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정책은 공놀이가 아니다

입력
2022.08.05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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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높이! 더 멀리! 더 빠르게!"

최근 풋살에 취미를 붙인 나는 주말마다 여성 풋살 모임에 나가 공을 찬다. 대부분이 초보인 이곳에서는 개인기나 전략을 찾아볼 수 없다. 돌아가며 골키퍼를 보는데, 골킥을 할 때면 다들 하늘 높이, 저 멀리 차려고 노력한다. 풋살을 아는 사람이라면 어떤 빌드업도 없이 그렇게 공을 차는 모양새가 우스울 것이다. 그렇게 찬 공은 엉뚱한 곳에 떨어지니까. 그러나 우리의 목표는 재미이지 승리가 아니기에, 골키퍼가 공을 찰 때면 농담으로 구호를 외친다. 더 높이, 더 멀리, 더 빠르게!

재미로 하는 스포츠야 그런 농담이 적당할 수 있지만, 전략이 필요한 곳에서 그런 구호가 들린다면 얼마나 당황스러운가. FIFA 풋살 월드컵에서 그런 고함이 들린다면? 혹은 초등학교 교실에서 수업 중에 들린다면? 아니, 세금을 들여서 하는 정부와 지자체의 정책이 그렇다면?

공공주택을 줄이고 용산에 초고층 건물을 짓겠다는 서울시, 여의도와 압구정까지 이어지는 신속통합기획, 뜬금없는 서울혁신파크에 짓겠다는 임대주택, 갑작스러운 초등생 입학 연령 하향. 최근 정책은 더 높게, 더 멀리, 더 빠르게를 지향하는 것 같다. 우리의 세금은 그렇게 '신속'하게 진행되는 사업에, '신속'하게 쓰이고 있다.

더 높게 쏘아 올린 작은 공이 엉뚱한 곳에 도착하는 걸 보는 일이 잦다. 지난 7월, 서울문화재단은 예술청에 대규모의 인사와 조직개편을 '신속'하게 이뤄냈다. 예술청의 개관 기념 아카이브 전시에 작가로 함께했던 나는, 예술청의 조성 역사를 알기에 아연할 수밖에 없었다. 예술청은 예술인과 시민이 정책 수립에 참여하는 민간 협치 형태를 가지고 있고, 그것이 예술청 역사의 근본이자 방향성이다. 민간협치를 바탕으로 구성된 예술청이었지만, 조직개편 단계에서는 논의 과정이 없었다. 독단적인 인사와 조직개편에 반대하며 예술청 공동운영 주체인 예술인들이 입장문을 내고, 주권자 예술인 연대가 성명서를 냈다.

곳곳에서 기존의 정책과 방향성을 빠르게 뒤엎는 사례를 본다. 오래전부터 사회적경제 관련 기업과 중간지원 조직의 보금자리였던 서울혁신파크는 느닷없이 세대공존형 임대주택으로 변신하게 되었다. 세대공존형 임대주택은 필요하지만, 그 자리로 서울혁신파크를 가리키는 것은 전 시장 흔적 지우기 혹은 용산 고층 빌딩 조성을 위한 급박한 결정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지난주에는 군포문화도시지원센터가 갑작스럽게 문을 닫는다는 소식을 들었다. 군포시는 예비문화도시로 지정받았으나 전국 최초로 사업을 중단했다. 나는 문화도시사업에서 멘토로 참여하고 있었는데, 멘토링을 받던 시민들은 사업 무산 소식에 갑자기 갈 길을 잃었다. 군포의 문화도시사업은 조성 시작에서 토론회, 집담회, 설문조사, 전문가 인터뷰 등을 거쳤으나, 그 끝은 허무하게도 신속하게 다가온다.

이런 변화의 흐름은 유튜브를 닮았다. 자극적이고 선동적이며, 빠르고 가시적이다. 그러나 우리 세금은 좋아요가 아니고, 우리 정책은 공놀이가 아니다. 관계자들이 모두 모여 긴 협의 끝에 만들어지는 정책은 더디게 이뤄질 수밖에 없기에, 박수갈채를 받으며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그러나 잘못된 방향으로 신속하고 빠르게 나아가는 것보다, 물러나지 않을 한 걸음을 제대로 디디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힘차게만 쏘아 올린 그 공은, 과연 어디로 떨어질 것인가?


박초롱 딴짓 출판사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