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변보호를 받던 여성 집을 찾아가 가족을 살해한 이석준(26)이 1심에서 무기징역을 받았다. 사형을 바랐던 유족은 “이런 법이 어딨나”라며 법정에서 분노를 터뜨렸다.
서울동부지법 형사합의12부(부장 이종채)는 21일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보복살인, 살인미수, 살인예비, 강간상해, 성폭력처벌법 위반, 감금,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이석준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검찰은 지난달 17일 열린 결심공판에서 “범죄 방식이 끔찍하다”며 사형을 구형했다.
이석준은 지난해 12월 10일 신변보호를 받고 있던 전 여자친구 A씨의 집을 찾아가 그의 어머니를 살해하고 남동생을 중태에 빠뜨린 혐의로 체포됐다. 범행 닷새 전 이석준은 자택에서 A씨를 감금, 성폭행하고 해당 장면을 휴대폰 카메라로 촬영했는데, A씨 부모님의 신고로 경찰 조사를 받게 되자 앙심을 품고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조사됐다. 이석준은 흥신소에 50만 원을 주고 피해자들의 집 주소를 파악한 뒤 택배기사를 사칭해 집 안으로 들어갔다.
재판부는 피의자의 모든 혐의를 유죄로 인정했다. 이석준은 강간상해와 보복살인,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는 부인했지만,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강간상해와 관련해선 “A씨 진술이 객관적이고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했고, “A씨가 집 안에 없는 걸 확인하고, 자신을 신고한 A씨 어머니에 분노해 살인을 저지른 것으로 보인다”며 보복살인 혐의도 타당하다고 봤다. “피고인은 흥신소 등 온갖 방법으로 A씨의 주소지를 제공받으려 했다”면서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역시 인정했다.
다만 법원은 이석준이 사회와 격리될 필요가 있으나, 사형은 과하다고 결론 내렸다. 재판부는 “사형은 인간의 생명 자체를 영원히 박탈하는, 문명국가에선 극히 예외적 형벌”이라며 “누구나 이것이 정당하다고 생각할 만한 객관적 사정이 있어야 허용된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이날 방청석에서 재판을 지켜보던 A씨의 아버지는 무기징역이 선고되자마자 울분을 토했다. 그는 “무슨 법이 이러냐. 내가 죽여버릴 거다”라고 소리쳤다. 이석준은 별다른 반응 없이 고개를 숙이고 머리카락으로 얼굴을 가린 채 법정을 빠져나갔다.
재판 종료 후 취재진과 만난 A씨 부친은 “재판 결과가 참담하고 이 나라 법이 우습다”며 불만을 드러냈다. 그는 “마음이 찢어지고 무겁다”면서 “피해자인 우리는 힘들게 살고 있는데, 사람을 죽인 이석준은 세금으로 밥 먹으면서 산다는 게 억울하다”고 성토했다. 이어 “다친 막내아들은 자신에게 해코지할까 봐 ‘살인자가 사회에 나오면 안 된다’고 말하고, 딸도 아직 집 밖을 나가지 못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유족 측 변호인은 “항소를 원하는 유족 입장을 검찰에 전달할 것”이라고 밝혔다. 검찰은 판결문을 검토한 후 항소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다.
법무부는 이날 수감생활 뒤 출소하거나 집행유예를 선고 받은 스토킹 범죄자에게 위치추적 전자장치(전자발찌)를 부착하기 위한 법 개정 추진에 나서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