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쪼개고 쪼개어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정도까지 이르면 어떻게 될까? 이것은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계속돼 온 인간의 호기심이었다. 현대과학은 그 끝 단계쯤에 존재하는 원자의 세계를 탐구했다. 그리고 이 작은 것들의 세계(미시세계)에선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와는 다른 듯 보이는 물리법칙이 더 지배적으로 작용한다는 점을 알아냈다. 이 물리를 기존 물리학과 구분해 양자물리라고 부른다.
양자물리에서 모든 물질은 입자(물체)이면서 동시에 파동(현상)이다. 전자 등 입자는 파동의 특징 중 하나인 중첩(여러 개의 상태가 동시에 존재하는 것)의 성격을 띤다. 하지만 중첩 상태는 측정하는 순간 붕괴(하나의 상태만 남고 나머지 상태가 사라짐)해 우리가 관찰할 수 없다. 또 중첩 상태의 두 입자에선 하나의 상태가 결정되면 다른 하나의 상태도 함께 결정되는 '얽힘' 현상이 일어난다.
양자컴퓨터는 양자물리의 '중첩'과 '얽힘'을 알고리즘 계산에 활용한다. 기존 컴퓨터(클래식컴퓨터)는 전기가 통과하면 1, 통하지 않으면 0으로 표기하는 2진법 구조의 비트로 구성된다. 하지만 양자컴퓨터의 양자비트(큐비트)는 0과 1의 중첩 상태가 가능하기 때문에 클래식컴퓨터와 달리 병렬 계산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 클래식컴퓨터는 f(x)=0(단, 0≤x<1,024)이라는 함수를 계산할 때 x에 모든 숫자를 순차적으로 넣어 그 결과가 0인지를 확인하는 알고리즘을 따른다. 하지만 양자컴퓨터는 10개의 큐비트(0000000000~1111111111)를 중첩 상태로 만들어 함수의 값을 0으로 만드는 고유상태가 한 번에 튀어나오게 만들 수 있다. 클래식컴퓨터라면 최대 1,024번의 순차 계산을 해야 하지만 양자 컴퓨터는 동시에 계산할 수 있다. 이런 특징 때문에 양자컴퓨터는 제어할 수 있는 큐비트 수가 증가할 때마다 속도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10큐비트의 경우 10비트의 클래식컴퓨터보다 2의 10제곱 배 빠르고 100큐비트의 경우 100비트의 클래식컴퓨터보다 2의 100제곱 배 빠르다.
양자컴퓨터에도 약점은 있다. 바로 오류가 문제다. 클래식컴퓨터에서 1바이트(byte)는 8비트로 구성되는데, 7비트는 데이터를 담고 1비트를 통해 오류를 확인한다. 하지만 양자컴퓨터는 기존 방식의 오류 확인이 불가능하다. 양자물리에 따라 관측하는 순간 중첩 상태가 붕괴, 데이터가 변질되기 때문이다. 결국 1큐비트의 오류를 수정하는데 4큐비트가 소요된다. 5큐비트가 묶여야만 하나의 논리큐비트로 활용될 수 있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양자컴퓨터의 등장은 필연적"이라고 말한다. 클래식컴퓨터의 연산 처리능력은 무어의 법칙에 따라 18개월마다 2배씩 증가해왔다. 하지만 트렌지스터의 크기가 원자의 크기에 가까워질수록 양자적 현상이 강하게 나타나며 전자회로의 작동을 방해한다.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양자적 현상을 제거할 수 없을 정도가 된다. 양자적 특성을 제거하는 대신 그 특성을 활용하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해야 하는 시점(양자컴퓨터의 활용)이 올 수밖에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