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대목이 코앞인데, 대체 이게 뭔 일이랍니까.”
11일 낮 12시 서울 동작구 남성사계시장에서 건어물을 파는 상인 김모(55)씨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8, 9일 동작구 일대를 집어삼킨 폭우로 그의 가게는 말 그대로 ‘쑥대밭’이 됐다. 전날 비가 잠깐 그친 틈을 타 가게에 들어찬 물은 어느 정도 뺐으나 벽이며 바닥에는 수마가 할퀴고 간 흔적이 여전했다. 처참히 망가진 외부 진열대 근처엔 북어포며 멸치, 말린 다시마 등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갑작스런 물폭탄으로 생계 수단을 잃은 이는 김씨뿐이 아니다. 영세 상인이 대부분인 이 시장 점포 130여 곳 중 절반 가까운 60여 곳이 날벼락을 맞았다. 중앙안전재난대책본부에 따르면 서울 34곳, 경기 23곳, 인천 5곳 등 수도권에서만 62곳의 전통시장이 침수와 누수, 하수도 역류 등의 피해를 봤다. 점포 수로 따지면 1,300곳에 이른다. 아직 신고하지 않은 점포까지 합치면 피해는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남성사계시장은 정문 앞이 움푹 패어 있어 물이 그쪽으로 고이는 바람에 입구 쪽 점포들의 피해가 심각했다. 입구 바로 앞에서 약국을 운영하는 박모(50)씨는 침수된 의약품 중 쓸만한 것들을 골라내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는 “이런 상태라면 언제 영업을 재개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했다. 한 달도 남지 않은 추석 대목이 특히 걱정이다. 한 생선 가게 주인은 “보통 추석 1, 2주 전부터 대목 기운이 보이는데, 올해 장사는 물 건너 갔다”고 울상을 지었다.
너도나도 허탈감이 가득한 차에 반갑지 않은 손님의 등장은 상인들을 더욱 화나게 했다. 이날 시장에서는 여러 명의 구청 직원과 군 장병들이 복구 작업을 도왔다. 김성원 의원 등 국민의힘 당직자 수십 명도 자원봉사를 하러 왔다. 하지만 정치인들이 사진 촬영을 하고 취재 기자들로 시장이 북적이자 일부 상인들은 방해만 된다며 거세게 항의했다.
오후에 찾은 남성사계시장 인근 성대전통시장 역시 사정은 비슷했다. 거의 모든 상인들이 고압세척기로 진열장 등을 말리는 중이었다. 시장 입구엔 미처 치우지 못한 망가진 냉장고와 가전집기 등 쓰레기가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농산품을 취급하는 김모(60)씨는 “추석 때 팔려고 준비한 물건들이 죄다 쓸 수 없게 됐다”고 한탄했다.
정부도 부랴부랴 대책 마련에 나섰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소상공인ㆍ전통시장 활성화를 위해 9월 한 달간 온누리상품권 판촉 행사를 열기로 했다. 1인당 상품권 할인 구매 한도는 지류형은 70만 원까지, 모바일형은 100만 원까지로 확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