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9년 7월 거동이 불편한 아내를 살해한 혐의로 80대 남성 A씨가 재판에 넘겨졌다. 60년간 아버지로서, 남편으로서 가족들을 부양한 그는 20년 넘게 투병하던 아내를 홀로 간호했다. 그러나 아내가 담낭암 말기 시한부 선고를 받자 A씨는 고통받는 배우자를 위해, 또 자식들의 부담을 덜어주려 아내를 죽음에 이르게 했다.
부산지법은 그해 살인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형을 내렸다. 판결문에는 “피해자가 고통받는 모습을 보다 못해 간병살인에 이르렀고, 자식들은 아버지의 불안, 슬픔을 말하며 부모님을 돌보지 못한 자신들을 탓하라고 호소하고 있다”고 쓰였다. 목숨을 앗아간 죄는 중하나, 그럴 만한 사정을 이해한다는 것이다.
최근 오랜 간병의 어려움으로 인한 범죄가 빠르게 늘고 있다. 가장 극단적 형태가 ‘간병살인’이다. 하지만 법의 잣대는 가혹하지 않았다. ‘돌봄’의 모든 책임을 가족이 떠안아야 하는, 고장 난 사회시스템의 변화를 촉구하고 있다.
15일 ‘법원 판결서 인터넷 열람’ 서비스를 통해 2017년 6월부터 지난달까지, 최근 5년간 간병살인 관련 1ㆍ2심 판결문 42건을 들여다보니 15건(35.7%)에 대해 집행유예가 선고됐다. 사망이라는 중죄에도 재판부는 동기를 참작해 존속살해죄의 법정형인 사형, 무기징역 또는 7년 이상의 징역보다 낮게 처벌한 것이다. 10건(23.8%)은 가해자도 극단적 선택을 시도한 경우고, 숨지지는 않았다.
가해자들이 겪은 간병 부담은 법원이 온정을 베푼 가장 큰 이유다. 지난해 4월 서울고법은 정신장애를 가진 30대 딸을 23년 동안 돌보다 죽인 어머니에게 징역 3년형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당시 “국가와 지자체가 담당해야 할 사회적 책임이 온전히 피고인 가정에 전가돼 개인의 부담이 됐다”고 판시했다. 지금껏 가족이 오롯이 감당해야 한 육체적ㆍ정신적 스트레스 극복의 책임이 사회에도 일부 있다고 본 것이다.
실제 42건의 가해자 면면을 보면, 남편이 12건으로 가장 많았다. 아들(9건), 아내(8건), 어머니(5건), 형제(4건), 딸(2건), 아버지(1건) 등 거의 다 직계가족이었다. 피해자의 절대 다수(69%)를 60대 이상 노인이 차지해 급속한 고령화와 함께 간병살인도 늘고 있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간병 부담은 그저 환자의 죽음에 그치지 않는다. 다른 가족 구성원들의 갈등을 유발하는 또 다른 불씨다. 2018년 강원 춘천에서는 혼수상태 아들을 4년여간 간병한 아버지가 아내를 살해해 징역 12년을 선고받았다. 동생 간병을 형과 어머니가 분담하다가 아들이 어머니를 죽인 일도 있었다.
결국 돌봄의 사회적 역할, 정확히는 간병을 전담하는 가족에 대한 지원 확대가 절실하다는 결론에 이른다. 석재은 한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간병 기간이 길어질수록 가족은 단순한 스트레스를 넘어 경제적ㆍ사회적으로도 고립돼 사회와 단절될 수밖에 없다”며 “가족 돌봄자 휴식 제도처럼 이들에게 휴식과 상담을 제공하는 서비스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