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공원이 진정 침팬지를 위한다면

입력
2022.07.23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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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팬지 반출 관련 반대 목소리가 많아) 토론회를 열어 의견을 수렴하겠다. 국민 의견이 반대일 경우 보내지 않겠다."

멸종위기종 침팬지 광복이와 관순이를, 동물쇼를 하는 인도네시아 동물원으로 보낸다는 서울대공원 결정에 동물단체와 시민 반대가 거세지자 이수연 서울대공원 원장이 이달 초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이다. 침팬지 반출은 철저히 이들의 복지를 위해 전문가들이 과학적, 객관적으로 결정할 문제다.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도 아니고 여론으로 결정하겠다는 발상부터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지만 서울대공원은 이 약속마저 지키지 않았다. 서울대공원에 확인한 결과 토론회 개최 여부는 결정되지 않았다고 했다. 오히려 서울대공원 실무자들은 이 원장 발언 이후 유튜브 오세훈TV를 통해 침팬지 반출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나섰다. "광복이, 관순이가 열악한 환경에서 지내며 성(性) 성숙 등으로 정신적 스트레스가 심해 이들의 복지를 위해서라도 다른 침팬지 마을로 '시집, 장가'를 보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서울대공원의 주장대로 광복이, 관순이는 꼭 시집, 장가를 가야 할까. 먼저 이들이 지내는 환경이 열악하다는 것은 서울대공원이 그동안 이들을 방치해온 걸 인정하는 셈이다. 2019년 5월 반출이 결정된 후 서울대공원은 이들을 위한 시설 개선에 노력하지 않았다. 올해 유인원관 관리계획 긍정강화 훈련 대상에도 이들은 제외되어 있다. 그러면서 환경이 열악해 보낸다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다.

광복이가 성 성숙이 온 이후 정신적 스트레스가 심하다는데, 야생동물을 오래 연구해 온 이항 서울대 수의대 명예교수 등 전문가들은 중성화 수술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고 했다. 이에 대해, 서울대공원은 미국 동물원수족관관리협회(AZA)가 멸종위기종인 침팬지 중성화를 반대하고 있다며 종 보전을 위해 광복이와 관순이의 번식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광복이와 관순이의 번식이 침팬지 종 보전에 기여할 수 있을까. 이 명예교수를 포함해 국내 영장류 학자, 야생동물 수의사들의 의견을 종합해보면 그렇지도 않다. 오히려 이들을 중성화하는 것이 종 보전과 복지에 도움이 된다.

광복이, 관순이는 아종(분류학상 종의 하위 단계로 같은 종에서 유전·지리·형태적으로 세분된 개념)이 섞인 침팬지로 유럽동물원수족관협회(EAZA), 일본동물원수족관협회(JAZA)는 순혈로 인정하지 않는다. 유전적으로 번식 가치가 거의 없다는 얘기다. 학계에선 연구용으로도 인정받지 못한다고 했다.

미국 AZA는 아종이 섞인 개체를 종 보전 개체로 인정한다 하지만, 침팬지 종 보전 프로그램(SSP)을 운영하며 따로 관리한다. SSP에 가입돼 있지 않다면 AZA의 침팬지 종 보전 관리에서 벗어나 있다는 얘기다. 서울대공원은 광복이와 관순이가 SSP에 가입돼 있지 않다고 설명한 뒤, 관련 보도가 나가자 갑자기 가입돼 있다고 말을 바꿨다. 확인할 순 없지만 가입돼 있다면 서울대공원은 애당초 광복이와 관순이를 동물중개상이 제시한 인도네시아 타만사파리로 보낼 게 아니라 SSP를 통해 보낼 곳을 물색했어야 했다.

'번식=종 보전'의 시대는 지났다. 관람용 번식이 종 보전이라면 멸종위기종 남방큰돌고래 제돌이, 춘삼이, 삼팔이도 바다로 돌려보낼 게 아니라 수족관에 가둬 번식시켰어야 하는 것 아닌가. 국민 합의, 종 보전을 운운하며 허울 좋은 변명을 생각할 시간에 기존 환경 개선, 대안 모색 등 진정 이들을 위한 방안을 고민하길 바란다.

고은경 애니로그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