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2019년 ‘탈북 어민 강제북송’ 사건과 관련해 노영민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 주재로 대책회의를 열고 탈북 어민 2명의 북송 방침을 결정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윤석열 정부 들어 진행된 국정원 내부 조사를 통해 파악됐으며, 서훈 전 국정원장 등에 대한 국정원 고발장에도 이런 내용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국정원은 안보 전문가가 아닌 노 전 실장 주도로 북송 결정이 이뤄진 것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며 서 전 원장과 노 전 실장 간에 사전 교감이 있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청와대 지침에 따라 서 전 원장이 탈북 어민 합동조사 업무방해와 허위 보고서 작성을 강행했다는 게 국정원의 판단이다.
20일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2019년 11월 2일 해군에 나포된 탈북 선박에 탑승한 북한 어민 2명의 신병 처리 방안을 결정하기 위한 대책회의는 11월 4일 청와대에서 열렸다. 노 전 실장이 회의를 주재했으며, 안보와 대북 관련 청와대 관계자 여러 명이 참석해 북송 방침이 결정됐다. 서훈 당시 국정원장은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고, 서 전 원장을 대리할 국정원 인사도 회의에 들어가지 않았다.
국정원은 내부 감찰을 통해 이런 사실을 파악하고, 노 전 실장이 안보와 대북 관련 전문가가 아니라는 점에 의문을 던졌다. 탈북 어민 신병처리는 국가안보실이 2019년 전면 개정해 시행하는 ‘우리 관할수역 내 북한 선박ㆍ인원 발견 시 대응 매뉴얼’에 따라 중앙합동정보조사 결과를 토대로 결정되기 때문이다. 국정원은 조사 주체이자 책임자인 서 전 원장 의견이 생략된 송환 결정은 이례적이라고 보고 있다.
국정원과 정부는 대책회의 종료 뒤 발빠른 행보를 보였다. 통일부에선 곧바로 합동조사 상황을 공유해달라고 요청했고, 국정원에선 다음 날인 11월 5일 조사 보고서를 전달했다. 초기 보고서에 없던 ‘대공 혐의점은 없음’이란 내용이 추가된 반면, ‘강제수사를 건의한다’ ‘귀순’이라는 표현은 삭제됐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국정원을 통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부산 한ㆍ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 특별 정상회의 초청 친서를 보내고 통일부를 통해 어민 북송 방침을 정식으로 북측에 전달한 것도 그날이었다. 나포 시점부터 북한에 어민들을 돌려보내겠다는 뜻이 전달되기까지 사흘밖에 걸리지 않은 셈이다. 신병처리 결정에 필요한 정부합동조사는 11월 6일 종료됐으며, 북송은 7일 이뤄졌다. 청와대는 북송 3시간 전에야 법무부에 북송 관련 법리 검토를 요청했다고 한다.
윤석열 정부 국정원은 내부 조사를 통해 당시 청와대가 탈북 어민들이 북방한계선(NLL)을 넘어 남하를 시도하던 11월 1일과 선박이 나포된 2일, 두 차례에 걸쳐 살인 범죄를 저지른 북한인의 송환 사례가 있는지 당시 국정원에 문의한 사실도 파악했다. 어민들 조사가 진행되기도 전에, 이미 북송 조치를 염두에 뒀다고 본 것이다.
국정원은 이 같은 조사 결과를 토대로 서 전 원장이 청와대와 강제 북송 방침을 교감하고, 청와대 지침에 따라 합동정보조사를 조기에 종료시키려 했다고 보고, 고발장에 조사 내용을 꼼꼼히 담은 것으로 알려졌다. '탈북 어민 강제북송'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3부도 문재인 정부 국정원뿐 아니라 청와대 인사들까지 수사 대상으로 삼고 있다.
본보는 청와대 대책회의 주재 경위와 논의 내용을 확인하기 위해 노 전 실장에게 수차례 통화를 시도하고 문자메시지를 보내봤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다. 노 전 실장은 앞서 언론에 “4일 (대책) 회의를 주재한 적이 없고 회의 직후 현장조사 취소는 모르는 사안”이라고 밝힌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