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불공정’ 낙인을 찍은 경찰대는 세무대학의 길을 가게 될까. 정부가 행안부 내 경찰국 신설에 이어 경찰대 개혁에 강한 드라이브를 걸자, 경찰대 폐지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세무대학은 한국 경제의 고도 성장기에 필요한 전문인력 양성을 목적으로 출범했지만, 형평성 문제가 불거지고 설립 취지마저 퇴색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정부 관계자는 27일 “정부가 조직 한 곳(경찰청)을 두고 이토록 압박하는 것은 굉장히 이례적”이라며 “경찰대도 세무대나 철도대처럼 사라질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전국 총경 모임을 두고 윤석열 대통령이 '국기 문란'으로 규정하고, 이상민 장관도 ‘쿠데타’라는 격한 표현을 동원한 것은 조직 해체를 염두에 두지 않고는 생각하기 힘든 압력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이 장관은 "총경 모임을 특정 그룹이 주도했다"고 단정하면서 “경찰대를 졸업했다는 사실만으로 경위(7급)부터 출발하는 건 불공정하다”며 경찰대 출신에 대한 반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윤 대통령과 이 장관이 경찰대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여과 없이 드러냄에 따라, 경찰대가 세무대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세무대는 세무대학설치법에 따라 1980년 세무 인력 양성을 목적으로 설립된 특수목적대학이다. 2년제 대학이지만 졸업과 동시에 국세청과 재무부, 관세청 등에 8급으로 채용됐다. 이들이 2년 일찍 학업을 마치면서도 높은 급수로 입직해 국세청 고위직에 대거 포진하자 ‘세무대가 국세청을 장악했다’는 말까지 나왔다.
9급 공채와 세무대 출신 세무공무원 간 형평성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되자, 세무대학설치법폐지법률을 통해 2001년 2월 졸업식을 마지막으로 세무대는 사라졌다. 경찰대도 1981년 출범 때부터 폐지 논란이 제기됐지만, 대학 진학률이 높지 않던 시절 우수 인재 양성이란 긍정적 측면이 부각되면서 명맥을 이어왔다. 그러나 현재 대부분의 경찰이 대졸 출신임을 감안하면 경찰대 설립 취지가 다소 퇴색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경찰대 폐지가 이번에 처음 제기된 것은 아니다. 경쟁 시험을 치르지 않고 대학 졸업 후 경찰 간부(경위)로 직행하는 것을 놓고 오래전부터 논란이 일자, 정원 감축과 특혜 폐지로 이어졌다. 2019년 입학생부터는 기동대 소대장 근무 특혜가 사라져 개별적으로 병역의무를 이행해야 하고, 지난해에는 고교 신입생 선발 규모가 100명에서 50명으로 줄었다.
경찰대가 폐지되려면 경찰대학설치폐지법안이 국회에서 통과돼야 하는 만큼, 실제 폐지까지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다만 윤 대통령과 이 장관의 '경찰대 힘빼기' 의중이 드러나면서 일각에선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눈엣가시인 경찰대 집단의 세가 꺾일 경우 윤석열 정부에서 '성골'로 부상한 검찰 출신이 득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경찰 관계자는 “벌써부터 차기 국가수사본부장에 검사 출신이 오고 실질적인 경찰 권한이 검찰로 넘어간다는 시나리오가 돌고 있다”고 전했다. 검·경 수사권 조정의 결과로 지난해 출범한 국수본의 수장은 경찰 수사를 총괄하는 자리로, 검사 출신도 오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