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로 빚은 달동네 판잣집...비루함과 영원 사이

입력
2022.07.29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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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고재에서 정영주 개인전 
청년 작가 6명의 단체전도 함께 열려


캔버스에 한지를 붙이고 채색하는 작풍으로 유명한 화가 정영주의 개인전과 1980년대에 태어난 작가들의 단체전이 다음 달 말까지 서울 종로구 학고재에서 열린다. 자신만의 작풍을 확립한 중견 작가와 주제와 표현에서 새로운 시도를 거듭하는 청년 작가들의 작품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기회다.

정영주는 27일부터 다음 달 21일까지 학고재 본관 등에서 열리는 개인전 ‘ANOTHER WORLD(어나더 월드)’에서 2018년부터 올해까지 제작한 작품 28점을 선보인다. 이 중 한 점을 제외한 모든 작품이 이미 판매됐을 정도로 미술 시장에서 인기가 높다. 그는 2008년부터 한지를 이용해 달동네 풍경을 그려왔는데, 이번에 전시하는 작품들 역시 마찬가지다. 프랑스에서 학업을 마치고 미국에서 작품 활동을 하다가 1997년 외환위기로 집안 사정이 어려워져 귀국했던 작가의 경험이 반영된 작품들이다. 밤을 배경으로 따뜻한 느낌의 가로등이 켜진 마을 그림엔 인정과 나눔, 공감 등의 정서가 투영돼 있다.

작가는 한지를 잘라내 구겨서 집 형태로 캔버스에 붙이고 조각도로 지붕의 모양을 냈다. 이후 밑색을 칠하고 아래서부터 위쪽으로 묘사를 더한다. 대부분의 작품에서 달동네 판잣집들이 끝없이 펼쳐지고 수평선에서 희미해진다. 영원함을 상징하는 표현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사계절을 주제로 한 작품들도 선보인다. 최근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귀국한 이후 강남의 고층 빌딩들 사이로 판잣집이 보였다”면서 “그 집이 힘들고 비루하고 나이 먹은 당시의 제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한지의 쭈글쭈글한 질감으로 비루함과 세월의 흐름을 표현했다”고 설명했다.

학고재 신관에서는 다음 달 20일까지 젊은 작가 6명의 단체전 ‘살갗들’이 열린다. 10여 년 안팎의 작품 활동을 해온 작가들을 신진, 신예라고 부르기는 어렵지만 그들의 작품에는 ‘청년’이라는 수식어가 어울린다. 행성들을 해변의 모래알처럼 직관적으로 표현하고(허수영), 인왕산 풍경에 서울과 미얀마에서 본 동식물이 함께 나타나는가 하면(김은정), 다채로운 색들이 폭발하듯 펼쳐지기도 한다(박광수). 현실에 존재하는 풍경을 만화적 상상력을 발휘해 환상적으로 그려내거나(이우성), 구상적 소재들의 경계를 허물어 그림에서 서사를 지워낸 경우도 있다(장재민). 제도용 도구를 직접 고안해 일정한 패턴을 그려내면서 물리학적 개념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작품(지근욱)도 있다. 회화라는 틀을 지키면서도 다양한 주제와 표현이 두드러지는 작품들이다.








김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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