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과 소연이는 짝꿍... '전교생 1명' 섬마을 학습장의 하루

입력
2022.07.31 09:30
4년 전 학생 수 감소로 문 닫은 청룡초 고대도 분교
올해 3월 '전교생 1명' 고대도 학습장으로 재개교
"학습장 덕분에 마을에도 활기" 주민들 반겨



충남 보령시 앞바다에 있는 섬마을 고대도에는 학생도 1명, 선생님도 1명 뿐인 작은 학교가 있다. 정식 명칭은 '청룡초등학교 장고분교장 고대도 학습장'. 학습장인 김택기(33) 교사와 초등학교 2학년 박소연(9)양이 함께 하루하루 배움을 이어가고 있다.

김 교사는 본교인 청룡초등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 지난 3월 자신의 교육철학을 실현할 수 있는 기회라는 판단에 고대도 학습장 교사에 지원했다. 소연이는 1학년이던 지난해 오천면 광명초등학교로 매일 배를 타고 통학을 하다 포기하고 독학을 해 왔다. 올해 고대도 학습장이 생기면서 다시 학생 신분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지난 11일 오전 고대도 선착장에서 김 교사를 만났다. 보령 시내에서 가족과 함께 생활하는 김 교사는 오전 9시 수업에 늦지 않으려면 새벽부터 서둘러야 한다. 집에서 차를 운전해 원산도 선촌항에 도착한 뒤 행정선을 타고 25분을 달려야 고대도에 다다른다. 그리고는 다시 자전거를 타고 학교까지 이동, 총 1시간 30분 이상 소요되는 힘겨운 출근길이다.

이날 김 교사는 두 손에 짐을 한 아름씩 들고 배에서 내렸다. 소연이에게 줄 급식 우유와 간식 그리고 학습 교재들이다. 자전거를 타고 학교에 도착하니 먼저 와 기다리고 있던 소연이가 반가운 얼굴로 달려와 깍듯이 인사를 한다. 선생님은 가지고 온 물건들을 정리하자마자 수업을 시작했다.



첫 수업은 수학. 선생님과 학생 단 둘이서 함께 해답을 찾아보는 ‘1대1 수업’ 덕분일까, 소연이는 어려운 수학문제도 척척 풀어냈다. 달콤한 쉬는 시간에 김 교사는 학교 친구가 없는 소연이를 위해 친구로 깜짝 변신한다. 둘은 함께 교실 한쪽에 있는 돗자리 위에서 서로 웃고 떠들며 게임을 한다. 시끌벅적한 게임놀이가 끝난 뒤 시작된 2교시는 생존수영과 물총싸움 실습 시간이다. 영상으로 구명조끼 착용법을 배운 뒤 옷에 달려있는 호루라기 사용법, 물통으로 구조하기 등을 배운 뒤 생존 수영 수업을 마쳤다.

곧이어 소연이가 기다리던 물총 싸움. 다른 학교 같으면 학생들끼리 편을 나눠 하지만 선생님과 전교생 합해서 단 둘뿐인 이곳에서는 선생님과 학생의 대결이 된다. 학습장 앞에서 시작된 물총싸움은 곧 동네 골목으로, 동네 전체로 판이 커졌다.



한참을 뛰어다니다 옷이 젖은 김 교사와 소연이는 휴전을 하고 점심을 먹는다. 학교에 급식시설이 없다 보니, 소연이는 집에서 점심을 먹어야 한다. 김 교사는 소연이를 집에 데려다 준 뒤 혼자서 소연이의 작은 책상 위에 도시락을 풀어놓고 점심을 해결했다. 이 섬에도 밥을 해주는 곳이 몇 곳 있지만 섬이라 물가가 비싼 탓에 도시락을 준비해야 한다.



이곳 학습장에서 김 교사는 일반 수업 시간엔 선생님 역할을, 체육이나 미술 수업에선 소연이의 짝꿍 역할을 한다. 맘껏 뛰어놀 수 있는 실습시간이나 쉬는시간에는 둘도 없는 친구다. 소연이와의 1대1 수업에 대해 김 교사는 “교육 프로그램을 자율적으로 계획하고 실현할 수 있는 좋은 점도 많지만 나름 아쉬운 점도 있다”고 전했다. “학생들이 많으면 서로 협동학습을 하고 상호작용을 하면서 사회성과 협동성을 배울 수 있지만, 학생이 한 명이다 보니, 토론이나 체육, 미술 등 상호작용이 필요한 수업을 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가끔 인근 장교 분교로 가서 협동수업을 하거나 육지로 나가 본교 2학년 학생들과 함께 하는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시켜 또래와 어울리는 기회를 만들어 주는 이유다.

이 같은 노력 덕분인지 소연이는 많이 달라졌다. 소연이는 “선생님과 단둘이 하는 수업도 즐겁고 행복하지만, 같은 또래 친구들과 함께하는 공부와 게임놀이가 조금 더 좋아요”라며 환하게 웃었다. 패션 디자이너가 장래 희망인 소현이는 “여름방학에는 이제껏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동물원에 가서 그림책으로만 봤던 동물들을 보고 싶다”고 수줍게 말했다.

고대도 학습장은 올해 3월 1일 섬의 유일한 학교였던 고대도 분교가 문을 닫은 지 4년 만에 다시 문을 열었다. 재개교가 쉽지는 않았지만, 인근 섬 ‘녹도’에 있는 ‘녹도 학습장’의 사례를 보면 고대도 학습장의 미래는 밝다. 녹도 분교 역시 2006년 학생 수 감소로 문을 닫았다가 11년이 지난 2017년 학생 1명을 위해 ‘녹도 학습장’으로 다시 개교한 뒤 현재는 유치원생 4명을 포함해 전교생이 8명으로 늘어났다.

주민들은 학교가 다시 생기면서 조용했던 고대도 섬마을에 활력이 넘친다며 반기고 있다. 학습장 설립을 염원한 주민들을 대표해 백방으로 뛰어다닌 김흥태 고대도 이장은 “고대도 학습장이 생기면서 섬 주민은 물론, 5명의 미취학 어린이들에게도 희망이 생겼다”며 “교육 때문에 할 수 없이 섬을 떠나던 주민들이 하루 빨리 다시 돌아와 활기찬 마을이 되길 기대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충청남도에는 전국에서 세 번째로 많은 총 217개의 섬이 있다. 최근 적극적으로 섬마을 학습장 설립을 추진하고 있는 김지철 충남 교육감은 "섬마을에서 초등학교가 사라진다는 것은 마을이 없어지는 것과 같은 의미"라며 “현재 운영 중인 섬마을 학습장 대다수가 교육부 기준을 적용하면 모두 통폐합 대상이지만 섬에 있는 초등학교 저학년 학생이 편도 40~50분씩 장거리 통학을 하는 것은 무리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김 교육감은 “교육 문제를 단순한 경제 논리로 판단하지 말아야 하고, 앞으로 계속해서 학생들의 건강권과 학습권을 위해 섬마을 학습장을 적극적으로 설치하겠다"고 강한 의지를 내비쳤다.




왕태석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