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씨라는 트렌드와 흑맥주 칵테일

입력
2022.06.14 20:00
25면

편집자주

패션칼럼니스트 박소현 교수가 달콤한 아이스크림 같은 패션트렌드 한 스쿠프에 쌉쌀한 에스프레소 향의 브랜드 비하인드 스토리를 샷 추가한, 아포가토 같은 패션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2021년이 밀크 셰이크 같은 ‘갯마을 차차차’의 한 해였다면, 2022년은 흑맥주 같은 ‘나의 해방일지’의 구씨이자 ‘범죄도시 2’로 천만 관객을 돌파한 마성의 배우 ‘손석구’의 해인 듯하다.

마성이라 한 것은 인기의 척도라고 할 수 있는 소셜 미디어의 짤들(짤방에서 비롯된 신조어로 온라인상에서 널리 회자되는 동영상이나 이미지) 때문이다. 짤들에 따르면 그가 분한 구씨나 강해상이 오히려 사실에 근거한 논픽션(nonfiction) 같고 인간 손석구의 삶이 오히려 상상력을 가미한 픽션(fiction) 같아 그에게 헤어나올 수 없이 빠져들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의 매력과 닮은 흑맥주 칵테일을 음미하며 손.석.구.라는 트렌드를 한번 짚어 보자. 자연인 손석구의 행보와 드라마 캐릭터인 구씨는 그를 녹진한 아이리시 슬래머(Irish Slammer)처럼 매력적으로 만들었다. 아이리시 슬래머는 흑맥주, 아이리시 위스키, 베일리스(Baileys)라는 리큐르(Liqueur)를 섞어서 만든 칵테일이다. 흑맥주와 위스키의 매치가 생경하지만 소맥(소주+맥주)을 떠올려 보면 납득이 간다. 그의 행보도 그렇다. 미국에서 예술대를 다니다 자이툰 부대에 입대하고 농구선수가 되려 캐나다로 갔다가 귀국해서 회사를 경영한 건, 진로 고민을 거쳐 자리 잡은 것으로 볼 수 있다. 그의 행보 중에서 군대와 농구는 진한 풍미의 흑맥주 같고, 예술대를 다닌 감각은 상큼하고 크림 같은 맛의 아이리시 위스키 같다.

그런 그가 배우로 우뚝 솟아오른 것은 농구를 배우던 중에 들은 연기 수업으로 시작된 연기자 생활이, 아이리시 슬래머의 흑맥주와 아이리시 위스키의 마지막에 더해지는 베일리스가 된 것 같다. 베일리스는 아이리시 위스키에 크림(우유)과 초콜릿을 가미한 최초의 크림 리큐르이다. 구씨는 고전 문학에서 나올 ‘추앙’이란 단어를 유행시켰고 그는 백마도 타지 않은 채 알코올 중독자이면서도 숱한 여성들을 열광하게 만든 아마 거의 최초의 대한민국 남자 주인공 캐릭터일 것이다. 투박한 듯 섬세하고 나이에 맞게 농익은 듯 간간이 아이처럼 해사한 그의 표정과 구씨는 아이리시 슬래머와 참 많이 닮았다. 그로 인해 한국 드라마의 남자 주인공들의 모습이 얼마나 다양해질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배우 손석구는 왠지 모르게 태(態)가 나는 블랙 벨벳(Black Velvet) 같다. 블랙 벨벳은 흑맥주와 샴페인을 1대 1로 섞어서 만드는 칵테일이다. 배우 손석구의 조합도 그렇다. 진한 이목구비에 비해 옅은 눈썹은 강하고 거칠지만 어딘가 여린 느낌을 준다. 목이 늘어난 티를 입고 찌그러진 듯 있어도 그의 두꺼운 상체와 다부진 어깨는 보던 이의 눈동자가 그를 찾아다니게 만든다. 무얼 입어도 멋스럽겠지만 영화 킹스맨처럼 각진 어깨와 똑 떨어지는 핏의 영국식 슈트를 입는다면, 드라이한 영국식 스타우트 맥주에 은은한 향의 샴페인을 더한 인간 블랙벨벳 같을 것이다.

그를 너무 추앙하는 것 같은가? 하지만 벌써 "손석구씨 몸을 만들려면 얼마나 걸리나요?"라는 남자들의 질문이 온라인에 빼곡하다. 아마 그 때문에 헬스장에 등록하는 이들도 꽤 될 것이다. 동성이 열광하는 배우의 인기는 진짜다. 그리고 그 인기는 쉽게 사그라지지 않는다. 그처럼 되고자 하는 이가 더 늘어나면 그의 머리부터 발끝에 이르는 모든 것이 유행하게 되고 관련 업계는 발 빠르게 '그'스러울 수 있는 상품들을 쏟아낼 것이다.

대중이 추앙하는 이는 그 자체로 산업이 된다. 그는 보면 볼수록 사막여우보다는 서늘한 눈매가 매력적인 백사자를 닮았다. 그가 얼마나 크게 포효하며 트렌드이자 장르가 될지 사파리의 관람객처럼 눈을 반짝이며 지켜보고 싶다.



박소현 패션 칼럼니스트