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침체 우려 속에 스타트업들의 불황형 인수합병(M&A)이 늘고 있다. 불황형 M&A란 투자 시장이 얼어붙은 상태에서 스타트업들이 추가 투자를 받지 못해 어쩔 수 없이 기업을 매각하는 경우다.
11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지난 1일부터 11일까지 발표된 스타트업 관련 M&A만 10건이다. 지난달까지 포함하면 한 달 새 발표된 주요 M&A는 20건을 넘어선다.
업계에서는 불황형 M&A의 증가 이유를 투자 위축에서 찾는다. 벤처투자사(VC)들이 경기 침체를 우려해 스타트업 투자를 꺼리면서 스타트업들의 M&A가 가속화된다는 분석이다. 이렇게 되면 매각하는 기업은 기업가치를 높게 평가받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VC들에 따르면 한때 기업가치 1조 원의 유니콘이 될 것으로 꼽히던 자율주행 스타트업 포티투닷은 당초 인수를 전제로 투자했던 현대자동차와 M&A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현대차에서 인수 일정과 금액 등을 12일 이후 공시할 것으로 알려진 포티투닷은 이 과정에서 기업가치가 지난해 말 투자 유치 때보다 밑돌 것으로 예상돼 투자사들이 한숨을 쉬고 있다. VC 관계자는 "지난해 투자 유치 때만 해도 B사의 기업가치는 5,000억 원 이상이어서 장차 유니콘이 될 것으로 거론됐는데 지금은 4,000억 원대 인수설이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또 유명 물류 스타트업 A사도 최근 투자 유치가 무산되면서 M&A 물망에 오르내리고 있다. VC 관계자는 "지난달 말 진행하던 수천억 원대 투자 유치가 중단됐다"며 "대주주가 지분을 담보로 제2금융권에서 수백억 원대 대출까지 받은 상황이어서 어려움이 크다"고 전했다.
반면 자금 여유가 있는 스타트업들에게는 인수 대상 기업의 몸값이 하락해 큰 돈을 들이지 않고 사업을 확대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이에 일부 스타트업들은 복수의 스타트업들을 사들이는 등 적극 M&A에 나서고 있다.
명함 관리 앱 '리멤버'로 유명한 스타트업 드라마앤컴퍼니는 최근 신입 채용 전문 스타트업 자소설닷컴과 인턴 채용에 특화한 슈퍼루키를 잇따라 인수하며 인력관리 분야로 사업을 넓히고 있다. 지난해 말 1,600억 원을 추가로 투자 받은 이 업체는 충분한 자금을 바탕으로 올해 들어서만 이안손앤컴퍼니 등 채용 관련 스타트업 3개사를 인수했다.
발명왕으로 유명한 황성재 대표가 창업한 로봇 개발 스타트업 라운지랩도 지난달 말 식음료 스타트업 엠비치오넴에 이어 지난 1일 자율주행 로봇 업체 코봇을 인수하는 등 열흘 사이에 2개사를 사들였다. 세금계산 앱 '삼쩜삼'을 만든 스타트업 자비스앤빌런즈도 아르바이트 직원의 급여 관리 앱을 개발한 하우머치와 영상통화 기술을 갖고 있는 스타트업 스무디 등 2개사를 상반기에 인수했다.
음원 지식재산권 투자 스타트업 비욘드뮤직도 티아라, 다비치 등 800여 곡의 유명 가수들 저작인접권을 갖고 있는 인터파크 음악사업부와 400여 곡의 저작인접권을 보유한 FNC인베스트먼트를 상반기에 잇따라 사들였다. 전동킥보드 공유업체 지바이크도 최근 현대자동차의 개인형 이동수단 플랫폼 '제트'와 공유 전동킥보드 스타트업 구구를, 야놀자클라우드는 소프트웨어 개발사 인키 인포시스템즈와 스마틱스 등을 속속 인수했다.
이 밖에 금융기술(핀테크) 스타트업 토스가 지난달 알뜰폰 업체 머천드코리아를 인수하며 이동통신 시장에 진출했고, 핀테크 기업 핀다도 지난달 말 상권분석 스타트업 오픈업을 인수하며 소상공인을 겨냥한 맞춤 대출 사업을 준비 중이다. 프로그래밍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는 멋쟁이사자처럼은 지난 5일 국내 1위 대체불가토큰(NFT) 사업을 벌이는 메타콩즈 인수를 발표했다. 게임개발업체 넵튠도 이달 초 게임 앱 광고 등에 특화된 광고기술(애드테크) 스타트업 애드엑스를 합병하며 사업 확장에 나섰다.
VC들은 불황형 M&A가 하반기에 더 늘어날 것으로 본다. 차민석 SJ투자파트너스 부사장은 "투자시장이 얼어붙어 어려움을 겪는 스타트업들은 어쩔 수 없이 M&A 대상이 될 수 밖에 없다"며 "투자사 쪽에서 투자금 회수를 위해 스타트업들에게 M&A를 권하는 경우도 있어 하반기에 불황형 M&A가 증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