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외교장관 회담이 18일 도쿄에서 4년 7개월 만에 열렸다. 양자회담을 위한 한국 외교장관의 공식 방일은 2017년 12월 당시 강경화 장관 이후 처음이다. 이날 회담에서 박진 외교부 장관과 하야시 요시마사 일본 외무장관은 최대 현안인 강제징용 배상 판결 문제의 조기 해결이 필요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 박 장관은 '김대중-오부치 선언'의 정신과 취지를 강조했고, 양측은 북한의 추가 도발 시 단호히 대응하기로 뜻을 모았다. 고위급 교류 재개를 위한 첫걸음을 뗐다고 볼 수 있다.
관건은 강제징용 배상의 실질적 진전이다. 2018년 대법원이 피해자들에게 일본 전범기업들이 배상토록 판결하자, 일본 정부는 “국제법 위반”이라며 가해 전범기업의 배상판결 이행을 가로막아왔다. 그러자 일본 기업 자산이 압류됐고, 이를 현금화(강제매각)하는 시한이 다가오고 있다. 박 장관은 이날 회담에서 민관협의회 진행 등 한국의 노력을 설명했다. 정부가 저울질해온 ‘대위변제안’의 경우 한국 정부가 피해자에게 배상금을 지불하고 이후 일본과 기금을 조성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일본의 사과와 배상이 빠진 졸속협상은 피해자 반발로 좌초한다는 점을 양국 정부는 명심하기 바란다. 2015년 위안부 합의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한국만의 기금 부담은 한국 행정부가 사법부 판결을 무효화하는 조치나 다름없다는 점에서도 불합리하다. 피해자 측은 일본 기업과 직접협상이 성사되도록 ‘외교적 보호권’을 행사해 줄 것을 이날 우리 정부에 요구하기도 했다. 윤 정부는 전향적인 한일관계를 예고해왔다. 그러다보니 우리 정부가 피해자를 설득할 상황이 된 것은 상식에 맞지 않는다. 국제질서 변화에 한일 연대는 일본에도 절실하다. 한국 제안을 들어보겠다는 태도만 고집한다면 관계 개선 의지를 의심받게 될 뿐이다. 강제동원은 개별기업을 넘어 제국주의 일본이 침략전쟁 와중에 벌인 범죄다. 기시다 내각은 성의 있는 태도와 유연성을 보여주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