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의 '반도체 인재 양성 드라이브' 이후 반도체 학과 증설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고질적인 반도체 분야 인력난을 해소하겠다는 취지이지만, 수험생들이 몰리는 수도권의 명문대 계약학과와 지방대의 취업률·장학금 등 교육 환경은 천차만별이다. 세심한 정책적 접근 없이 학과의 정원 늘리기에만 매달릴 경우 수도권-지방대 간 양극화만 심각해질 거라는 우려가 나온다.
19일 정부에 따르면 반도체 인력 확대를 위해 교육부가 검토하는 방안 중 하나는 계약학과 규제 대폭 완화다. 교육부는 반도체 등 첨단학과에 대해 대학 정원의 20% 이내에서 '정원 외'로 뽑게 한 정원 제한을 50%로 확대하고, 산업체와 교육기관 간 거리 제한(직선 거리 50㎞ 이내)을 없애는 방안 등을 검토하고 있다.
그러나 계약학과들이 이미 수도권·명문대에 쏠린 상황에서 이 같은 규제 완화는 오히려 양극화를 심화시킬 거라는 지적이 나온다. 대학 알리미에 따르면 전국 대학·대학원 계약학과 769개 중 절반가량이 서울(186개), 경기(164개), 인천(24개)에 몰려있다. 학과 이름에 '반도체'가 들어가는 계약학과 17곳의 경우 서울(6개), 경기(5개)에 몰려 있다.
삼성전자 계약학과인 성균관대 반도체시스템공학과는 2022학년도 수시 학생부종합전형에서 28명 모집에 481명이 몰려 17.2대 1의 경쟁률을 보였고, SK하이닉스 계약학과인 고려대 반도체공학과의 경쟁률도 16.7대 1이었다. 반면 지방에 위치한 '비(非)계약학과' 반도체 학과들은 미달인 곳도 적지 않았다. 2022학년도 정시모집에서 충북의 극동대·중원대·U1대, 전남의 목포대가 정원보다 지원자 수가 적었다.
장학금 등 교육 환경 차이도 분명했다. 선문대 디스플레이반도체공학과의 2021년 평균 등록금은 823만4,000원으로, 전국 공학계열 대학 평균 등록금(723만7,500원)보다 약 100만 원 비쌌으나 1인당 평균 장학금은 296만1,000원이었다. 1인당 평균 장학금이 854만5,000원인 성균관대 반도체시스템공학과와는 격차가 컸다.
취업률도 성균관대 반도체시스템공학과의 경우 96.4%(2020년)였지만, 공학계열 평균 취업률(67.7%)에도 미치지 못한 반도체학과가 5곳이나 됐다. 가장 취업률이 낮은 곳은 48.3%였다.
정부는 수도권과 지방에 비슷한 수준으로 반도체 학과 정원을 늘린다는 계획이지만, 기존 양극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효과가 떨어질 거란 지적이 나온다. 이상일 목포대 기획처장은 한국일보와 통화에서 "반도체 인력 확대를 빌미로 수도권의 (정원)규제를 풀겠다는 얘기로 확장이 되는데, 학부만을 본다면 타깃을 (오히려) 지방 대학에 두고 거기서 인력을 양성하는 정책이 필요하다"며 "삼성과 SK하이닉스가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와만 계약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고 했다. 임 처장은 수도권 대학은 대학원 중심의 연구 인력을, 지방은 학부 출신의 실무 인력을 키워내도록 "정부가 (인력 확장과) 균형발전의 두 마리 토끼를 잡길 바란다"고 말했다.
정부 주도로 정원을 늘렸다가 산업 수요도 만족시키지 못하고 대학에 짐만 떠안길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임은희 대학교육연구소 연구원은 "이공계열 안에서도 반도체 등 특정학과를 중심으로 쏠림이 일어나면서 기초 학문들이 학생 모집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며 "박근혜 정부 당시 '산업연계 교육활성화 선도대학 사업'으로 공학계열 입학 정원을 늘린 지방대들이 이후 학생 모집에 어려움을 겪은 사례도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