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음식의 대명사는 김치와 비빔밥, 삼겹살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다르다. 해외에서 가장 잘 나가는 한국음식은 치킨이다. 정확히 말하면 ‘한국식 치킨’(K치킨)이다. 외국인들에겐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종류의 치킨이라서다. 업계 한 관계자는 “외국에선 프라이드 치킨을 눅눅하게 튀겨서 달거나 매운 디핑소스에 찍어 먹는 게 보통이었는데 한국 치킨은 튀김옷에 다양한 맛을 입히고 바삭하게 튀겨서 나온다”며 “한국식 치킨이 한 단계 높은 고급 음식으로 자리 잡고 있다”고 인기 비결을 설명했다.
국내 치킨 회사들의 해외시장 출점 경쟁에 불이 붙었다. 처음에는 한류 열풍 덕에 인지도가 올라갔는데, 이제는 맛과 품질로 현지인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반짝 유행'이 아닌 평소에도 즐겨 찾는 외식 메뉴 반열에 올라섰다는 평가다.
실제로 농림축산식품부의 '2021 해외 한식 소비자 조사'에 따르면 외국인이 1년간 자주 먹는 한식 메뉴는 김치(27.7%)도, 비빔밥(27.2%)도 아닌 한국식 치킨(30%)이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문화 콘텐츠는 단발성 유행으로 그치기 쉽지만, 음식은 체험하고 오감을 자극하기 때문에 문화적 흡수력이 높고 재소비를 불러일으킨다"며 "전략만 잘 갖춘다면 해외에서도 일상적 메뉴로 자리 잡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북미와 중동 등 진출 지역도 다양해지고 있다. 한류 열풍이 부는 곳이 주요 공략 대상이기 때문이다. 제네시스 BBQ는 57개국 500여 매장을 운영 중인데 최근에는 미국 공략에 주력하고 있다. BBQ는 북미에서만 6개월 새 매장을 50% 늘린 250여 개로 확대했다. 굽네를 운영하는 지앤푸드도 지난 12일 미국 LA 1호점을 시작으로 북미 진출을 본격화했다. 교촌치킨을 운영하는 교촌에프앤비는 지난해부터 닭고기 소비량이 많은 중동 지역에도 힘을 쏟고 있다. 지난해 12월 중동 두바이에 연 1호점은 한 달 만에 월 매출 46만 디르함(약 1억5,000만 원)을 달성하기도 했다.
구체적인 전략을 보면 공통적인 특징이 있다. 맛은 최대한 한국처럼 하되, 사업 모델은 지역별로 다변화하는 것이다. BBQ는 한국의 맛을 그대로 살리기 위해 소스, 파우더 등 필요한 재료를 국내에서 가져다 쓴다. 외국인이 한국식 치킨을 선호하는 이유가 한국식 양념과 바삭한 식감인 만큼 일관성 있는 맛으로 브랜드 정체성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다만 진출 국가의 특성을 반영한 메뉴도 개발하고 있다. 교촌치킨은 채식주의자가 많은 말레이시아에서는 '미트프리' 메뉴를, 윙 부위를 선호하는 미국에서는 윙 메뉴를 주력으로 선보인다. 굽네는 매장을 '한식 패밀리 레스토랑'으로 포지셔닝하고 잡채, 달걀말이 등 다양한 한식 메뉴를 확대 중이다. 주력 메뉴인 치킨은 튀기지 않고 구운 건강한 치킨의 이미지를 강조한다. 굽네 관계자는 "코로나19 확산 이후 건강식을 추구하는 건 전 세계 트렌드"라며 "'오일 프리' 슬로건을 내세워 안심할 수 있는 먹거리로 다가갈 것"이라고 말했다.
사업 모델은 진출 국가에 따라 다양한 방식을 택하는 추세다. BBQ는 '치맥(치킨+맥주)'을 즐기는 매장 외에도 패밀리 레스토랑 타입, 피자 등도 파는 베이커리 타입 등으로 현지 소비자의 식문화에 따라 여러 사업 모델을 구축했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는 진열대에 미리 준비된 제품을 구입하는 문화가 익숙해 치킨도 바로 가져갈 수 있도록 '그랩앤고(Grab & Go)' 방식을 도입했다.
매장 모델에서 나아가 한국식 치킨의 강점인 배달 사업도 강화한다. 교촌치킨은 해외진출 초기 쇼핑몰에 플래그숍 형태로 입점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배달형 모델을 주력 사업으로 전환하고 있다. BBQ는 미국에서 오버이츠 등 배달업체와 계약을 하고, 배달 전문 매장인 BSK(BBQ Smart Kitchen) 모델을 확대 중이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에서 치킨 배달은 아직까지 낯선 문화인데, 코로나19 이후 배달 수요가 늘고 있어 한국의 역량을 잘 접목한다면 승산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