틀린 맞춤법 지적에서 손꼽히는 낱말 가운데 며칠 대신 '몇일/몇 일'을 쓰는 경우가 빠지지 않는다. '며칠'이 맞는 근거는 크게 두 가지다. 어원이 고유어 한자어 혼성어 '몇+日'이 아니고 고유어 '하루, 이틀, 사흘, 나흘, 열흘' 따위에 들어가는 어근 '*할/흘'과 같다고 짐작되며 발음도 몇 월[며둴], 몇 인분[며딘분]의 연음 또는 밭일[반닐], 꽃잎[꼰닙]의 사잇소리 현상과 달리 [며딜/면닐]이 아니기 때문이다.
1970~1980년대까지 '몇일'이었다가 '며칠'로 바뀌었다고 착각하는 이들도 간혹 보이지만 1933년 한글 맞춤법 통일안에서도 이미 '며칠'로 정해 놨는데 '몇일'이라고 표기하는 사람도 쭉 있었고, 그게 맞니 틀리니 따지는 일도 줄곧 있었기에 기억이 살짝 왜곡됐을 것이다.
그럼 날수가 아닌 날짜를 일컫는 '몇 년 몇 월 몇 일'만이라도 허용해 달라는 주장도 있다. 얼핏 그럴싸해 보인다. 예외로 두는 게 표기 '몇 월 며칠'이든 발음 [며둴 며칠]이든 오십보백보일 수도 있긴 하다. 어차피 언어에는 예외가 생길 수밖에 없는데 어원과 음운 법칙을 모두 무시하면서 표기만 끼워 맞추기는 꺼림칙하다. '몇일'을 쓸 사람도 앞으로 쭉 있겠고 그러다 언젠가 혹시 표준 표기가 바뀔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며칠'을 꼭 바꿀 근거는 없다. '몇 년'이나 '몇 월'과 달리 시간 단위에서 가장 많이 쓰는 '며칠'만 한 낱말로 굳어졌다.
시계와 달력이 대중화돼 촘촘하거나 장기적인 시간 계획을 세우게 된 20세기 이전에는 '몇 시, 몇 분'이나 '몇 년, 몇 월'을 말할 일이 적었다. '며칠'만 빼고는 모두 한자어다. '몇 해'와 '몇 달'은 기간을 뜻하니 용법이 다르다. 언어란 시대가 지나면서 또는 그때그때 촘촘해지기도 성겨지기도 한다. 이를테면 삼일(3일)로 뭉뚱그리지 않고 사흘(세 날의 기간), 사흗날(어느 시점이든 셋째 날), 초사흘/초사흗날(달의 셋째 날)로 가려서 말할 수도 있겠으나 고유어 셈씨의 쓰임이 줄었고 대개는 맥락상 이해는 되니 넘어간다. 그러니까 '며칠' 하나쯤은 놔둬도 된다.
세는 나이로 여섯 살인 아들은 특이하게 '며칠'을 [며딜]로 발음한다. '몇 월'이나 '몇 시'에서 유추해 나름대로 '몇 일'로 분석한 듯싶다. '무슨 요일'도 '몇 일'에서 유추했는지 몇 요일[며됴일]이라 말한다. 호남 등지의 방언에서 '몇 요일[며됴일/면뇨일]'이라 하는데, 내 고향도 그렇고 우리 가족이 사는 곳도 대전이니 그 영향은 아니다. 혹시 유튜브 때문일지도 모르겠으나 그 방언의 화자가 다수는 아닐 테니 일단 유추로 짐작된다. '몇'은 수를 묻는 것이기에 표준어로는 '요일'에 붙지 않으며 딴 언어도 대개 비슷하다. 중국어로 "오늘 무슨 요일이냐(今天星期幾)?"라고 물을 때 幾(몇)인 것은 요일이 星期一(월요일), 星期二(화요일)처럼 되기 때문이다.
당분간은 아들의 귀여운 [며딜]과 [며됴일]을 일부러 고치지 않고 지켜볼 작정이다. 누구나 언제나 표준어만 쓰지는 않으며 그럴 필요도 없다. 같은 언어를 쓴다고 가정되는 공동체 안에서도 수많은 스펙트럼이 있고, 한 사람의 일생에서도 언어는 끊임없이 변한다. 아이가 자라면서 여러 사람의 말을 접하고 표준어로 쓴 글도 익히면 '며칠, 무슨 요일'로 언젠가 절로 바뀔 테니 그 순간까지 늘 귀를 쫑긋 세워야겠다. 성급히 바로잡기보다는 스스로 바뀔 때까지 기다리는 아량도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