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을 주제로 한 현악 앙상블의 공연을 기획하는 중이다. 주최 측의 요청사항엔 '흡인력이 강한 선율'이 최우선이었다. 무더위에 지치다 보면 집중 시간도 단축되기 마련이어서 기나긴 서사를 지닌 진지한 음악보다는, 상쾌하고도 신선한 음향이 효과적일 것이었다. 여름의 열기를 식혀 줄 악상을 부지런히 탐색했다.
우선 남미의 사계절을 오선지에 담은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사계'가 떠올랐다. 작곡가 피아졸라는 유럽에서 이주해온 아르헨티나 뱃사람들의 춤곡인 탱고 음악에 예술적 부흥을 일으켰다. 브라질에서 삼바 같은 경쾌한 춤을 즐긴다면 아르헨티나 사람들은 농염하고도 절도 있는 탱고에 매료되었다. 원래는 항구의 카바레나 선술집에서 춤의 반주로 머물던 음악이지만 피아졸라 덕택에 콘서트홀에서도 연주될 수 있는 예술음악으로 부상한다. 누에보 탱고의 역사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사계' 중 여름 악장은 바이올린의 눈부신 기교가 만발한다. 특히 멀리 떨어진 음정을 미끄러지듯 연결하는 연주 기법인 글리산도(glissando)가 빈번히 등장해 듣는 재미를 한껏 북돋는다. 탱고의 대가답게 약박에 강세가 오는 당김음을 활용해 도발적이고도 과감한 리듬을 구사하는데, 피아졸라가 영감의 원천으로 삼았던 비발디 사계의 선율도 군데군데 등장하니 친근하고 반갑다.
라틴아메리카 특유의 활력이 깃든 여름의 악상을 마주했다면, 이젠 여름밤의 정취가 스민 나른한 악상을 만날 차례다. 거슈윈의 '서머타임'은 뱃사람의 아내가 아기를 재우면서 부르는 자장가다. 모난 데 없이 둥근 선율은 모성애와 결속되고, 조급함을 휘발시켜 나른한 템포는 여름밤의 습기를 담아낸다. 그런데 주 선율은 딱 6음만으로 구성되었다. 12개의 반음 중 2분의 1만 활용하고 있으니 한정된 지루함이 느껴질 법한데도 외려 신선한 보폭이 자유롭다. 블루스와 스윙 등 재즈기법을 과감히 차용한 덕택이다. 뉴욕 출신의 작곡가 거슈인은 이 곡이 포함된 오페라 '포기와 베스'의 배경을 독특하게도 흑인 빈민가로 설정했었다. 애초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극장으로부터 위촉을 받았던 때, 클래식 음악계에서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 설움을 해소하며 이른바 제도권 음악계를 비틀고픈 의욕이 샘솟았다고 한다. 그러므로 주인공부터 가난하고 억압받는 사회적 약자로 설정했고, 음악 역시 클래식과 재즈의 경계를 넘나드는 새로운 악풍을 개척했다. '서머타임'에 매료된 뉴욕의 청중들은 거슈인을 슈베르트에 견줄 만한 '멜로디 메이커'라 일컬으며 독특한 선율작법에 환호했었다. '제2의 슈베르트'란 호명 탓이었을까. 거슈인 역시 1937년, 39세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나며 슈베르트의 요절을 이어갔다.
흙냄새가 풀풀 풍기는 향토적 무곡도 무더위에 지친 피로에 자양강장제와 같은 역할을 한다. 헝가리와 루마니아의 국경 근처에서 태어난 버르토크는 유년시절부터 토속적 민요에 흠뻑 빠졌다. 버르토크에게 민요는 '시간의 영혼이 층층이 스민 농민의 음악'이었다. 에디슨이 발명한 구식 녹음기를 챙겨들고 민요를 찾아 외딴 시골 구석구석을 탐방했는데 20대부터 수집하고 정리한 농민음악이 1만4,000곡에 이를 정도였다. 버르토크는 도시문명에 오염되지 않은 민요의 야성을 불협화음과 들쑥날쑥한 리듬을 통해 신선한 악상으로 승화시켰다. 그중에서도 '루마니아 민속무곡'은 첫 감상에도 귀에 쏙 들어올 만큼 상쾌한 선율을 뿜어낸다. 리듬을 달리한 춤곡이 7개나 묶여 있지만 연주시간은 단 6분에 이르는 산뜻한 모음곡이다. 깡시골의 흙냄새가 진하게 느껴지는 춤곡은 더위에 눅진해진 기운을 생생하게 회복시킨다.
음악에서 다원성은 어떻게 구현되는가. 이 오랜 고민을 한여름의 다채로운 악상으로 일깨우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