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오후 울산 동구 현대호텔에서 열린 ‘2022 울산 조선업 채용박람회장’에서 만난 현대중공업 사내협력사 관계자의 말이다. 이날 박람회에는 30개 업체가 참여해 256명을 채용할 예정이었지만, 지원자는 40여 명에 불과했다. 지원자가 한 명도 없어 일찍 부스를 정리하는 곳도 눈에 띄었다. 행사 관계자는 “경북, 부산까지 용접 등 관련 분야 전문학원을 찾아가 채용박람회를 홍보했지만 반응은 시큰둥했다”며 “‘조선업=열악’이라는 인식이 공식화된 탓에 젊은이들은 아예 조선업 쪽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있다”고 씁쓸해했다.
조선업이 수년간의 침체기를 벗어나 다시 호황을 맞고 있지만 인력난 때문에 크게 웃지 못하는 분위기다. 최근 경남 거제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 파업 사태를 통해 일부 알려졌지만, 실제 현장에서 느끼는 조선업 인력난은 훨씬 심각한 수준이다.
31일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조선업계 인력은 원·하청을 통틀어 9만2,721명으로 6개월 전인 지난해 말(9만2,687명)보다 겨우 34명 늘었다. 정부가 밝힌 올해 신규 인력 증원 목표 8,000명의 0.5% 수준에도 못 미친다.
그래도 업계나 정부, 지자체는 인력난 해소를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울산시는 지난해 말 고용노동부와 현대중공업 등 관계기관과 조선업 일자리 상생협약을 맺고 기술연수생에 대해 훈련 장려금으로 월 100만 원을 지급하고 있다. 타지에서 온 신규 취업자에게는 월 25만 원씩 1년간 이주 정착비도 준다. 청년 근로자가 매월 12만 5,000원을 적립하면, 정부 및 지자체가 4배로 불려 1년 뒤 만기 공제금 600만 원과 이자를 지원하는 ‘조선업 내일채움공제’ 사업도 진행 중이다. 부산시와 전남도도 올 초부터 조선업 구직 희망자에게 선체 블록 제작, 선박부분품 제작·설치, 전기·제어 시스템 등의 교육을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교육 수료자에게는 2개월간 훈련수당 월 40만 원을 주고, 취업 땐 최대 120만 원을 추가로 지급한다.
조선업 밀집지역을 중심으로 이 같은 지원 사업에 책정된 예산만 올해 131억 원이 넘는다. 하지만 신규인력 유입 효과는 미미하다. 채용을 해도 절반 이상은 한두 달 사이 그만둔다. 이 때문에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에 등록된 원·하청 업체들은 올해 들어 두 달에 한 번 800명씩 뽑았지만, 전체 인력 규모는 제자리다. 한 하청업체 관계자는 “일단 지원금을 풀면 어떻게든 인력이 늘긴 하지만, 정작 일을 가르치고 시킬 만하면 나가는 통에 오히려 작업 속도만 더 느려진다”고 하소연했다.
노동계선 저임금과 다단계 하청구조가 개선되지 않는 한 조선업계 인력난은 지속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현재 현장에서 일하는 기능직 노동자 수는 비정규직이 정규직의 2배 이상이다. 15년째 조선소에서 발판 작업을 하고 있는 하청업체 노동자 강행진(58)씨는 “작업하다 떨어져 죽은 사람도 많다. 그렇게 위험한 일을 하루 9시간씩 하고도 월급은 250만 원밖에 못 받는데 누가 오겠느냐”고 말했다.
51일간 이어진 대우조선해양 하청업체 파업 사태도 저임금과 고용불안이 원인으로 꼽힌다. 윤용진 민주노총 전국금속노동조합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 사무장은 “지금 추진 중인 정부 대책은 암환자에게 감기약을 처방이라고 내놓은 꼴과 같다”면서 “하청 노동자의 저임금으로 경쟁력을 높이려는 낡은 경영방식부터 뜯어 고쳐야 한다”고 밝혔다.
전문가들 역시 조선업 하청구조의 개선이 인력난을 해결하기 위한 근본적 처방이라고 입을 모은다. 신원철 부산대 사회학과 교수는 “원청 정규직 노동자는 단체협약으로 임금을 결정하는데 하청 노동자는 원청이 일방적으로 결정한다”며 “직접 고용이 어렵다면 간접 고용한 하청 노동자에 대한 임금 격차 등을 시정하도록 의무화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