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연일 '대북 독자 제재'를 강조하고 있다. 박진 외교부 장관도 12일 방미 출국 전 언론 인터뷰에서 "구체적인 방안들을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북한이 7차 핵실험에 나설 경우 국제사회 제재와 별개로 우리 정부 차원에서 북한에 강력한 불이익을 주겠다는 엄포다. 정부 주도로 북한을 제재하는 건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17년 12월이 마지막이다.
하지만 실질적인 타격을 입힐 수단이 마땅치 않아 보인다. 북한의 생명줄인 원유 공급을 제한하거나 해외 자산을 동결해 자금줄을 틀어막는 건 유엔이나 미국의 몫이다. 이외에 남북 협력사업을 중단하거나 인도적 지원을 끊는 정도가 가능한데, 상당기간 남북 교류가 끊겨 북한의 대남 의존도가 낮은 상황에서 북한에 먹힐 리 없다. 윤석열 정부 들어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은 정치적 상황에 상관없이 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터라 인도적 지원에 손을 대기도 쉽지 않다.
정부의 대북 독자 제재는 이명박 정부 당시 5·24조치가 대표적이다. 2010년 3월 천안함 피격 사건 두 달 뒤, 북한의 책임을 묻기 위해 발표한 행정조치로 △남북 교역을 위한 모든 물품 반출·반입 금지 △개성공단과 금강산 지구를 제외한 방북 불허 △북한 선박의 우리 해역 운항 불허 △대북 신규투자 금지 △대북 지원사업의 원칙적 보류 등 당시 진행하던 남북협력 사업을 전면 중단했다.
정부가 취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조치를 망라한 셈이다. 하지만 10년 뒤인 2020년 5월 통일부는 "5·24조치의 실효성이 상당부분 상실됐다"며 사실상 폐기를 선언했다.
그럼에도 정부가 독자 제재에 매달리는 건 유엔 차원의 추가 제재가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안보리 상임이사국 중국과 러시아의 반대로 아무런 진척이 없다. 지난달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를 규탄하기 위한 제재 결의안 역시 양국이 가로막아 무산됐다.
이런 상황에서 독자 제재는 유엔의 빈틈을 메우고 중국과 러시아를 압박하는 효과를 노릴 만한 카드다. 북한이 7차 핵실험 버튼을 누르면 미국뿐 아니라 일본, 유럽연합(EU) 등도 독자제재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대북 강경 기조를 표방한 정부 입장에선 국내 정치적 노림수도 작지 않다. 북한의 도발에 맞서 머뭇거리지 않고 행동에 나섰다는 믿음을 국민들에게 각인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외교부 당국자는 “만약 독자 제재를 하게 된다면 4년 6개월 만에 처음"이라며 "그 자체로 의미가 크다”고 평가했다.
정부가 독자 제재에 나선다면 미 재무부의 방식을 준용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북한이 신형 ICBM 화성-15형을 발사해 “핵무력 완성”을 선언하자 2주 만인 2017년 12월 정부는 조선능라도선박회사를 비롯한 북한 단체 20곳과 개인 12명을 독자 제재 대상으로 발표한 전례가 있다. 이들 모두 미국이 앞서 제재 리스트에 올린 대상이었다.
최우선 국립외교원 안보통일연구부장은 15일 “남북교류를 원천 차단하는 방식의 제재도 가능하지만 취임 초기부터 남북관계를 단절시키는 것은 정부 스스로 운신의 폭을 좁히는 것이라 선택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국제사회에서 취하는 제재 조치에 적극 동참한다는 수준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