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양자컴퓨터 시장은 누가 천하를 통일할지 전혀 알 수 없는 춘추전국시대다. ①초저온에서 전기저항이 없어지는 현상을 이용한 초전도 방식, ②전자기장으로 이온을 잡아두는 이온트랩 방식, ③다이아몬드의 성질을 활용한 다이아몬드 점결함 방식까지.
이처럼 여러 방식의 양자컴퓨터가 동시다발로 개발되는 중이지만, 어떤 방식이 가장 효율성을 인정받으며 미래의 패권을 쥘 것인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다만 현 단계에서 가장 앞서 나가는 기업은 분명히 있다. 초전도 방식을 이용 중인 IBM과 구글이다. 특히 IBM은 이미 2016년에 업계 최초로 양자컴퓨터 클라우드 서비스를 제공해 누구나 양자컴퓨터에 접근할 수 있도록 했다. 전 세계 40만 명 이상이 서비스에 등록했고, 하루 40억 번 이상 양자회로가 구동되고 있다.
업계 선두 기업이 보는 양자컴퓨터 시장의 현재와 미래는 어떨까. 13일 서울 여의도 사무실에서 만난 원성식 한국IBM 대표는 현재 양자컴퓨터 시장 상황을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쪽에서 개발이 막 시작되면서 전체적인 모양을 갖춰 나가는 과정"이라고 진단했다.
원 대표는 "양자컴퓨터가 기존 컴퓨터(클래식컴퓨터)보다 빠르거나, 효율적이거나, 정확한 경우를 양자 우위(quantum advantage)라고 부른다"며 "양자 우위가 달성되면 슈퍼컴퓨터 대신 양자컴퓨터를 활용하는 게 산업적으로 유리한 분야가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아직은 슈퍼컴퓨터를 완전히 넘어서진 못했고, 알고리즘 등을 개발하며 양자 우위 시대를 준비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통상 오류 없이 1,000큐빗(큐빗=양자컴퓨터의 최소 정보 단위)을 오롯이 사용할 수 있으면 특정 문제에선 클래식컴퓨터보다 뛰어난 문제 해결이 가능하다고 본다. 원 대표는 "IBM은 올해 433큐빗 시스템을 선보인 뒤 내년까지 1,121큐빗 컴퓨터를 출시한다"며 "2025년에 여러 칩을 연결하는 방식으로 4,000큐빗 이상의 프로세서를 개발하는 게 목표"라고 설명했다.
원 대표는 인터뷰 내내 "양자컴퓨터 시대에 들어가더라도 하드웨어 개발 못지않게 소프트웨어 및 생태계 개발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소프트웨어의 중요성을 언급하며 1990년대 한국이 독자기술로 개발한 중형컴퓨터(주전산기) 타이컴의 예를 들었다. 1988년 서울올림픽 마스코트인 호돌이(tiger)에서 이름을 딴 타이컴은 하드웨어 쪽에서는 뛰어났지만 아무도 한국에서 개발한 하드웨어에 소프트웨어를 구동하려 하지 않았다. 그는 "생태계 구축이 늦어진다면 하드웨어적으로 얼마나 뛰어난지와 무관하게 시장에서 도태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원 대표는 "한국이 제조업 강국이다 보니, 하드웨어 개발을 통한 양자기술 내재화에 더 많은 관심과 투자가 이뤄지는 것 같다"고 현 상황을 진단하며 "하드웨어와 동시에 소프트웨어 등 응용분야에 대한 투자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양자 우위가 달성된 후 소프트웨어 개발에 뛰어들면 이미 늦을 것"이라는 게 그의 조언이다.
그는 IBM이 양자컴퓨터 소프트웨어 개발 툴(수단)을 숨기지 않고 공개하는 것도 '생태계'를 조성하기 위함이라고 설명했다. 원 대표는 "특정 국가나 소수 엘리트가 끌고 가는 폐쇄적 개발은 열린 방식을 앞서갈 수 없다"며 "(열린 생태계 안에서) 많이 사용하는 컴퓨터만이 지속적인 발전을 이룰 수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