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 농부' 조인스타트업 장영화 대표 인터뷰 읽고 오기 (관련기사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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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조인스타트업을 찾아오는 분들 중엔 한 회사에서의 경력이 20년에 가까워지는 중년층도 종종 있어요. 정년까지 다니면 앞으로 10년은 안전하겠으나, 그 뒤가 걱정인 거죠. 퇴직 이후의 미래는 보이지 않으니 초조해지는 거예요. 회사를 나오는 평균나이가 49세라는데, 잡 사이클(Job cycle)이 빠른 IT업계 쪽은 40대 초반에 이미 직장생활의 명줄이 다한다고 해요.”
100세 시대라고 하죠. 좋든 싫든 모두가 ‘오래’ 살게 되는 시대, 그만큼 ‘일하는 자아’의 수명도 늘어났어요. 현재 20, 30대인 MZ세대는 60대가 아니라 80대까지 일하게 될 첫 번째 세대라고 해요. 그런데 회사가 보호해줄 수 있는 시간은 아무리 길어봐야 20년 남짓이죠.
지난 7년간 730여 명의 커리어 전환을 도와 온 장영화(50·조인스타트업 대표)씨는 말합니다. “직장생활에서 더 이상의 안전지대는 없어요. 모두가 자기 커리어의 ‘개척자’가 되어야 하는 때가 온 거죠. ‘커리어 피보팅’(Career Pivoting : 커리어 전환)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필수’예요. 남들 좋다는 일에서 벗어나, 내가 진짜 원하는 일을 찾아야 하죠. 평생직장은 없어도 평생직업은 있거든요.”
‘내 일’에 대해 고민하는 건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는 일이에요. 정답 같은 건 없고, 오직 ‘나만의 답’이 있을 뿐이죠. 그래서 더 어렵고 막막합니다. ‘능숙한 길잡이’ 영화씨에게서 ‘커리어 피보팅’의 전략 세 가지를 들어봤습니다.
커리어 코칭을 하며 영화씨가 자주 하는 말 중 하나는 ‘이직이 능사가 아니다’입니다. 특히 입사한 지 1년도 안 됐는데 ‘이직을 하겠다’며 조인스타트업의 문을 두드리는 신입사원들의 경우, ‘100이면 100’ 대부분 그대로 돌려보낸다고 해요. 직장생활이 처음이라면 시작점을 단단하게 키워줄 최소한의 시간이 필요한데, 영화씨는 그걸 1년에서 3년 사이로 본대요. 그래야만 ‘넥스트 스텝’의 단서가 될 수 있을 만한 일 경험이 쌓일 수 있거든요. 한두 달 해보고 ‘이건 아닌 것 같다’며 놓아버리면, 아마 영영 ‘내게 맞는 일’을 찾을 수 없을 거예요. 아무리 대단한 환상과 포부를 갖고 시작한 일이라 하더라도, ‘처음’은 누구에게나 어렵고 힘들기 마련이니까요. 일단은 버티면서 꾸준히 해봐야 좋은지 싫은지, 잘하는지 못하는지를 제대로 알 수 있다는 거죠.
“직장생활은 혼자만 잘하면 됐던 학교 공부와는 달라도 너무 달라요. 함께 일해야 하는 환경에선 ‘인내하는 것과 포용하는 것’도 너무나 중요한 역량이죠. 뿐만 아니라 일의 맥락을 파악하는 눈치, 일을 되게 만드는 융통성과 센스도 중요해요. 흔히 우리가 ‘일머리’라고 부르는 ‘소프트 스킬’이죠. 이런 기술은 하루아침에 배우고 익힐 수 없어요. 책과 강의에 의존해 배우기도 어렵고요. 오직 회사에서만 배울 수 있죠.”
영화씨는 이런 기본기를 쌓으려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첫 직장에서 경험치를 충분히 축적해야 한다고 조언해요. 실수든 성과든 자기 손으로 만들어봐야 ‘기본기’라는 게 쌓이거든요.
되돌려 보내는 사람 중 또 한 부류는 몸값을 올리겠답시고 ‘메뚜기’처럼 6개월 단위로 이직하는 사람이에요. 좁은 스타트업계에서 한번 굳혀진 나쁜 평판은 삽시간에 퍼지거든요. 몸값이야 빠르게 올릴 수 있겠지만, 얼마 못 가 시장에서 완전히 ‘아웃(out)’될 수 있죠. 돈 좀 더 준다고 여기저기 옮겨 다니는 사람을 채용하고 싶어 하는 회사는 드물 겁니다. 아무리 실력이 좋아도요. 일을 한다는 건 곧 ‘회사와 관계를 맺는 것’이기도 해요. 만나는 사람마다 ‘안 좋은 뒤끝’을 남기는 상대와 누가 어울리고 싶겠어요.
“2년이 지나면 여기서 더 성장할 수 있을 것인지의 여부가 어느 정도 보여요. 이걸 기준으로 잔류할 건지, 떠날 건지를 결정하면 돼요. 저는 ‘모판을 옮겨 심는다’고 표현해요. 한 곳에서 충분히 배울 만큼 배웠다면, 꼭 땅을 옮겨줘야 해요. 새로운 자극이 있는 곳에 가야 새로운 기회 역시 생길 수 있으니까요.”
영화씨는 커리어 전환, 즉 ‘직무 변경’을 원하는 이들에게 주로 ‘20명 미만의 작은 스타트업’을 권해요. 회사의 성장은 한창인데, 일손은 부족해서 정말 ‘다양한 일의 형태’를 경험해볼 수 있거든요. 전공자가 아니더라도 일단 ‘닥치는 대로’ 이 일, 저 일 하다 보면 저절로 역량이 늘기도 해요. ‘해보면서 배운다’는 말이 딱 들어맞는 환경이죠. 기획, 개발, 마케팅, 사업전략, 인사관리, 경영지원 등 뷔페 돌 듯 조금씩 맛보다 보면 ‘나에게 맞는 일’이 뭔지를 금방 찾아낼 수 있다고 해요.
조인스타트업의 커리어 코칭을 받아 맥주 스타트업에서 마케터 일을 시작했던 한송이씨의 경우 여러 실전 경험을 거쳐, 얼마 전 ‘개발자’로 직무를 전환했어요.
“송이는 혼자 조용히 탐구하길 즐기는 내향인이었어요. 누가 건드리지만 않으면 종일 아무하고도 대화하지 않고 하루를 보낼 수 있는 그런 스타일이었죠. 맥주는 무척 좋아했지만, 여러 사람과의 접촉면이 많은 ‘마케터’ 일은 남의 옷을 입은 듯 불편해하더라고요. 이 친구를 오래 보며 아껴왔던 저와 함께 일하며 ‘더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자고 제안했죠.”
송이씨가 조인스타트업에서 맡은 역할은 ‘교육 프로그램 운영자’였어요. 가까이서 보니 송이씨가 가진 강점들이 일솜씨에서 그대로 드러났죠.
“잘 살펴보니 이 친구는 일을 아주 꼼꼼하고 세밀하게 하는 스타일이었어요. 디지털 리터러시 역시 뛰어나서 복잡한 운영 업무를 단순화하기 위해 다양한 IT 도구들을 동원하더라고요. 문제를 만나면 해결될 때까지 집요하게 파고들었고요. 그래서 제안했죠. 이런 강점이 있는데, 개발을 안 배울 이유가 없다고요. 마침 개발자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을 때였거든요.”
영화씨와 함께 차근차근 ‘전직 플랜’을 세운 송이씨는 약 1년 반의 공부와 준비기간을 거쳐 현재는 한 스타트업에서 개발자로 일하게 됐다고 해요.
송이씨는 마케터, 운영자라는 직무를 거치며 자신의 약점과 강점을 두루두루 파악할 수 있었어요. 뼛속까지 내향인인 송이씨에게 마케터 직무가 버거울 수도 있다는 건, 실제 그 일을 해보기 전까진 미처 알지 못했던 사실이었죠. 남들보다 꼼꼼하고 집요한 성격이 개발자로서 유리한 자질이라는 사실 역시, 개발을 배워보기 전엔 알지 못했고요. 다양한 일의 형태를 폭넓게 경험해보면서, 자신에게 안 맞는 일은 선택지에서 지워 나가고, 잘 맞는 일은 하나하나 추가하면서 ‘내 일’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한 범위를 좁혀 나간 겁니다.
“그래서 저는 아예 일 경험이 없는 사람들에겐, 알바라도 여러 개를 해보라고 추천해요. 일하는 자신의 모습은, 일 경험으로 발견해 나가는 거거든요.”
직업 심리학자 존 크롬볼츠는 커리어로 이어지는 인연은 친척이나 친구 같은 가까운 관계보단 ‘약한 연결 관계’에서 비롯할 때가 많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어요. 혈연, 지연, 학연으로 엮인 강한 연결 관계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는 한정돼 있는 반면, 느슨하고 약한 연결 관계로 이어져 있는 관계에선 새로운 정보를 얻을 가능성이 크다는 내용이었죠. 그렇다고 무조건적으로 ‘인맥망’을 넓히라는 건 아닙니다. 아무리 느슨한 관계더라도 ‘깊은 신뢰’가 작동하지 않는다면, 인맥이 커리어 기회로 연결되긴 어려워요. 그러니 도움이 될 만한 인연이 다가왔을 때, 제때 잡을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한 거죠.
“5년 전, 저의 권유로 ‘마이리얼트립’에서 커리어를 시작한 지현씨의 경우, 처음 만났던 건 한 대학의 특강에서였어요. 강의를 마치자마자 다가오더니 ‘스타트업에서 일하고 싶은 마음은 있는데, 고민이 많다’며 질문을 하더라고요. 따로 다가와서 질문을 하는 경우는 워낙 드무니까, 뇌리에 남았죠. 그렇게 헤어졌는데 같은 동네에서 우연히 또 만난 거예요. 그때 지현씨가 그랬죠. ‘계속 뵙고 싶다’고. 그렇게 지현씨는 ‘조인스타트업’의 베타 테스트에 참여하게 됐어요.”
영화씨는 지현씨에게서 ‘좋은 우연’을 만났을 때, 그걸 놓치지 않고 기회로 굳혀 낼 줄 아는 센스를 봤다고 해요. “커리어를 풀어 나감에 있어 본인의 성취만큼이나 중요한 게 일에서 만든 ‘관계’거든요. 커리어 패스란 성과와 관계, 이 두 축의 자산을 차곡차곡 쌓으며 만드는 거예요.”
한 번의 용기가 수천억 원대의 성공 신화로 이어진 경우도 있어요. 패션 스타트업 ‘스타일쉐어’의 윤자영 대표는 대학생이던 2010년, 창업 특강에 연사로 온 권도균 프라이머 대표를 처음 만났다고 해요. 강의가 끝나자마자 그에게 주뼛주뼛 다가가 ‘길거리 패션 공유’ 사업에 대한 아이디어를 설명했죠. 생각을 정리해 이메일로 보내달라는 권 대표의 말에, 서툴지만 고민한 티가 역력한 사업계획서를 보냈고요. 권 대표에게 말을 걸어오는 사람은 많았지만, 실제로 사업 계획서까지 보낸 사람은 드물었다고 해요. 그렇게 두 사람은 투자자 대 창업가로 인연을 맺게 됐죠. 지난해 스타일쉐어는 자회사인 29cm와 함께 무신사에 인수됐어요. 이때 평가된 기업가치는 무려 3,000억 원이었다고 하네요.
“저는 뿌리긴 정말 많이 뿌리거든요. 싹을 틔우고 뿌리를 내리고, 열심히 기어오르는 건 본인들의 몫이에요. 현대자동차에서 일하다 ‘빠른 성장’을 위해 스타트업으로 커리어 피봇한 윤주씨의 경우, 제가 잊을 만하면 항상 연락을 해와요. 윤주씨 역시 조인스타트업의 초기 베타 테스트에 참여했던 친구였는데, 그 인연이 7년째 이어지고 있죠.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는다는 건 ‘우연한 행운’일지 몰라도, 그 도움에 감사해하며 인연을 이어가는 건 오롯이 본인의 몫이자 역량이거든요. 자신의 커리어를 열어 줄 수 있을 만한 누군가에게 먼저 말을 걸고 도움을 청할 수 있는 것, 그리고 그 인연이 끊어지지 않도록 붙잡고 이어 나갈 수 있는 것. 이건 무척 중요한 태도죠.”
영화씨는 커리어에서 변화를 만드는 가장 쉬운 방법 중 하나가 ‘만나는 사람을 바꾸는 것’이라고 말해요. 그래서 이직이나 전직이라는 처방전을 당장 집어 들기보다는 새로운 사람이 있는 곳으로 다가가 변화를 시도해보라고 권한다고 해요.
▶ '사람 농부' 조인스타트업 장영화 대표 인터뷰 읽고 오기 (관련기사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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