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8년간 미국을 호령했다. 타이거 우즈, 오프라 윈프리 등 스타들도 즐비하다. 그런데 아직도 흑인 차별이 심하냐고? 적어도 과학계에서는, 아니 과학계이기 때문에 ‘흑인은 백인보다 지적으로 떨어진다’는 편견이 여전한 듯하다. 120년 노벨상 역사상 과학분야에서 흑인이 수상한 적은 한 번도 없으니.
흑인 천체물리학자 하킴 올루세이(55)가 자전적 에세이 ‘퀀텀 라이프’를 쓰게 된 것도 이런 편견을 깨기 위해서였다. 빈민가 출신으로 저명한 과학자의 반열에 오른 저자의 경이로운 이야기는 흑인뿐만 아니라 차별에 절망하는 모든 이들에게 희망적 메시지로 읽힐 수 있다.
저자가 보낸 어린 시절은 '흙수저'라는 표현조차 사치다. 이혼한 어머니는 변덕스러웠다. 남자 친구와 일자리를 수시로 바꿨다. 맥도날드는 생일에나 먹을 정도로 가난했다. 살던 동네는 폭력과 범죄가 가득한 빈민가. 철이 들기도 전에 ‘거리의 포식자’를 피하는 법을 깨쳤다. 아홉 살에 친부와 함께 살게 됐지만, 대마초와 코카인을 만들어 파는 마약상이었다.
불우한 현실 속에서 별, 우주, 과학이 저자를 사로잡았다. 마약 중독자들과 갱들을 피해 백과사전 22권을 독파했다. 두뇌도 집요함도 뛰어났다. 고등학교 때 컴퓨터 프로그램을 독학해 상대성 이론을 시연하는 게임을 만들었고 주립 과학전람회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칭찬과 인정을 통해 저자는 더더욱 과학 세계로 빠져든다.
이 책은 '감사 노트'이기도 하다. 수많은 이들이 저자에게 도움의 손을 내밀었다. 고교 교사는 저자가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익힐 수 있도록 학교에 한 대뿐인 IBM컴퓨터를 빌려줬다. 장교 선발 프로그램에 참여할 기회를 준 해군 상사도 있다. 흑인 대학인 투갈루 대학에 입학한 후에는 백인 교수의 도움으로 스탠퍼드대 물리학과 대학원에 진학할 경력을 쌓는다.
교육이 빛이라면 마약은 그늘이었다. 어린 시절 마약에 중독됐다. 스탠퍼드대 대학원 때도 해가 지면 코카인을 찾아 뒷골목을 헤맸다. 어느 날 흑인 갱스터들이 그를 둘러싼다. "쏴 버리자." “탕” 총알이 비껴나며 비명횡사를 피한 저자는 말한다. “나의 인생은 어느 방향으로도 펼쳐질 수 있었다. 다중 우주 가운데 한 우주에는 마약 거래를 하다가 문제가 생겨 총에 맞은 내가 있을 것이다.”
저자는 스탠퍼드대 지도교수인 아서 워커의 도움으로 마약에서 벗어나고 연구 성과도 쌓아 박사 학위를 따낸다. 책은 초인적 힘으로 역경을 극복한 ‘영웅 스토리’가 아니다. 저자의 잠재력을 발견하고 대가 없이 기회를 준 ‘주변인’들에 대한 기록이다. 누구도 혼자선 성공할 수 없다는 간명한 메시지가 묵직한 여운을 남긴다.
저자의 어릴적 이름은 ‘제임스 에드워드 플러머 주니어’. 하킴 올루세이로 개명한 이유는 “이름만 들어도 내가 흑인이라는 걸 알 수 있게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흑인 사회의 가난과 폭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쳤지만, 과학계에 만연한 흑인 차별에 좌절하며 흑인 정체성을 받아들인다.
저자는 스탠퍼드대 대학원을 졸업하고, 플로리다 공대, 매사추세츠 공대(MIT) 등의 교수를 거쳐 조지메이슨대 물리학 및 천문학과 초빙교수로 재직 중이다. 잠비아, 탄자니아, 케냐를 돌며 흑인 과학자들을 교육하기도 했다. 넷플릭스, 내셔널지오그래픽, BBC 등의 과학 다큐멘터리에 출연하며 천체물리학의 대중화에도 힘쓰고 있다.
저자는 자신의 삶을 양자역학 용어 '양자 터널링'에 비유한다. 거시 세계에서는 결코 벽을 통과할 수 없지만 미시 세계에서는 희박한 확률이지만 벽을 넘는 기적이 일어난다. 정해진 운명은 없고 어떤 가능성도 열려있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