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씨는 2013년 4월부터 자동차 부품 제조업체 B사에서 일했다. B사는 용광로에 쇠를 녹여 만든 부품을 납품하는 업체로, A씨는 용광로 부근에서 용해된 원료의 주입상태를 확인하고, 시료용 쇳물을 채취해 검사하는 업무를 맡았다.
B사의 근무 환경은 열악했다. A씨가 일하던 작업장은 냉방에도 불구하고 평균 35도를 웃돌았다. A씨는 열기 속에서도 화상을 예방하기 위해 방화용품과 두꺼운 작업복을 착용했다. 평균 소음도 지속적으로 노출되면 청각에 장애가 생길 수 있는 82데시벨(db)에 달했다.
업무도 과중했다. A씨는 1주일 간격으로 주·야간조를 번갈아 일했다. 특히 2018년 8월부터 이듬해 8월까지는 매달 평균 62시간씩 초과근무를 했다.
몸이 아팠지만 일을 멈출 수는 없었다. A씨는 2009년 만성 고혈압과 당뇨병을 진단 받았지만 계속 일했다. 심지어 2019년 4월 대상포진에 걸리고도 약만 먹고 일터로 나섰다. A씨의 2019년 4월 업무시간은 211시간으로, 대상포진과 싸우지 않았던 3월보다도 44시간 많았다.
A씨는 2019년 8월 26일 자정쯤 공장에서 쓰러진 채 발견됐다. 병원에 이송됐지만 사망했다. 사인은 심근경색. 당시 A씨의 나이는 고작 43세였다.
A씨의 아내는 근로복지공단에 유족 급여 및 장의비 지급을 신청했다. A씨 측은 "과중한 업무가 심근경색을 일으켰거나, 기존 질병을 빠르게 악화해 사망하게 됐다"고 주장했다.
공단은 그러나 2019년 12월 "업무와 사망 사이에 상당한 인과관계가 인정되지 않는다"며 신청을 거절했다. A씨의 사망 전 3개월간 주당 평균 업무시간이 40시간에 불과해, 심장병을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하는 최소 요건인 52시간을 넘기지 못했다는 취지였다. A씨 측은 이에 불복해 소송을 제기했다.
1심 법원은 A씨 측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생체리듬에 악영향을 주는 교대근무를 장기간 견뎌온 A씨는 주간 근무만 하는 사람보다 심혈관계 질환에 노출될 위험이 높았다고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사망 직전 근로시간이 고시보다 적었다"는 공단 측 주장에 대해서도 "회사가 인건비 절감을 위해 근로시간을 줄였을 뿐, A씨는 출근할 때마다 하루에 10시간 이상씩 근무했다"며 "사망 전 업무시간이 고시가 정한 기준에 미치지 못하더라도 A씨의 심근경색이 업무상 질병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단정해선 안 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43세 한국 남성이 심혈관계질환으로 사망할 가능성이 낮고 △A씨가 잦은 휴업으로 줄어든 급여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은 점도 참작했다. 항소심 재판부인 서울고법 행정11부(부장 배준현 이은혜 배정현) 또한 지난달 22일 1심 판단이 정당하다고 보고 공단 측의 항소를 기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