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곤은 제도가 만든 인위적 현상"

입력
2022.06.28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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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8 무함마드 유누스


그라민(Grameen) 은행은 방글라데시 빈민에게 소액을 무담보로 빌려주는 은행으로, 치타공대 경제학 교수 무함마드 유누스(Muhammad Yunus, 1940.6.28~ )가 1976년 단돈 27달러를 출자해 문을 열었다. 설립 당시 7,000만(현재 1.65억) 인구의 약 절반이 절대빈곤선 이하의 삶을 살며 대개는 사채 때문에 노동해서 번 돈으로 고율 이자를 메우는 데 급급한 형편이었다. 은행들은 담보 없는 이들에게는 대출을 외면했다. 유복한 집안에서 성장해 풀브라이트 장학금으로 미국 밴더빌트대에서 유학한 유누스가 귀국하던 무렵 방글라데시 서민 경제가 그러했다.

극빈자의 이자 부담이라도 덜어 주자는 것, 저소득-저저축-저투자의 악순환 고리를 끊어 저소득-신용대출-투자-소득 증가-저축 증가-투자 증가-소득 증가의 선순환 구조로 바꿔 보자는 것이 그의 실험이자 꿈이었다. 치타공대 인근 조브라(Jobra)라는 마을에서 42개 가정을 대상으로 시작한 그의 대출 사업은 3년 뒤 수도 다카 북부의 탕가일(Tangail)로 확대됐고, 방글라데시 정부는 그의 ‘개인대부업체’를 독립 은행으로 인가했다.

그 은행이 2021년 10월 말 현재 국내 2,568개 지점에 회원 944만여 명(여성 914만여 명)을 둔 거대 네트워크로 성장했다. 방글라데시의 열악한 여성 지위 등 구조적 한계 때문에 부작용도 없지 않지만, ‘그라민’ 모델은 빈곤 퇴치의 유효한 대안으로 2000년 한국의 ‘신나는 조합’과 2008년 ‘그라민 아메리카’ 등 세계 여러 나라로 확산됐다. 2021년 말 현재 방글라데시 그라민 은행의 대출 상환율은 95.55%(대출 총액 333억 달러)를 기록하고 있다.

2006년 노벨평화상 수상 인터뷰에서 유누스는 빈곤은 극복 가능한 인위적 창조물이라고 말했다. "가난은 문명 고유의 것이 아니다. 당연히 인간이 바꿀 수 있고, 우리가 그렇게 해왔다. 제도와 정책을 재설계해야 한다."

최윤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