자연스럽게 양 국가에 걸쳐 있는 것들이 많다. 일례로 버몬트주에 있는 도서관은 국경선이 도서 대출실에 걸쳐 있다. 또 다른 지역의 호텔 한 곳은 캐나다 퀘백주와 미국 뉴욕주에 걸쳐 있기도 하다. 이 밖에도 수많은 개인 주택들이 미국과 캐나다 양쪽에 걸쳐 있다. 이런 이색적 풍경 때문에 버몬트주의 국경 마을인 더비 라인(Derby Line)은 관광지 아닌 관광지가 됐다. 더비 라인에는 도로 하나를 두고 한쪽 인도는 캐나다, 반대쪽 인도는 미국 국경인 곳이 있다. 그렇다 보니 이 도로를 지나는 사람들은 국경 경비대에 통제를 받아야 한다. 한쪽 인도에서 반대쪽으로 이동하는 그 흔한 행위가 국경을 넘어선 것이어서, 이민법 위반 등의 처벌을 받을 수 있다. 이런 독특한 풍경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일부러 방문하는 경우가 흔하다. 더비 라인 사례는 국경선이 경우에 따라 웃음을 자아내고 독특한 체험을 할 수 있는 공간일 수 있음을 뜻한다.

인도와 무관한 인물이 정한 인도 국경

하지만 국경선이 현실적인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잘못 그어져, 양 국가 간 전쟁과 같은 유혈사태를 불러오는 원인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면밀한 조사나 접경 국가들과 협의 없이 국경이 획정돼, 전쟁이 벌어지거나 인접국가들과 지속적인 갈등을 빚고 있는 대표적인 나라로 ‘인도’가 꼽힌다.


현재 인도와 인도 주변 국가들인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네팔 등의 국경선을 결정한 주체는 다름 아닌 영국이었다. 영국의 공무원 혹은 영국 관공서에서 업무를 하달받은 영국인들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이들 국가 간 국경을 멋대로 결정했다. 대표적 인물이 시릴 래드클리프 경(Sir Cyril Radcliffe)이다. 변호사인 래드클리프는 인도 국경을 확정해 달라는 영국 정부의 요청을 받기 전까지 인도를 단 한 번도 방문해 본 적이 없는 인물이다. 인도와는 무관했던 그가 국경 확정이라는 중책을 맡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단지 영국 정보부 사무총장을 역임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래드클리프에게 인도의 국경을 결정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고려 요인은 종교였다. 당시 인도 종교지도자들 역시 이런 방식을 선호했다. 이슬람교 지도자인 무하마드 알리 진자(Muhammad Ali Jinnah)는 이슬람교도들을 위해 국가를 분리해 달라고 영국 정부에 공식 요청했고, 영국 정부 역시 이 요구를 적극 수용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영국 정부로부터 국경 확정 요청을 받은 래드클리프가 인도 인근 지역 국경 설정을 마치기까지 인도에 체류한 기간은 37일에 불과했다. 래드클리프는 현재까지 논란이 되는 국경 확정 업무를 마치고 난 바로 다음 날 인도를 떠났다는 후문이다. 또 그는 국경을 정하는 작업 수행 시 취합한 자료들을 모두 불태웠다. 래드클리프는 자신이 그은 국경선을 래드클리프 선(Radcliffe Line)이라고 부른다는 사실을 듣자 “그 빌어먹을 선”이라고 불렀다고도 전해진다.

종교에 따라 정해진 국경...인구 대이동

래드클리프 본인 스스로도 자신이 그은 국경선에 부정적인 평가를 내리게 된 것은 어찌 보면 본인 스스로 자신이 설정한 국경선이 가져올 비극을 직감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실제 래드클리프 라인을 바탕으로 국경선이 그어진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국경 인근 주민들은 종교에 따라 자신의 새로운 조국이 될 땅을 향해 이동하기 시작했다. 인도 우타르 프라데시주에 살던 이슬람교도들은 인근의 이슬람교도 국가를 향해 탈출하기 시작했다. 반대로 파키스탄 라호르에 갇힌 힌두교도와 시크교도는 델리나 암리차르 등을 향해 이동하기 시작했다. 인도를 향한 탈출, 파키스탄을 향한 탈출, 당시 동파키스탄이었던 방글라데시를 향한 탈출은 이후에도 수개월 동안 전개됐다. 그 과정에서 여러 유혈 참사가 전개됐다.



이들 지역이 이런 혼란을 겪어야 했던 이유 중 하나는 고립영토(Exclave)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고립영토란 본국에서 떨어져 다른 나라의 영토에 둘러싸인 땅을 뜻한다. 예컨대, 미국 본토에서 떨어져 있는 알래스카다. 인도와 방글라데시 인접 지역에도 이런 고립영토가 수없이 많이 생겨났다. 다름 아닌 래드클리프가 국경을 구분하기 위해 선택한 기준인 종교 때문이었다.

인도와 방글라데시 접경지역인 쿠치베하르 지역은 과거부터 교통의 요충지로, 여러 지역과의 교역이 빈번한 지역이었다. 교역과 함께 힌두교, 이슬람교, 불교 등 다양한 종교가 유입됐고, 특정 마을에 같은 종교로 뭉친 집단 거주지가 형성됐다. 이 때문에 인도와 방글라데시 접경 지역에는 수많은 고립영토가 생겨났다. 인도 영토 내부에 방글라데시 영토가 생겼고, 방글라데시 영토 안에 수많은 인도 영토가 생기는 식이었다. 어처구니 없는 영토 구분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심지어 방글라데시 영토 안에 섬처럼 인도 영토가 있고, 그 인도 영토 안에 다시 방글라데시 영토가 들어가 있는 경우도 발생했다. 마치 인형 안에 또 다른 인형이 있고, 그 인형 안에는 또 다른 작은 인형이 들어 있는 러시아 전통 인형인 마트료시카와 같은 형태로 국경이 나누어진 것이다.

나라 속 다른 나라...고립영토

당연히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는 인위적 구획 설정이었다. 인도와 방글라데시가 스스로 여러 고립영토를 조정하기 위한 노력을 현재도 지속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인도와 방글라데시는 1958년 처음으로 자신들 영토 내에 있는 고립영토를 통째로 맞바꾸려는 시도를 진행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이후 1974년 다시 한번 맞교환을 시도했으며, 가장 최근인 2011년에도 서로 간의 영토 교환에 대한 시도를 추진한 바 있지만 역시 이해관계가 얽혀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그 결과 여전히 인도와 방글라데시에는 각국의 영토가 남아 있다. 2015년 기준 방글라데시 내 인도 고립영토는 모두 111곳에 달하고, 이곳에는 인도인 3만8,521명이 거주하고 있다. 인도 내 방글라데시 고립영토 역시 51곳에 달하며, 이곳에 거주하는 방글라데시인은 1만4,863명에 이른다. 고립영토에 거주하는 주민들은 시민권을 취득하거나 행사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는 고립영토 거주자가 자국 관청에 가기 위해서는 다른 나라 영토를 지나야 하는데, 각각의 비자 발급 제도를 유지하고 있는 인도와 방글라데시에서 비자 없이 국경을 통과해 자국으로 들어가려는 시도 자체가 불법 체류가 되기 때문이다. 실제 방글라데시 고립영토 주민 75% 정도가 자국으로 가기 위해 인도 영토를 지나다 투옥되기도 했다.

래드클리프 라인을 둘러싼 파키스탄과 인도 간의 분쟁은 단순히 영국인이 영토를 구획했기 때문이라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영국인의 손에 그어진 또 다른 지역의 국경선은 전혀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기도 했다. 대표적 사례가 듀랜드 라인(Durand Line)이다. 영국 공무원 모티머 듀랜드 경(Sir Motimer Durand)은 아프가니스탄 국경선을 획정하는 업무를 담당했다. 듀랜드 역시 이역만리 밖에서 온 사람일 뿐이지만, 접근 방법은 달리 했다. 듀랜드는 국경선을 결정하는 과정 이전에 여러 부족 간 경계선을 최대한 수용하려 노력했으며, 유목민의 특성을 고려해 계절에 따라 어느 지역으로 이동했다가 다시 어디로 돌아가는지를 감안하려 노력했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국경선 확정 이후에는 부족 간의 다툼도 발생했다. 하지만 듀랜드 라인은 래드클리프 라인과 달리 상당기간 동안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다.

이처럼 한 번 획정된 국경선은 이후 국경을 맞닿아 있는 국가 간의 지속적인 분쟁 거리를 유발할 수 있다. 물론 과거에 그려진 모든 국경이 인간의 오판 내지 실수로 유발된 것은 아니다. 20세기 초반까지 명확한 지도를 확보하지 못한 지역이 많아서 지형을 오인해 그려진 국경도 많았다. 의도치 않은 이유로 잘못 설정된 국경선이라 하더라도 인근 국가 간 커다란 분쟁 요인으로 작용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한국, 주변국 영토 분쟁에 빠져들 수도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국경으로 인한 분쟁은 좀처럼 발생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통일 이후 두만강과 압록강을 접하는 중국과의 국경 문제라든가, 우리나라와 직접적인 관계는 없다 하더라도 러시아와 일본 간의 쿠릴열도 문제, 중국과 일본의 남중국해 문제 등 언제 어느 순간 우리 지역 내 분쟁 요인으로 작용할지 모를 일이다. 이런 분쟁이 야기되었을 때 우리의 입장을 명확히 설정하기 위해서라도 지금 그려진 지구상의 국경선들이 누구에 의해서 어떠한 기준으로 설정된 것인지 다시 한번 점검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그간 본 칼럼을 통해 국내 경제 상황 못지않게 글로벌 경제 동향을 함께 살펴본 궁극적인 이유도 이런 맥락에서 찾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박정호 명지대 특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