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 파동'은 우리나라 정당 시스템에 문제가 있음을 잘 보여 준다. 이승만 시대에는 초라한 당사에 자리 잡은 야당은 민주주의를 염원하는 국민들의 희망이었다. 박정희 정권은 막대한 자금과 큼직한 당사 건물을 자랑하는 집권당을 장기집권 도구로 사용했다. 싸우면서 닮는다는 말이 있듯이 야당도 비슷한 당 조직을 만들어서 대여(大與)투쟁을 했다. 1987년 개헌 후 여러 번의 정권 교체를 거쳤지만 정당 구조는 크게 변한 것이 없다. 정당 활동을 국비로 지원하자 정당들은 윤택해졌고, 공천을 주무르는 등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우리 정당의 지도부는 최고위원회라고 부르는 기구다. 일주일에 세 번 열리는 각 정당의 최고위 회의는 알쏭달쏭한 구호를 배경 그림으로 걸어놓고 시작한다. 참석자들이 카메라 앞에서 한마디씩 하지만 진지한 토의를 하는 적은 거의 없다. 선거철이 닥쳐오면 싸구려 색색이 점퍼를 입고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해 댄다. 최고위원회는 쿠데타를 일으킨 세력이 의회를 해산하고 국가 권력을 접수할 때 사용하는 명칭인데, 우리 정당은 그런 명칭을 반세기 이상 써오고 있다. 막강한 최고위원회도 선거에서 지고 나면 오뉴월 빙하처럼 무너지고 비상대책위원회가 들어선다. 툭하면 비대위가 들어서서 한국 정당은 비상시가 정상이라는 농담이 나올 정도다.
의원내각제 국가의 정당은 의원들이 주축을 이룬다. 집권당 지도부는 총리가 이끄는 내각이기 때문에 정부와 여당이 엇박자를 낼 일은 없다. 의원내각제에서 야당 지도부는 집권을 준비하는 그림자 내각이다. 대통령제 국가인 미국은 당 대표 자체가 없다. 집권당의 지도자는 대통령이고, 상·하원 원내대표가 백악관과 정책과 입법을 조율한다. 미국의 야당은 상·하원 원내대표, 그리고 야당이 하원 다수당인 경우에는 하원의장이 함께 지도부를 구성한다. 정당은 철저하게 원내 중심이며, 각 정당의 전국위원회는 조직과 홍보를 관장하고 전당대회를 준비한다.
우리나라 정당은 전당대회를 통해 당 대표와 최고위원을 뽑는다. 그 과정에 소요되는 막대한 돈을 후보들이 어떻게 충당하는지는 미스터리다. 과거에는 1위 득표자가 대표가 되고 후순위 득표자가 최고위원이 되며, 최고위원회는 합의제 기구였다. 합의제라서 의사결정이 어려운 점도 있지만 다양한 견해를 수렴하는 장점도 있었다. 합의제 기구이기에 최고위원 몇 명이 사퇴하면 지도부는 붕괴하고 비대위가 들어섰다.
20대 국회 기간 중 각 정당은 정강을 바꾸어서 대표와 최고위원을 별도로 선출토록 했다. 이런 체제에선 임기가 보장되는 대표를 몰아낼 방법이 없다. 20대 국회에 화려하게 등장했던 국민의당도 2017년 대선 후 대표를 별도로 선출토록 했다. 대선에서 3등을 한 안철수가 대표가 됐는데, 그는 독단적으로 바른정당과 합당을 했다. 이렇게 생긴 바른미래당은 2018년 지방선거에서 역대급 참패를 기록했고, 이어서 손학규 전 지사가 당 대표가 됐다. 안철수, 하태경 및 이준석은 손 대표를 몰아내려 했지만 임기가 보장되는 대표를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다. 이들은 각각 탈당해서 새 정당을 만들더니 순차적으로 국민의힘으로 합치고 말았다.
듣기 민망한 스캔들로 리더십이 무너진 당 대표를 윤리위 징계를 통해 몰아내는 진풍경은 우리 정당의 구조 때문에 발생한 측면도 있다. '제왕적 당 대표'가 군림하는 정당을 정상이라고 말할 수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