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병원은 20년차 간호조무사도 최저임금 턱걸이... 30%는 비인격 대우 경험

입력
2022.07.05 10:30
보건의료노조, 중소병·의원 의료인력 실태조사
연봉 2000만원대 35.1%... 최저임금 미달도 1.4%나
출산휴가·육아휴직 꿈 못 꿔... 20대 초반 선호현상도
30% 이상 비인격적 대우받아... 고함·폭언에 욕설도
병원장이 인사권·평판 좌우해 문제제기도 못 해

중소병·의원에서 일하는 보건의료노동자들이 열악한 근로환경에 노출돼 있다는 실태조사 결과가 나왔다. 이들은 낮은 임금, 수당 미지급, 출산휴가·육아휴직 미보장 외에도 병원장으로부터 폭언이나 욕설 등 괴롭힘을 당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병원장이 마음대로 고용·해고할 수 있어, 열악한 환경 속에서 고용불안까지 느끼고 있었다.

보건의료노조는 5일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에서 '중소병원·의원 노동자 노동조건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에는 중소병·의원에서 일하는 보건의료노동자 4,058명이 참여했다. 직종별로는 의료기사(방사선·임상병리·물리치료사) 65.5%, 간호직(간호·간호조무사) 23.6% 등이었다.

"최저임금 미달 1.4%... 20년차 간호조무사도 턱걸이"

조사 결과 지난해 실수령 연봉이 2,000만 원대인 경우가 35.1%(903명)였다. 2,000만 원 미만 연봉도 1%(39명)였다. 수당과 사회보험료 등을 고려했을 때 최저임금(2021년 8,720원) 기준 연 1,984만~2,272만 원 정도를 실수령해야 함에도, 이에 못미치는 경우가 1.4%(53명)였다. 서울시 생활임금 기준(2,411만~2,868만 원)으로는 13.1%가 이보다 적은 연봉을 받고 있었다. 보고서는 "실제 수당이나 야간근무 일수를 대입하면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비율은 더 많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20년차 간호조무사 A씨는 5년째 일하는 의원에서 법정수당과 간식비를 제외하고 월 196만 원을 받고 있었다. 최저 월급여(191만 원)보다 불과 5만 원 많은 수준이다.

연장근무나 야간·주말근무 등에 대한 보상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었다. 연장(67.1%)·야간(45%)·주말(88.2%) 근무를 한다는 응답자 중 수당을 받지 못한 이들은 △주말 40.7% △연장 15% △야간 7% 순으로 많았다. 수당을 준다 해도 실제 근무 시간과 달리 정액 지급하거나 포괄임금제 형식으로 변형 지급하는 경우는 △야간 30% △연장 26% 순이었다.

출산휴가·육아휴직 등을 보장받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다. 특히 5인 미만 사업장일수록 심했다. 의료기관이 출산휴가, 육아휴직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응답은 각각 15%, 20%였는데, 5인 미만 의료기관의 미보장 비율은 24.4%, 30.5%로 훨씬 높았다. 중소병·의원 노동자를 7년째 상담해 온 오명심 보건의료노조 인천지역지부장도 "5인 미만 사업장은 출산 시 퇴직해야 하는 경우도 많고, 병원장이 결혼·출산이 상대적으로 적은 20대 초반 직원을 주로 고용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10명 중 3명은 비인격적 대우 경험... 병원장 절대 권력에 고발 불가

병원장으로부터 괴롭힘 등 비인격적 대우를 받은 경험이 있다는 응답은 30% 이상을 차지했다. 하지만 이들이 인사권을 쥐고 있어 고발도 어렵다. 간호사 B씨는 "원장이 소리치고 폭언한 뒤 사과를 한다"면서 "원장 병원이라 문제제기 않고 견디다 퇴사하는 경우가 많다"고 토로했다. 허리를 다쳐 오래 서 있기 힘든 간호사를 수술실로 발령해 퇴직을 종용하는 사례도 있었다고 한다.

응답자 10명 중 4명은 고용불안을 심각하게 느끼고 있었다. 5인 미만 사업장의 경우 52.5%가 불안감을 느껴 5인 이상(38.3%) 사업장에 비해 크게 높았다. 응답자 중 3년 미만 근속자 비율이 53.6%로 높았다. 오 지부장은 "개원의 모임에서 평판이 공유되기 때문에 '찍히면 취업 못 한다'는 의식이 팽배했다"면서 "'냉난방이 잘 안 돼 환자가 힘들어한다'고 문제제기를 했다가, 직원들과 불화가 있다는 이유로 부당해고된 경우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한편 보건의료노조는 이번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대한의사협회, 대한병원협회와 단체교섭을 추진하고 있다. 보건의료노조에 속한 10.5%의 의료인력을 제외한 이들에게도 노동기본권을 보장하라는 게 교섭의 골자다. 나순자 보건의료노조 위원장은 "보건의료노동자가 행복해야 환자, 국민이 행복하고, 환자 안전과 양질의 의료서비스 제공도 가능하다"면서 "사각지대에 놓인 중소병·의원 노동자들의 기본권 보장을 위한 교섭을 거부할 이유도 명분도 없다"고 강조했다.

오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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