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수출 기업들은 공급망의 중국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미국과 협력해야 한다고 판단하면서도 '칩4 동맹'(미국 주도의 반도체 공급망 협의체) 가입에는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한상공회의소가 17일 공개한 '글로벌 환경변화에 따른 수출 전망과 과제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설문에 응답한 기업들은 '칩4'에 대해 '참여해야 한다'는 의견이 절반가량인 53.4%에 그쳤다. '참여는 하되 당장은 보류하는 것이 낫다'(41.3%), '참여하지 말아야 한다'(5.3%) 등 가입을 주저하는 응답이 46.6%나 됐다.
기업들은 칩4가 중국에 의존한 공급망 재편을 가져올 것이며 이 과정서 시장 점유율 면에서 우세를 점할 수 있다고 의견을 모았지만, 가입 시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태 때처럼 후폭풍을 우려한 것이다. 우태희 대한상의 상근부회장은 "우리 기업에 불이익이 발생하지 않도록 정부는 기업의 의견을 충분히 조사하고 이를 반영한 가입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 응답 기업들은 하반기 수출이 상반기보다 감소할 것(64.7%)으로 전망했는데, 이 원인을 '중국 등 주요 대상국의 수요 감소'(44.3%)와 '부품·원자재가 인상'(37.6%), '공급망 위기'(18.1%) 등 중국 리스크로 꼽았다.
중국 진출 기업들은 하반기 수출 감소 가능성을 높게 예상(72.1%)했다. 업종별로는 가전(-6.67%)의 수출 감소 폭이 가장 클 것으로 봤고, 섬유·의류(-5.86%), 철강(-4.32%), 제약·의약품(-0.67%), 조선·플랜트(-0.3%) 순이었다. 중국 경제 성장률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상하이 봉쇄 여파 등으로 1분기 4.8%에서 2분기 0.4%로 크게 떨어진 상태다.
내년 수출 전망을 두고도 기업 66%가 '올해보다 수출이 감소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성우 대한상의 국제통상본부장은 "수출에 대한 걱정이 크다는 의미"라며 "수출 활력을 키울 장기적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응답 기업들은 정부 극복 방안으로 '글로벌 공급망 확보 등 경제 안보 강화'(37.3%), '신규시장 진출 등 수출다변화 지원'(26.1%), '양자·다자 자유무역협정 확대 등 통상전략 강화'(25.3%), '전략산업 육성'(11.3%) 등을 요구했다.
또 공급망 다각화를 위해 중점적으로 협력해야 할 국가로는 미국(47.3%·복수응답)을 가장 많이 꼽았고, 이어 중국(33.7%), 유럽(15.3%), 중동·아프리카(13.0%) 등의 순이었다. 미국을 자원, 첨단기술 등을 모두 보유한 안정적 공급처로 기업들이 인식했다는 설명이다.
보고서는 지난달 23일부터 30일까지 국내 수출기업 300개사를 대상으로 한 설문결과를 바탕으로 작성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