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의 새 지도부를 뽑는 전당대회가 '확대명'(확실히 당대표는 이재명) 기류를 굳히면서 흥행에도 빨간불이 켜지고 있다. 매주 진행되는 지역별 경선에서 권리당원 투표율이 하락하는 가운데 광주와 전북 등 전통적 텃밭인 호남 지역에서도 다른 지역에 못 미치는 저조한 투표율이 나오고 있어서다.
선거 구도가 초반부터 굳어진 탓에, 다른 후보를 뽑으려던 지지층이 적극적으로 투표에 나서지 않았다는 분석이 많다. 여기다 당의 미래비전과 가치를 논하기보다는 강성 지지층에 기댄 선거가 투표율을 떨어뜨린다는 지적도 나온다.
21일 발표된 광주·전남지역 권리당원 투표 결과를 보면, 광주 투표율은 34.18%, 전남 투표율은 37.52%로 각각 집계됐다. 전날 발표된 전북 투표율(34.07%)까지 호남 지역의 투표율은 총 35.49%로 모두 이날까지 전국 평균 투표율(36.44%)에 못 미친다.
‘민주당의 뿌리’로 불리는 호남은 매번 전국 단위 선거(대선·총선·지방선거) 때마다 전국 투표율과 비슷하거나 그 이상의 투표율을 기록했던 곳이다. 하지만 6월 열린 지방선거에서는 광주(37.7%), 전북(48.6%) 투표율이 이례적으로 전국 투표율(50.9%)에 크게 못 미쳤다. 이번 전당대회마저 저조한 투표율을 기록한 것은 민주당에 대한 호남의 열기가 식어가고 있는 추세를 보여준다.
크게 보면 호남의 문제만은 아니다. 전당대회가 진행될수록 투표율이 점점 떨어지고 있다. 강원과 대구·경북, 제주, 인천에서 진행된 1주차 투표율은 39.0%였는데, 2주차 투표율은 36.9%로 하락했고, 3주차는 여기서 더 떨어졌다.
호남 투표율이 낮은 원인으로는 초반부터 이재명 의원이 70% 이상 몰표를 받는 등 일방적으로 진행된 선거 구도 영향이 가장 많이 꼽힌다. 이 의원 지지층은 친명 최고위원 후보를 모두 당선시키기 위해 전략적으로 움직이고 있지만, 비명계 후보들은 대부분 당선권에서 멀어져 있어 이 의원에 반대하는 민주당 지지층이 결집하기 쉽지 않다.
전북 장수 출신인 박용진 후보의 득표율은 전남에서 20.98%, 광주에서 21.42%로 이재명 후보의 3분의 1에도 못 미친다. 최고위원 투표에서도 당선권에 든 후보는 전남 순천 출신 장경태 후보(누적 10.84%)뿐이다. ‘호남 단일후보’를 내세운 송갑석 후보가 이날 전남에서 14.55%, 광주에서 22.27%를 얻었지만, 여전히 누적 득표율은 9.09%로 5위인 박찬대 후보(9.47%)보다 낮다. 호남출신 비명계 의원은 “앞선 지역의 투표 결과를 보고 투표를 포기한 경우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전당대회가 ‘이재명 강성 지지층 vs 반이재명’ 구도로 진행되면서 당의 가치와 정책에 대한 논의가 잘 보이지 않았던 데 대한 당원들의 실망감이 큰 것도 투표율을 낮췄다.
전당대회 기간 내내 ‘이재명 방탄용’ 논란이 있었던 ‘당헌 80조’ 문제에 대한 공방이 이어지면서 소득주도성장 삭제 등 당의 가치를 드러내는 강령 개정 문제는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했다. 이재명 후보를 겨냥한 사법 리스크, 계양을 공천 논란 등도 정책 이슈를 가렸다.
박용진 후보는 이날 전남 합동연설회에서 “호남과 당원 동지들이 오늘의 민주당을 불신임하고 있는 것”이라며 “당을 책임져야 할 지도자들이 당장의 이익에 연연하는 상황논리를 정당화하기 위해 동지들의 마음을 이용하는 행태가 불신임을 만들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최병천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 부소장은 “선거 구도가 박빙이라면 투표율이 올라가겠지만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찍을 사람이 없다’는 정서도 투표율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해석했다.
이날 투표 결과까지 누적하면 이재명 후보는 권리당원 투표에서 78.35%, 박용진 후보는 21.65%를 각각 얻었다. 앞서 발표된 1차 여론조사에서도 이재명 후보가 80%에 가까운 표를 얻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 추세를 뒤집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남은 관건은 고민정 후보 외에 다른 비명계 후보가 최고위원에 입성할 수 있을지다. 최고위원 후보는 ‘양강’으로 꼽히는 정청래(26.40%), 고민정(23.39%) 후보 외에 △서영교(10.84%) △장경태(10.84%) △박찬대(9.47%) △송갑석(9.09%) 후보 등이 1%포인트 내외 격차로 치열한 싸움을 벌이고 있다. 윤영찬(6.63%), 고영인(3.34%) 후보는 대의원 투표 등에 기대를 걸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