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희열, 방송활동 중단...잇단 표절 의혹과 '어설픈 사과문' 악재

입력
2022.07.18 18:53
22면
'스케치북' 13년 3개월 만에 하차
'뉴 페스타' 등도 이번주 마지막 녹화
2~3주 전부터 하차 준비... 이날 결정
"지난 시간  부정당한 것 같다는 이야기 가슴 아파"

가수 겸 작곡가 유희열(51)이 다음 주부터 방송 활동을 잠정 중단키로 했다. 최근 발표한 신곡 '아주 사적인 밤'이 일본 음악가 사카모토 류이치의 '아쿠아'와 유사해 표절 의혹이 제기된 후 다른 곡들까지 표절 논란이 번진 여파로 보인다. 국내 대중 음악시장에서 표절 논란이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데뷔 25년을 훌쩍 넘은 정상급 대중음악인이 표절 판정을 받지 않았는데도 프로그램에서 하차하기는 이례적이다.

18일 소속사 안테나 뮤직에 따르면, 유희열은 19일 KBS2 '유희열의 스케치북' 마지막 녹화를 진행한다. 2009년 4월부터 이 프로그램 마이크를 잡은 뒤 13년 3개월 만의 하차다. 마지막 녹화분은 22일 방송될 예정이며 유희열의 하차로 프로그램은 폐지된다. 아울러 JTBC 음악예능프로그램인 '뉴페스타'에서도 하차한다. JTBC 관계자는 '뉴페스타' 녹화도 이번주가 마지막으로 다음 달 9일 방송되는 10회까지만 등장한다"고 말했다.

유희열은 이날 소속사를 통해 밝힌 입장문에서 "우선 긴 시간 동안 저와 관련한 논란으로 피로감을 안겨드려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의 말씀을 전한다"며 "(표절 논란으로) 지난 시간을 부정당한 것 같다는 이야기가 가장 가슴 아프게 다가왔다. 상실감이 얼마나 크실지 감히 헤아리지 못할 정도"라고 프로그램 하차 이유를 밝혔다. 그러면서 "제가 지금 어디에 와 있는지 저의 남은 몫이 무엇인지 시간을 가지고 심사숙고하며 외면하지 않겠다"며 거듭 사과의 뜻을 밝혔다. 본보 취재를 종합하면, 유희열은 2~3주 전부터 모든 예능 프로그램 하차를 고민해오다 여러 제작진과 협의 끝에 이날 프로그램 하차를 결정했다.

유희열은 그러나 입장문에서 "지금 제기되는 표절 의혹에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며 "상당수의 의혹은 각자의 견해이고 해석일 순 있으나 저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들이다"며 여러 표절 의혹에는 선을 그었다.

유희열을 둘러싼 표절 논란은 지난달 발매 예정이던 프로젝트 음반 '생활음반' 수록곡 '아주 사적인 밤'부터 시작돼 연이어 다른 곡들로 번졌다. 유희열이 작곡하고 성시경이 부른 '해피 버스데이 투 유'(2002)가 일본 그룹 안전지대 멤버인 다마키 고지가 1998년 발표한 동명의 곡과 유사하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그가 2013년 MBC '무한도전-자유로 가요제'에서 발표한 '플리즈 돈 고 마이 걸'이 미국 리듬앤드블루스 그룹 퍼블릭 어나운스먼트의 '바디 범핀'과 비슷하다는 의혹도 나왔다.

표절 논란에 기름을 부은 건 유희열과 소속사가 앞서 세 차례 낸 '이상한' 사과문이었다. 유희열은 '아주 사적인 밤'이 '아쿠아'와 유사하다는 지적을 받자 지난달 14일 낸 첫 사과문에서 "메인 테마가 충분히 유사하다는 데 동의하게 됐다"며 의혹을 일부 인정하는 듯한 모습을 취하면서도 "무의식중에 기억 속에 남아 있던 유사한 진행 방식으로 곡을 쓰게 됐다"고 해명했다. 이는 표절이 의도적인 게 아닌 무의식중에 벌어진 일이라는 취지의 해명으로 받아들여져 온라인에선 '유체이탈' 사과란 비판이 쏟아졌다.

이후 당사자격인 사카모토 류이치가 지난달 20일 "모든 창작물은 기존 예술에 영향을 받는다"며 "법적 조치는 필요한 수준이라 볼 수 없다"고 밝혀 유희열에게 힘을 보탰지만 이 역시도 논란을 덮지는 못했다. 유희열 소속사가 "표절이라는 범주에 부합되지 않는다는 점을 확인했다"는 입장을 냈으나 원곡자가 아량을 베풀어 법적 절차에 나서지 않았다고 해서 표절이 아니냐는 반발을 불렀다. 류이치가 소송을 제기하지 않아 표절 여부가 법적으로 판가름나기 어렵지만 이런 반감 분위기에서 방송 활동을 지속하기 어려웠을 것으로 풀이된다. 김성수 문화평론가는 "유희열이 대중음악계에 미치는 영향력 등으로 '이 정도 인정하고 사과했으면 됐지'라고 안일하게 생각한 것이 논란을 키웠다"며 "업계가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일"이라고 지적했다.



양승준 기자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