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밀양은 영남권의 교통 요지다. 경북 청도로 연결되는 25번 지방도로와 경부선 상동역 일대를 어둠이 짙게 깔린 밤시간에 지나다 보면, 빛을 환하게 밝힌 비닐하우스촌이 눈에 들어온다. 밤 바다를 환하게 비추는 오징어잡이 배를 연상케 할 정도로 눈부시다. 비닐하우스 내부에 들어서면 빼곡하게 채운 초록색 채소가 푸르름을 뽐내고 있다. 전국 최대 생산량을 자랑하는 밀양 들깻잎이다.
지난달 22일 밀양시 상동면 안인리 중섬들판 비닐하우스 곳곳에선 들깻잎 수확이 한창이었다. 깻잎은 보통 9월에 꽃이 핀다. 그 이후에는 상품가치가 없기 때문에 밤에는 인공적으로 불을 밝혀서 꽃 피는 시기를 늦추고, 영양 생장을 통해 사시사철 수확이 가능케 하고 있다.
들깻잎은 씨를 뿌린 뒤 섭씨 7,8도를 유지하는 하우스 안에서 40여 일을 키우면 잎을 딸 수 있을 정도로 자란다. 한 그루에서 25, 26차례 깻잎을 딸 수 있어, 한번 파종으로 8개월 가량 수확이 가능하다. 깻잎은 크게 들깻잎과 참깻잎으로 분류된다. 식용으로 마트에서 구입할 수 있는 들깻잎과 달리, 참깻잎은 잎이 억세고 두꺼워 한약재로만 주로 사용된다.
들깻잎은 12㎝ 크기를 최상품으로 친다. 솜털 같은 잔가시가 선명하고 가장자리 윤곽이 뚜렷할수록 신선한 제품으로 꼽힌다. 들깻잎 특유의 향인 정유 성분이 고기와 생선의 누린내나 비린내를 잡아주기 때문에 쌈채소에도 빠지지 않고 포함된다. 항암물질인 피톨 성분은 암세포 제거에도 도움이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입맛을 사로 잡는다. 들깻잎을 식용으로 하는 나라는 우리나라가 거의 유일하다.
상동면 일대는 동쪽으로 밀양 사람들이 남천강이라고 부르는 밀양강이 흘러 수량이 풍부하고, 사질양토까지 갖추고 있어 들깻잎 재배의 최적지로 꼽힌다.
1980년대 초반 부산 구포에서 두세 농가가 들깻잎을 가져와 재배하기 시작한 게 시초다. 40년이 흐른 지금, 밀양 들깻잎 재배 농가는 3,000여 곳으로 늘었고, 4개 농업법인과 30여 개 작목반까지 운영 중이다. 연간 소득만 700억 원 정도로, 전국 생산량의 50%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30여 개에 달하는 작목반은 밀양시깻잎연합회를 결성해 공동선별장과 통합물류센터 등을 만들었다. 안정성 검사 사업과 친환경 인증 사업을 주도해, 2018년 지역 대표 특산물 지위를 인증하는 ‘지리적표시 단체표장’을 등록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밀양이 부산~대구 고속도로, 밀양~울산 고속도로, 경부선과 경전선 철도가 지나는 물류교통 요지라는 점도 들깻잎 유통과 출하에 있어 다른 지역보다 유리한 이유다.
밀양시민들도 지역을 대표하는 농산물로 들깻잎을 꼽는데 주저함이 없다. 실제 2019년 지역경제정책연구원이 밀양시민을 상대로 실시한 ‘밀양의 가장 경쟁력 있는 특산물’을 묻는 설문조사에서 들깻잎이 26.7%로 1위를 차지해, 딸기(21.3%)와 사과(20.7%)를 앞질렀다.
밀양시도 들깻잎 재배와 판매 등 지원에 힘을 보태고 있다. ‘잎들깨 양액재배 시범사업’이 대표적이다. 들깻잎 농사를 30년 넘게 해온 한국깻잎생산자연합회 회장인 김응한(67)씨도 시범사업에 참여했다. 이날 찾은 상동면 김씨 농장에선 들깻잎 모종을 흙이 아닌 배지에 심고, 영양액까지 공급 중이었다. 몇 십년간 밀양에서 이어오던 들깻잎 재배 농법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김씨는 “지하수 수질검사를 통해 지하수와 양액의 배합 비율을 처방 받아 4개의 대형 양액탱크에 채운 뒤 호스를 통해 공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상동면 일대 비닐하우스 10개 동에 적용 중인 양액재배 농법으로 연작 피해가 줄어들고 토양 관리도 용이해졌다는 게 김씨 설명이다. 김씨는 "병충해 발생이 현격히 줄었고, 깻잎 생육도 빨라져 생산량 증가에도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고 귀띔했다.
판매 활로 개척에도 시가 앞장서고 있다. 시 관계자는 "시가 100% 출자한 공기업 '밀양물산'을 통해 학교급식과 직거래 매장, 해외 수출 등 판로 확대에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